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쓰기일변도는 또 다른 전체주의다 -
[月刊朝鮮98년3월호]
- 왼손잡이를 위한 책들? 여기에 책 한 권이 놓여있다. 洋裝本이 아닌 보통 종이 표지의 책이다. 양장본이라하면 책의 표지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든 책이다. 그러한 책을 洋裝이라 하는 것은 한국과 동양에서는 단단한 표지의 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한 사람의 앞에 놓고 펼쳐보라고 하자. 우선 책이 세로본일 경우 독자는 오른손을 내밀어 엄지로 첫장을 펼친다. 다른 손 락들은 손의 움직임에 따라 책이 밀려나지 않도록 받쳐주고 있다. 다음 요즘 우리 출판의 주류인 가로본을 앞에 놓고 펼치라 한다. 그러면 독자는 왼손으로 펼치거나, 왼손으로 받친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펼친다. 여기서 세로본의 책양식은 오른손을 주로 쓰는, 사람의 습성에 자연스럽게 맞추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글자의 속성상 가로쓰기가 불가피한 서양의 경우 양장본이 왜 발달했는가가 밝혀진다. 양장본의 표지는 오른손의 손가락끝만으로도 쉽게 들려진다. 오른손만으로도 쉽게 펼칠 수 있는 책이 그들에게도 편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책은 조금 큰 경우는 대개가 양장본(하드바운드)이다. 그리고 그냥 종이표지책(페이퍼바운드)은 대개 아예 손아귀에 들어와 한 손으로도 펼칠수 있도록 작다. 크면서 종이표지책으로 되어있는 것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마음잡고 한 장 한 장 밑줄 그으면서 공부해야할 교과서들이다. 몇해전에 한 진보언론에서 우리 컴퓨터의 키보드가 왼손을 지나치게 많이쓰게 하는 등 오른손을 주로 쓰는 한국사람의 습관과 맞지않아 문제가 있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책들은 왼손의 사용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양손을 고루 쓰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하기야 발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운동을 하면 건강에는 더욱 좋을 것이다.)
- 거침없었던 가로쓰기 운동
우리는 80년대에 출판물의 가로쓰기 운동이 있었고 근래에는 신문의 가로쓰기 운동이 있다. 한결같이 가로쓰기가 편리하니 어서 모두 가로쓰기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출판물은 사실상 '통일'이 되었고 신문도 그러한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다. 한겨레신문(현재 한겨레) 이 최초라고 하지만, 북한의 로동신문이 더 앞섰다. 국내의 대표적인 문서편집기인 아래아한글은 스스로 민족주체성을 살리는 소프트웨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그들은 개발초기부터 특정 국어학계의 뜻을 따라 세로쓰기 편집기능을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순수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라면 개발자들 소신에 맞든 안맞든, 쓰이는 기능이라면 당연히 있도록하는 것이 고객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저네들의 소신대로 통일시키기 위해 일종의 '권력욕'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출판양식의 다양화를 억제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 이유뿐만이 아니겠지만 항간에 나오는, 아래아한글이 출판계를 후퇴시켰다는 말이 근거가 있음을 알수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동양 고유의 글쓰기 방식인 세로쓰기의 말살운동은 근세 수십년간 그칠줄 모르고 진행되어왔다. 물론 일부 서적에서 가로쓰기가 편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소리높이 외치면서, 기존의 관습을 무너뜨리고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보급할 정도의 절대적 우위의 방식인가. 그렇다면 가로쓰기가 보편화된 지금 우리의 독서문화는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고 출판계는 번창했을 터인데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또한 세로쓰기를 權威主義의 所産이라고 하며, 세로쓰기의 분위기가 주는, 글의 엄숙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의 소멸을 그렇게도 반겨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느님의 말씀(聖經)이 너무 엄숙하고 권위주의적이다... 쉽고 편한 한글가로쓰기로 바꾸자... 그리하여 하느님과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지내자... 등 가로쓰기 운동은 문화, 예술, 종교, ... 안 미치는 곳이 없었다. 수천년을 이어내려왔던 겨레의 文化樣式은 불과 일이십년 만에 바뀌어졌다. 文字문화는 住食과 달리 수요자의 선택폭이 넓지 못하고 따라서 교육계, 문화계 주도층의 영향력이 크다. 71년도에 나온 어떤 고전 번역책을 보았는데 서문에 '한자는 꼭 필요할 때만 괄호안에 첨부한다.'고 써 있었고 세로쓰기가 전성이던 그 시절에 가로쓰기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박정희의 한글전용정책에 의해 교과서에 漢字가 완전히 없어졌던 시절이었다. 80년대초까지도 세로쓰기로 된 출판물은 많았다. 그러나 그 뒤 가로쓰기책을 주도한 곳은 대체로 '운동권' 출판사들이었다. 문화계의 상당수는 가로쓰기든 세로쓰기든 큰 상관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쪽에서는 가로쓰기를 유달리 강조하기 때문에 결국 밀리는 것이었다. 가령 보수주의자들 중에 약80%가 세로쓰기를 선호하고 20%는 가로쓰기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경우 약간의 논의는 있을 수 있지만 세로쓰기는 그대로 존속된다. 그런데 보수주의자 50%와 진보주의자 50%가 합치면 가로쓰기를 주장하는 측이 60%가 되므로 가로쓰기로의 인위적인 '문화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교육계와 문화계는 다른 분야보다 진보세력이 우세하므로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가로쓰기를 한 후로 우리나라의 독서인구가 과연 얼마나 늘었는가를 따져보아도, 가로쓰기운동이 얼마나 우리 국가사회의 實利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기존의 전통이나 권위의 체취가 나는 것은 되도록 없애려는, 어떤 意圖에서 나온 것일 뿐이었다.
