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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실과 진실
글쓴이 :  지여                   날짜 : 2022-02-27 (일) 18:51 조회 : 1159 추천 : 2 비추천 : 1
지여 기자 (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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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담벽 

중병에 걸린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큰 병원의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병실은 아주 작았고 바깓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한사람은 치료의 과정으로 오후에 한시간씩 침대 위에 일어나 앉도록 허락을 받았다폐에서 어떤 용액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침대가 창가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 앉을 때마다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환자는 하루종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다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창가의 환자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바깥을 내다 보았다.

그는 바깥 풍경을 맞은 편 환자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창을 통해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내다보이는 모양이었다.

호수에는 오리와 백조들이 떠다니고, 아이들이 와서 모이를 던져 주거나 모형배를 띄우며 놀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 나무들 아래를 산책하고, 꽃과 식물들이 주위에 많았다. 이따금 공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그리고 나무들 너머 저편으로는 도시의 스카이 라인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누워있는 환자는 창가의 환자가 이 모든 풍경을 설명해 줄 때마다 즐겁게 들었다.한 아이가 어떻게 해서 호수에 빠질 뻔했는지도 듣고, 대단히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여름옷을 입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얘기도 들었다. 창가의 환자가 어찌나 생생히 묘사를 잘하는지 그는 마치 지금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한가지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왜 창가에 있는 저사람만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왜 그사람 혼자서 바깥을 내다보는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는가? 왜 자신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가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점점 더 창가에 있는 환자에게 질투가 났다. 침대의 위치를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어느날 밤이었다.

그가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창가의 환자가 갑자기 기침을 하면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버둥거리며 간호사 호출버튼을 찾는 것이었다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당연히 그 환자를 도와 비상벨을 눌러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 환자의 숨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도.

아침에 간호사는 창가의 환자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조용히 시신을 치워갔다. 적절한 시기가 되자 그는 창가쪽으로 침대를 옮기고 싶다고 간호사에게 요청했다병원직원들이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 창가쪽 침대로 옮겨 주었다그리고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매만져 주었다.

직원들이 떠나자 마자 그는 안간힘을 따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통증이 느껴졌지만 팔꿈치를 괴고 간신히 상체를 세울 수 있었다그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맞은 편 건물의 회색담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

-사실과 진실 -  '신영복의 담론 中' 

일흔이 넘은 노인이 있었습니다. 집도 절도 없고, 편지도 접견도 없는 분입니다. 전과는 본인이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당연히 감방에서 대접도 못 받고 한쪽 구석에서 조그맣게 살고 있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기의 존재감은 확실히 드러내는 때가 있습니다. 신입자가 들어올 때 입니다. 신입자가 입소 절차를 마치고 감방에 배치되어 들어오는 시간이 아마 이 시간쯤 됩니다

대부분의 신입자들은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화장실 옆 자리에 가서 앉습니다. 대단히 긴장된 이 순간이 노인이 나서는 순간입니다

"어이 젊은이" 하고 부릅니다.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신입자는 그 소리가 매우 반갑습니다. 그러고는 노인다운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형은 몇 년이나 받았고 만기는 언젠가는 등 정말 눈물 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일루 와 봐" 하고는 노인 옆으로 불러 앉히고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말이야" 로 시작되는 긴 인생사를 이야기합니다. 신입자가 들어오자마자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십일 지나서 이 노인이 감방에서 별 끗발이 없다는 걸 알고 나면 일정(日政)때부터 시작되는 그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첫날 저녘에 바로 시작해야 꼼짝없이 끝까지 듣습니다. 그 노인과 3~4년을 함께 살고 있는 우리도 신입자가 들어올 때마다 그 이야기를 또 듣습니다. 그거 빠트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채워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곳은 그 노인의 이야기가 계속 각색된다는 사실입니다. 창피한 내용은 빼고, 무용담이나 미담은 부풀려 넣습니다. 1~2년 사이에 제법 근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각색된 이야기에 도취되어 어떤 대목에서는 눈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젊은 친구들은 노인네가 '구라푼다'고 판잔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과거가 참담한 사람이 자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늦가을이엇습니다. 하염없이 철장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 노인의 뒷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노인의 야윈 뒷모습이 매우 슬펐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분이 늘 얘기하던 자기의 그 일생을 지금 회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저분이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최소한 각색해서 들려주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색한 인생사에는 이루지 못한 소망도 담겨 있고, 반성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인의 실제 인생사와 각색된 인생사를 각각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전자를 '사실'이라고 하고 후자를 '진실'이라고 한다면 어느 것을 저 노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망과 반성이 있는 진실의 주인공으로 그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늘 이야기하던 일정시대와 해방 전후의 험난한 역사가 그의 진실을 각색한 것이 사실로서의 그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 기사는 펌질을 금한다 (펌질은 아래 퍼나르기 소스만 허용되며 박스 클릭하면 전체선택된다)

글쓴이 :  지여                   날짜 : 2022-02-27 (일) 18:51 조회 : 1159 추천 : 2 비추천 : 1

 
 
[1/1]   만각 2022-02-28 (월) 10:58
신영복교수의 '담론'을 읽어보면 참으로 사유의 깊이를 느낍니다.....동,서양을 넘나드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안목...참 대단한 지식인을 보냈구나하는 아쉬움속에..

신영복교수의 '처음처럼'은 그림과 함께 간결한 글맛은 타인에게 부담없이 선물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써야하나? 가르쳐 주는 지여님의 건필을 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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