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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사람들 -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몸으로 살아가면서도 마라톤과 색소폰 연주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 김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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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픔만큼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다오, 테너 색소폰아”
시민에게 아름다운 선율 선사하는 ‘움직이는 음악가’ 호수공원의 색소폰 연주자
병마와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몸이 아프다는 게 자신을 얼마나 나약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달에는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몸으로 살아가면서도 마라톤과 색소폰 연주로 이웃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등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 김문길씨(51)를 만났다.
장소는 일산서구 주엽동 강선마을 사거리. 때는 시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2시 반경.
가로수 잎새마다 가을햇살이 은가루처럼 부서지며 쏟아져내리고, 바람 때문인지 햇살의 무게 때문인지 잎새는 하늘 하늘거리는데....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흐느끼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곡은 가수겸 작곡가 윤항기의 ‘나는 어떡하라고’.
수많은 차량들이 사거리를 오가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기괴한 기계적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사람들은 일상의 바쁨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거나, 경직되고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고 황급히 지나치고 있었다(아, 인간의 향기를 맡고 싶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들려온 이 테너 색소폰의 가슴 에이는 듯한 선율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도 간간 눈에 띄었다.
1톤 트럭을 몰던 어느 운전자는 차창을 연 채 담배를 꼬나물고, 담배연기가 눈을 성가시게 하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 기이한 모습을 째려보듯 바라보았다.
사진취재를 위해 벌건 대낮에 색소폰을 불게 한 것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잘못인들 어떠랴. 분명 저토록 정신없이 살아가며 내지르는 소음보다야 천배 만배 나은 것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철저하게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라는 처지지만 그것이 결코 나를 좌절시킬 수는 없다>
김문길씨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했다.
‘오십에 천명을 안다(五十而知天命)’는 말이《논어(論語)》에 있는데 분명 김씨는 천명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나이 오십이라고 누구나 천명을 알 수는 없으리라. 김씨에게 닥친 갑작스런 ‘사건’이 없었다면 그 역시 평범한 삶 속에서 여전히 천명을 모르고 있을는지 알 수 없다.
평생 하루 18알의 약 먹어야 하는 심장장애 3급
건국대 행정학과를 나온 뒤 서울 마포의 미 8군 용역회사에 들어간 김씨는 밤을 낮처럼 여기며 열심히 일했다.
2002년 12월의 어느 날 새벽, 김씨는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으로 잠이 깬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간 그의 병명은 심근경색. 사흘간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다 무려 9시간의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의 가슴과 왼쪽 팔, 왼쪽 다리에는 30cm나 되는 메스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심근경색으로 막힌 핏줄을 잘라내고 자신의 팔과 다리에서 떼어낸 핏줄을 이식한 흔적이다. 자신의 몸에서 이식한 핏줄이지만 수축 위험이 있어 수술 뒤부터 평생 아침 저녁으로 18알의 심장약을 먹어야 한다.
호흡 곤란 등 비상시에는 혀 밑에 넣어 먹는 약도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수술 후 지금까지 10여 차례나 이같은 ‘비상사태’가 있었다.
“죽음의 밑바닥에서 나는 삶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그는 그 아름다운 삶에 자신의 혼까지 불어넣는다.
10여 년 전부터 마라톤을 해온 그는 94년 10월 20km를 달리는 등 지금까지 수십 차례 대회에 참가했다. 수술 후에도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주변의 만류도 뿌리치고마라톤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그는 풀 코스(42.195km)를 5시간 21분 1초에 완주하기도 했다.
색소폰 카페 동호인들과 복지시설 위문 공연도
하루에 3시간 정도 색소폰과 ‘입을 맞추는’ 김씨는 인터넷 카페 ‘모아 색소폰’(http://cafe.daum.net/clubmore)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 카페에는 80명의 회원이 활동중인데 4월부터 11월까지 저녁 나절부터 밤 10시까지 호수공원 다리 밑에서연주를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군부대나 복지시설, 병원을 찾아 위문 공연을 해왔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빠의 음악적 재능을 닮아서였을까. 여중 2년생인 딸 하영이는 현재 피아노와 플륫에 빠져 있다.
아침마다 딸을 등교시켜 주는데 차에서 내린 하영이가 손을 흔들며 교실로 멀어져 갈 때마다 김씨는 다짐을 한다.
<근심하지 말거라. 아빠가 오래오래 살아서 꼭 널 지켜줄 테니...>
그와 4년 차이가 나는 아내 최성은씨는 레이크 쇼핑 1층에서 속옷 가게를 열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는 남편의 질병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분명 하나님은 남편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시고 있다고 생각해요”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면서도 그들 부부의 해맑은 웃음에 담긴 그 신비하기조차 한 평안함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 보았던 글귀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사진설명
1.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몸으로 살아가면서도 마라톤과 색소폰 연주로 이웃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등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 김문길씨.
2. 이들 부부의 해맑은 웃음에 담긴 신비하기조차 한 평안함은 무엇 때문일까. 순간 오래 전 보았던 글귀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3. 지난 9월 중순의 어느 날 밤, 일산호수공원에서 멋진 폼으로 그 자신의 18번 윤시내의 ‘열애’를 연주하는 김문길씨. 그는 아픈 몸이지만 뜨겁게 살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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