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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점에 대해서는 다들 알꺼야.
우리 눈의 시신경이 모여서 안구 밖으로 나가 뇌에 연결이 되면서 물체를 볼 수 있는데, 이 때 이 시신경이 나가는 부분엔 시세포가 없어. 모여서 나가는 부분이니까 거기까진 시세포가 있을 수 없는 거잖아. 암튼 거기에는 시세포가 없기 때문에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지.
맹점을 찾는 그림을 한 번 볼까.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만으로 그림의 오른쪽 점을 쳐다 봐 바.
그러면서 그림을 눈 가까이에서 멀어지게 또는 먼 곳에서 가까이 옮겨 봐 바.
(그림은 냅두고 우리 얼굴을 옮겨서 실험해도 되야..)
그러다 보면 그림의 왼쪽 점이 없어지는 거리가 있을 거야.
맹점을 찾은 거야.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맹점에는 시세포가 없기 때문에 물체의 상이 맺히질 않는 거잖아?
근데 맹점 부분이 어떻게 보였지? 까만 구멍이 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하얀 바탕으로 보였단 말이야. 그치?
이게 두뇌의 채워넣기야. 흰 바탕이야 넘 쉬운거니까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구?
그럼 그림 하나 더.
이 그림은 위에 꺼 하고 조금 다르지?
맹점에서 사라져야 할 희미한 점 밑에 검은 막대기가 하나 있네?
이것도 위에서 처럼 실험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함 해봐 바.
신기하지! 막대기가 연결이 되어 있어. 끊어진 게 아니라!
이게 채워넣기야.
근데 진짜 신기한 건 지금부터야.
어떤 환자가 (라마찬드란 박사는 늘 환자들을 델꼬 실험을 해)
이 환자는 산업재해를 당했는데 시각피질의 일부를 잃게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이 앞을 볼 때 왼쪽에 손바닥 만한 맹점이 생겼다는 거야.
근데 이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잘 모른다는군.
의사가 그 환자에게 어떻게 맹점이 있는 걸 알았냐고 물었더니
다른 불편은 없는데 가끔 여자화장실엘 들어간다는 거야.
WOMEN이라고 쓴 글자에서 WO가 안보이고 MEN만 보이는 거지.
이런 경우 말고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한다는 거야. 그 환자가.
그래서 이 환자에게 우리가 아까 했던 그런 실험을 해봤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맹점이 아닌, 그러니까 눈의 구조상 생긴 맹점이랑 뇌의 시각피질 일부가 없어져서 생긴 맹점이랑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겠지.
물론 결과는 보통의 맹점 처럼 그 환자도 채워넣기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 일상생활이 전혀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지. 가끔 여자 화장실 들어가는 거 빼고.
암튼 근데 실험 중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거야.
환자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거짓 정보를 줄 수도 있겠단 생각으로 실제 끊어진 검은 선을 보여주고 물었데. 이거 선으로 보이냐 하고.
그랬더니 그 환자 대답이 아니오. 끊어진 검은 선이네요. 하고 대답하더래.
그래서 의사가 속으로 ‘음…거짓말 하는 건 아니군’ 했겠지?
근데 그 다음 순간 그 환자가 소릴 치더래.
“선생님! 근데 그 두 선이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어요!”
5초 정도 계속 그렇게 소릴 지르더니 마침내는 선이 완전히 이어졌다는 거야.
지각(知覺)의 채워 넣음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 거지.
정말 신기하지?
이렇게 뇌는 맹점을 채워 넣는다는 거야. 근데 그 채워넣기를 할 수 있는 모양들은 대개 단순한 것들이야. 일정한 반복패턴의 벽지라든지 뭐 그런 거 들이지.
예를 들면 영어 X를 대문자로 써 놓을 때랑 소문자로 써 놓았을 때랑 다르다네.
대문자 X들을 쭉 늘어놓고 맹점 부위에서 하나를 빼 먹었을 때랑, 소문자 x를 쭉 늘어놓고 맹점 부위에서 하나를 빼 먹었을 때, 소문자일 경우에만 채워넣기를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대문자 X는 문자로 인식을 해서 채워넣기를 안 하는데 소문자 x는 무늬로 생각해서(생각해서가 아니라 뇌가 채워넣기를 해서) 맹점에서도 소문자 x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야.
