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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서블 (The Crucible, 1996) 감독 - 니콜라스 하이트너 출연 - 다니엘 데이-루이스(존 프락터 역), 위노나 라이더(애비 게일 역), 폴 스코필드(댄포스 부지사 역), 그 외 쩌리들... 배경- 17세기, 미국, 메사츠세츠 주, 세일럼 마을
기독교를 중요시 하고 교리의 가르침에 따라 도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마을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일럼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곳에 당돌하고 아름다우며 거침없는 성격의 여주인공 '아비게일 윌리엄스'라는 10대 소녀가 살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과 흑인 노예 '티튜바'와 함께 숲속에서 벌거벗은 채 춤을 추며 악마의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마녀 의식을 거행 중인 아비게일과 티튜바
아비게일은 과거 자신과 육체관계를 맺었던 훈남 농부 '존 프락터'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질투해 죽이고 싶은 충동에서 악마 숭배 의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악마의 의식을 거행하던 중 그 모습을 마을의 지도자 '패리스' 목사에게 들켜버리게 된다. 당시 엄숙한 사회 분위기에서 뒷감당이 두려웠던 몇몇 아이들은 형벌로 있을 매질과 손가락질이 무서워 기절한 척 하거나 말도 않고 누워있기, 횡설수설하기 등의 거짓된 행동들을 연기한다.
악마를 보았다고 거짓으로 연기 중인 마을 소녀들
그러나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 같은 이 모든 행동들이 어른들의 욕심과 자존심, 체면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히게 된다. 마을 어른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악마의 행위로 단정지어버리고, 다른 마을에서 온 악마 전문가 '존 해일 '목사라는 인물을 초청한다. 그리고 이 존 해일 목사는 당연히 이 사소한 사건에 기름을 들이 부어 버려, 사건을 더욱 커지게 만들어 버린다. 감당할 수 없을 만치.
거짓 증언 중인 소녀들. 얘네들 때문에 마을이 개판으로 변해버린다.
처음, 흑인 노예 티튜바가 언급한 악마의 서명에 관한 거짓된 자백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고, 하나 둘씩 마녀 재판이라는 명목으로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처음의 악마 숭배는 온데간데 없고, 점차 마을 유지들 간의 재산, 토지 문제, 권력 문제, 정치적 문제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라이벌들을 악마 숭배자로 낙인 찍어버린다. 근엄하기 짝이 없는 목사님들
그 와중에 아비게일은 신성한 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마을 유지들은 라이벌들을 없애기 위해 아비게일을 이용하고, 아비게일 역시 그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 자신에게 새롭게 부여된 꾸며진 ‘성녀’로서의 권한을 휘두르며, 다시 원래의 목적인 존 프락터를 차지하기 위해 계책을 꾸민다. 바로 엘리자베스에게 누명 씌우기다.
간지남 존 프락터. 잘 생겼다. 아비게일이 목숨 걸고 거짓말 해서 쟁취하고 싶어할만 하다.
마을이 개판 오분 전으로 향해가고 있다라는 소식을 알게 된 농부 존 프락터는 자신의 순결한 아내마저 아비게일의 모략 때문에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빠지게 되자, 과거 단 한 번의 실수였던 자신과 아비게일과의 간음까지 법정에서 스스로 밝히며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히려 존 프락터 역시 모함을 받아 버리고,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주의 최고 재판관까지 나서서 이 사건을 맡게 되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아비게일의 모함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존 프락터와 그의 마누라 엘리자베스. 근데 그의 마누라를 보아하니 나 같아도 젊은 아비게일보고 마음이 동하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마을 주민들 맘 속 깊은 곳에서 이미 신의 권위는 훼손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재판관인 목사들의 실수를 인정해버리면, 신의 권위를 부여받은 목사의 명예가 품격이 더렵혀져 버리게 될테고 이는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한 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너무나 불경한 일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죄 없는 양민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의 권위도 유지하고, 이 엉터리 사건을 중지시킬 궁여지책을 꺼내게 된다. ‘일단 신의 권위를 인정하고, 악마와 소통했다는 (거짓) 자백을 하라. 그렇다면 자애로운 신은 당신의 죄를 사하고 용서해 주실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미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린 법정에서 존 프락터의 진실을 위한 노력은 헛된 것이 되어버렸고, 아비게일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된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성실한 한 농부로서의 존 프락터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도 (거짓) 자백을 해야만 했고, 결국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자백에 있은 후, 재판관과 목사들은 존 프락터의 거짓 자백을 증명하는 서류에 직접 이름을 써서 서명하기를 요구한다. 이는 역사에 대대손손 남을 일이고, 이미 거짓 자백을 해 맘 속 깊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존 프락터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맘 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 양심으로부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존 프락터는 결국 거짓 자백 문서 위에 서명을 하지 못한다. 문서 위에 서명하게 될 자신의 '존 프락터'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못해 결국 그는 성가를 부르며 스스로 교수대에 오른다.