-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의 용도
가로쓰기의 방식은, 읽기에는 괴롭지만 어차피 꼭 읽어야 할 책, 빨리 읽어야 할 보고서나 매뉴얼, 특수기호나 도표가 필요한 글, 중요한 부분에는 밑줄을 그으며 외워야할 책 等에는, 불필요한 긴장을 덜어준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글 그自體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에는 글의 자연스러운 精讀을 유도하는 면에서 세로쓰기가 더 유용하다. 한글이나 한자를 모조리 가로쓰기로만 하자고 하는 측은 본래 북한과 중국공산당정부 뿐이었다. 어느 쪽이 편리하다는 것은 습관에 의한 것일뿐 아무 근거가 없다. 아직도 세로쓰기가 성행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이 그 때문에 나라가 발전못한다는 얘기는 없고 일찍부터 가로쓰기를 채택한 북한이 그 때문에 나라가 부강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근대 서양학문의 주요기호가 가로쓰기이기 때문에 일부 분야에 가로쓰기의 적용이 불가피할 뿐이다. 필자는 가로쓰기의 교욱만을 받았고 역시 가로쓰기가 편하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가로쓰기는 한 눈에 글 한줄을 보아 빨리 읽어내려가기 편할 때가 있지만 그러다보면 읽은게 무슨 내용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로 쓰기로 된 책은 글의 내용이 더 진하게 와닿는 느낌이 있다. 가로쓰기 信徒 중에는 가로쓰기 신문의 표제어에 세로쓰기가 섞여있다고 탓하기도 한다. 획일을 주장하는 것이 그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길에 나가면 곧 볼 수 있는 버스 옆면의 노선안내는 왜 가로쓰기로 하자고 하질 않는지. 우리가 즐겨보는 외국영화의 자막은 왜 가로쓰기로 하자고 하지 않나. 어떤 신문이 전면 가로쓰기를 발표할떄, 특정매체가 가로쓰기를 하든말든 별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무슨 대단한 쾌거인양 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 서양의 편리한 옷과 신발 등이 들어왔지만 우리것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대로 지켜지는 것도 많다. 집과 음식도 옛날에는 서양식이 좋다고 하고 그에따라 바꾸자는 말이 많았는데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우리의 온돌방이나 쌀밥 등은 지금껏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은 중국의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게 했다. 김일성은 바지는 아니지만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로 대충 통일시켰다. 박정희 또한 여자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고 바지를 입으라고 권했다. 모두가 實用性만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꼭 필요하지않은' 정서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에 의한 것이다. 가로쓰기도, '실용성' 한마디에 전통이나 특유의 분위기를 다 물리치자는 발상에서는 마찬가지였다. 世上事는 편리함이 전부가 아니다. 글은 분위기와 느낌도 중요하다. 실용성 이외의 다른 것도 추구하는 글에 대해 便宜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다름아니다. 남자가 세상의 일을 운영한다면 여자는 남자를 낳고 남자를 인간답게 한다. 그런면에서 남자를 實用文이라 비유한다면 여자는 文藝文이라 할수있다. 남자는 활동을 위해 두루마기를 옷장에 걸어두고 바지를 입고 다닐수 있지만 여자까지 굳이 모두 바지를 입으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 문학계에서 이러한 전통의 파괴를 너무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意外로 느껴진다. 수천년을 내려온 겨레의 文化樣式이 애매한 西歐式 편의주의 논리에 힘없이 무너져내릴 때 소리높여 저항한 문인은 별로 기억나지 읺는다. 허탈하고 아쉬우면서도 어쩔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체념하에 따랐던 것인가. 출판사가 월간, 계간의 문예지를 내는 것은 말 그대로 문예를 장려하기 위한 사업이라 하지, 그로부터 상업적인 이익을 낸다는 말은 여간해서 없다. 그런데 그 많은 문예지 중에서 전통의 미학을 살린 세로쓰기의 문예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의외이다.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가로쓰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어차피 경제성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예외없이 하나같이 '진보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모두들, 근래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이념적 狂氣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 세로쓰기의 현대적 활용