이걸 진화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우리의 뇌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에 최대의 효율을 발휘한다는 거야. 사물의 통계적 규칙성을 뇌가 부여해서 본다는 거지.
윤곽이나 재질의 연속적 규칙성을 경험적 통계로 처리하면서 본다는 거지.
우리 인간의 뇌는 늘 바쁘니까. 딴 데 신경 쓸 게 많거든.
왜 우리가 숲을 거닐 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나뭇가지들 사이에 어떤 작은 짐승이 있는 지를 모르고 그냥 지나치잖아. 자세히 신경 쓰고 봐야 알 수 있지. 그리고 지나 온 다음엔 그 숲에 뭐가 어디에 어떻게 있었는지 기억해내질 못하잖아.
근데 말이야….원숭이들은 우리랑 조금 다르게 휙 지나가는 숲의 나뭇가지들 사이에 있는 바나나 등 먹을 것의 위치나 포식자의 위치를 사진 찍어 놓은 것 처럼 잘 기억해 낸다는구만…
TV에서 봤을거야. 원숭이랑 사람이랑 기억력 대결 하는 거.
컴퓨터 모니터에 1부터 7까지의 숫자를 위치가 불규칙 하게 아주 잠깐 나왔다 사라지게 보여주고는 그걸 순서에 맞게 기억해 내는 게임.
원숭이가 인간보다 훨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던 거. 봤지?
이게 원숭이랑 우리랑 다른 점 아닐까? 채워넣기의 정도 차이?
다시 말해서 감각 입력의 비가역성과 출력의 유연성에서 인간은 출력의 유연성이 좀 더 우세한 게 아닌가 싶은 거지. 왜냐? 생존을 위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까. 사진 처럼 선명한 기억력 보다는 그것들을 가공해서 출력해야만 했기에 시각 정보의 작은 차이들은 채워넣기로 보정을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그 시각 정보들을 가공하는 데에 쓰다보이 이케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는 데로 보게 되는 게 아닐까? 보고 싶은 것만 더 잘 보이는 게 아닌가…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자신이 읍네… 쯥.
이 채워 넣기는 효율성과 더불어 일관성, 정합성을 가지려는 뇌의 속성 때문인데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기존의 기억과 서로 비교하면서 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 그래서 실은 우린 실재를 보는 게 아니라 환상을 보는거지.
환상이란 거… 대충 어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실제로 눈에 이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본댜.. 다만 말을 안 할 뿐이지.
황반변성, 당뇨망막변증, 각막손상, 백내장 같은 시각장애를 가진 노인들에게서 매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더군. 환상이 보여도 말을 안하는 이유 알겠지? 노망 들었단 소리 알지?
이 환상이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 보다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군.
큰 교통사고로 2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어느 환자는 처음 깨어났을 때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보였댜. 의사 뒤에 하와이의 무희들과 럭비선수들이 둘러 서 있질 않나…
그러다가 그런 환상이 점점 없어졌는데 나중에는 가끔씩만 환상이 보였다더군.
뇌를 다쳐서 시야가 코를 중심으로 위만 보이고 아래는 환상들이 자주 출몰하곤 했댜.
(이렇게 환상이 보이는 걸 찰스 보넷 증후군이라 함)
이런 환상은 위의 맹점에서 처럼 지각적 채워넣음이 아니라 개념적 채워넣음이라고 햐.
그러니까 맹점은 아래에서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보정하는 거라면 찰스 보넷 증후군은 시각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기존의 정보들을 가지고 만들어낸다는 점이 달라.
암튼 맹점의 채워넣기든 찰스 보넷 증후군의 채워넣기든 우리의 뇌가 채워 넣는다는 거지.
찰스 보넷 증후군 환자가 볼 수 있는 환상의 종류에는 제한이 없는데 거기에는 유령, 천사, UFO 등 제한이 없댜.
우리 뇌는 현존하는 지상 최고의 가상현실 재현기란 말. 실감 나지?
다음엔 어떤 얘기가 나올 거 같어?
그래 다음엔 신을 본 사나이 또는 자기가 신이 된 사나이의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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