교수대로 끌려가는 존프락터. 그리고 그외 양심을 거부할 수 없었던 사람들
이 사건의 발단인 아비게일은 어떻게 되었냐고? 순종적이고,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에 충실한 존 프락터의 마누라 ‘엘리자베스’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아비게일이다. 그녀는 어리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다. 존 프락터도 과거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어 바람을 피웠을 정도니깐.
하지만 아비게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점차 자신을 옥죄어 오던 의심의 눈초리를 견디다 못해 저 멀리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존 프락터가 처형되기 전 날, 아비게일은 존 프락터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권유한다. 하지만 양심적인 존 프락터에게 이 상황에 도망이란 결국 악마와 소통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버리는 일이므로 아비게일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결국 아비게일은 엄청난 거금을 훔친 채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저 멀리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버린다.
존 프락터에게 구애 중인 아비게일. 하지만 프락터는 존나 매몰차게 거절함. 미안, 너와의 하룻밤은 그냥 불장난이었음 ㅋ
작품 코멘트
원작은 1900년대 중반 미국의 유명한 희곡 작가 '아서 밀러'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다.(‘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아서 밀러는 인간과 사회의 접촉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그로 인한 주인공의 심리적 반응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원형적 체험을 그리는 그리스 비극관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적인 현대 비극관을 역설한다. 즉, 신에 의해 행해진 범죄가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행해진 범죄를 절묘하게 그려냈다.
특히 The Crucible이 쓰여진 시기가 바로 냉전의 시기였고, 미국 내부에 '자유주의의 수호'라는 기치 하에 '공산주의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한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그 시기다. 미국 상층부의 자신의 기득권에 반대되는 자에 대한 관용이란 존재치 않았으며, 그러한 공포와 억압의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를 풍자적 방식으로 작품 내부에 나타내었다. 물론 이러한 외부적 상황을 배제한 채 내재적 관점만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하여도 굉장한 수작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이하게도 당시 유행한 시대적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리얼리즘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역사적 배경을 17세기 청교도(Puritan)인들의 작은 마을, 세일럼(Salem)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원작 희곡 작품과 영화와의 차이
본래 연극을 목적으로 쓰여진 작품이라 연극 속의 대사를 그대로 영화에 옮겨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대사는 물론이고, 작품 배경, 인물들의 생김새, 행동까지 원작 그대로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인은 영화를 먼저 보고 그 다음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는데 전혀 다른 선입관이 생기지 않은 채 편안하게 읽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영화가 원본을 90% 이상을 재현해 놓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만, 영화에서 중, 후반부로 가면서 인물간의 갈등이 고조되는데 원작에는 없는 몇 가지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아비게일이 성녀와 같이 행동을 하는 동안, 옆 마을의 해일 목사는 점차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곧 아비게일의 행동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에 아비게일은 자신을 의심하는 해일 목사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사탄과 유착된 관계가 있다고 지목한다. 하지만 사건을 주재하던 댄포스 주지사는 ‘목사가 악마에게 유혹 당할리 없다’라고 확언하며 교권에 대한 도전은 용인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장면이 추가 되었다.
이에 아비게일은 위기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삼촌인 패리스 목사의 돈을 훔친 뒤 존 프락터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며 설득을 하는 장면도 원작 희곡에는 없는 추가된 장면이다. (근데 원작이랑 영화를 한 번 밖에 감상하지 않아서 이 부분은 사실 확실치가 않다.)
1950년대 원작이 1990년대의 영화로 재탄생 되면서, 그 시기 동안 여성의 권리 역시 많은 부분에서 확대되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영화에서의 애비게일의 모습은 연극의 그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선과 악의 문제는 전혀 차치해두고 순수한 그녀의 역동성에만 주안점을 뒀을 때 말이다.
p.s) crucible의 사전적 의미로는 도가니, 시련 등의 의미가 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시련'으로 번역하였으나, 도가니의 의미 역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도가니라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녹이는 것이고, 메카시즘으로 단결하여 도가니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시켜 버린다. 미국 초창기 Melting Pot에 녹여지지 않는 이질적 문화들은 모두 배척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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