한글은 한자의 형태를 빌어만든 글자로서 로마자보다는 한자에 훨씬 유사한 글자다. 한글을 오백년동안 쓰면서 가로쓰기를 생각하지 못한 우리 조상들은 한글가로쓰기운동을 하는이들 만큼에 생각이 못미치지는 않았다. 가로쓰기는, 좁은 글자꼴을 갖고 上下가 들쑥날쑥한 로마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에 한글은 正方形의 글자꼴이므로 어느 방식으로 써도 가능하다. 한글을 억지로 가로쓰기와 연관짓는 것은 오백년동안 한글을 세로쓰기로 했던 우리 선조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세로쓰기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이 한글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다. 정 가로쓰기로만 하자면 로마자를 쓰자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명쾌한 태도일 것이다.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면 우리글의 서양글에 대한 유리함을 컴퓨터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컴퓨터 모니터 중에는 세로길이가 긴 것이 있다. 한 눈에 많은 글자를 보려면, 가로쓰기를 하는 英文에서, 세로가 긴 모니터는 유용하다. 하지만 그래픽을 보려면 가로폭이 길어야 하므로 불편하다. 한글세로쓰기는 한 눈에 많은 글자를 볼수도 있으면서 가로폭이 긴 일반 모니터를 쓸수 있다. 우리가 컴퓨터통신상에서 주로 쓰는화면은 가로 80바이트, 즉 한글로 40字이고 세로는 24行정도이다. 그런데 통신에 글을 쓸 때 가로 40자를 꽉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줄이 너무 길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1/3은 비워두고마는 것이다. 이는 헛된 전력낭비와 모니터의 소모, 그리고 리턴기를 자주 눌러야 하는 데서 생기는 시간의 낭비 등이 있다. 세로로 글을 쓴다면 한글의 경우 모니터의 상하폭은 글 한줄에 딱 적당한 크기이다. 그리고 한 화면에 줄을 勿驚 40줄 가까이 채울 수가 있으니 우리는 알찬 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생리상 잘 쓰이지 않는 :-) 등의 다양한 표정기호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 가로쓰기의 출판에 미친 영향
우리의 출판양식의 주류가 가로쓰기로 되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책 크기의 대형화이다. 세로쓰기가 보편적이던 시절에는 소설책은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크기인 46판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 작은 판형의 가로폭은 영문자를 쓰기에는 충분하지만 한글로 된 문장을 담기에는 부족하여, 충분한 가로 폭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두들 판형을 늘렸다. 그리하여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 일본보다 더 사치스러운 종이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작은책이 유행되지 못하게 한 것은 가로쓰기가 기여한바 적지않다. 세로쓰기가 일상적일 때는 우리의 책들도 거의가 그만한 크기였다. 영문자와 같은, 좁은 폭의 가로쓰기 글꼴을 개발해야 우리도 가로쓰기로 그만한 책을 보편화시킬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책을 보면 국판은 대체로 '꼭 필요해서 공부해야 할' 전문서적에 쓰이고 소설은 거의가, 우리로서는 몇권분량의 글이라도 손바닥에 들어오는 크기의 간편한 책 한권으로 나온다. 일본도 일반 책은 거의가 작은 세로쓰기 책이고 숫자나 도표가 많이 나오는 책만이 조금 큰 가로쓰기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심심풀이 소설 나부랑이'가 하나같이 국판으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또 多段편집의 경우 가로쓰기는 한 눈에 한 줄이 들여다보여 (이것이 그리도 강조하는 가로쓰기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눈길이 금방 오른쪽 단으로 미끄러져간다. 英文 다단편집의 경우에는 글씨의 모양이 조밀하여 단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한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오랫동안 읽기에는 부적합하다. 가로쓰기 이후에는 다단편집을 한 전집류가 성공하지 못하고 퇴조했다. 책들이 대부분 單段으로 하니 글씨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로쓰기를 한 이후로 그 많은 출판물들이 판형이 커짐으로 해서 생긴 종이낭비로 인한 외화낭비는 얼마인가... 상상만해도 엄청나다. 그리고 6~70년대 세로쓰기로 제작된 많은 우수한 출판물들이 死藏되거나 비싼 돈을 들여 가로쓰기로 다시 제작되곤 했고... 그런 일들 없이 어찌 오늘의 아이엠에프가 있었을까.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3-06-27 15:02:30 정치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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