(이전에 긁적이던 건데 봉팔러들이 어찌 볼까 기대가 돼. 주소를 문예방으로 해서 올리는 것 맞나 몰라.)
가난함과 부유함
공자와 그 제자의 대화, 『논어』한 토막을 들여다본다.
“가난한 때 남들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한 때 남들에게 교만하지 않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때 낙樂을 잃지 않고, 부유한 때 예禮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윗길이지.”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논어』 제1편 「學而」)
이런 식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 간의 문답의 기록, 『논어』라는 책은 이와 같은 대화가 가득하다.
앞의 질문은 공자 평생의 충실한 제자요, 수제자 안회(顔回) 다음으로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 ‘자공(子貢)’이 던진 것. 그는 정치적 감각이 탁월할 뿐 아니라 상업적 이재에도 밝아 당시 제후국들 사이에 물류거래를 통해 큰 재산을 축적했고, 공자 학단의 실질적 재정지원을 책임졌던 이다.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회상하며 최소한의 기준선을 넘지 않은 자기 삶의 원칙에 대한 자부감을 스승 앞에 은근히 드러내 보인다.
돌아보자. 세상에는 이와 같이 산 사람도 드물다. 내가 돈이 없어 보면 주변에 당당하기 어렵다. 상대가 공평하려고 해도 내가 먼저 위축되기 쉽다. 반대로 돈 많은 사람이라면 상대가 먼저 경쟁적으로 굽히고 들어오는 것 억지로 내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게 보통 삶이고 세상 돌아가는 형세 아니던가? 그렇지만 자공은 최소한 이런 시류에 휩쓸려 살지는 않았다.
“없을 때도 내 기준이 있었고, 있을 때도 내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기본적 자존(無諂)과 남에 대한 최소한 배려(無驕)였다.”
자공의 자기 인생에 대한 오롯한 자평이다.
여기에 공자는 일단 긍정의 평을 내린다(可也). 그 또한 자공 같은 인생이 쉽지 않음을 안다. 그 정도 지키려 해도 얼마나 괴롭고 어려운지, 험난한 인생역정을 겪어온 그는 안다. 그러나 공자는 애제자의 삶의 목표를 거기에 두고 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가난 속에서는 낙樂을 잃지 않고 부자로서는 예禮를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진짜지.” 공자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이다.
공문(孔門) 교육이 빛을 발하는 지점! 인간이 각자가 처한 상황과 조건 아래서 자신의 최고의 가능성을 구현해 내고 있는가에 대한 삼엄한 성찰이다. ‘어느 정도 남들만큼 해내고 있다’라든가,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는 이 정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평가로 만족하기를 철저히 거부한다.
낙자(樂者)는 누구인가? 생명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아낌없이 향유하려는 사람, 전체로서 자연의 내밀한 움직임에 민감한 안테나로 동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남의 시선에 구애가 없이 자기스타일이 분명한 사람, 그것으로 일관하는 사람. 자기 일에 심취하여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 진짜를 알아보는 눈과 귀를 가진 사람. 그들은 가난 속에서 낙樂을 잃지 않는다.
호례자(好禮者)는 누구인가? 예를 좋아하면 들끓는 사람들 속에서 평정을 잃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각각의 사람에게 합당한 예가 무엇인지 안다(무례한 자는 고귀함과 천박함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애착을 갖고 깊이 공감하는 자세를 가진다. 따라서 오직 최상의 낙자에게 최고의 예가 어울림을 안다. 낙자들이 대우받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호례자는 결국 문화의 패트론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둘은 서로 같은 사람, 시작과 끝이 원처럼 만난다. 낙자가 부자가 되면 곧 호례자가 될 것이요, 호례자가 부를 잃게 되었다면 그는 낙자로 돌아갈 뿐.
자공은 빈부의 삶을 나누어 보았고 수세적인 자세로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었다. 공자는 내 안의 생명의 즐거움으로 삶 자체를 꿰뚫었고, 상향(上向)의 길을 툭 터준다. 공자식 교육이다.
돈 없을 때 낙을 잃지 않고 돈 있을 때 예를 좋아하는 것, 우리 인생의 한 목표가 됨 직하지 않은가? 돈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행복의 과녁으로 직진하는 화살 같은 삶, 아름답지 않은가? 공자가 권하는, 사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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