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서기의 기년(날짜) 문제
<일본서기>의 기년문제, 史書(사서)의 기본은 紀年(기년) <일본서기>에 기록된 연도(年度)=기년(紀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도 인정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초대천황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한 것이 기원전 660년 1월1일(음력)이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2월 11일이라고 한다.(정말 BC 660년 음력1월1일이 양력으로 2월11일인지는 확인해봐야 한다.) 그래서 양력 2월11일을 일본은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신무천황이 실존인물이라고 여기는 사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원전 660년에 일본이 건국되었다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기원전 660년 전후에 국가를 건설했다고 볼 그 어떤 유물이나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일본서기>에 기록된 날짜(기년)를 일본인 학자들조차 믿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인 사서에서 날짜(기년)는 왕력/연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1년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규칙적이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1~2년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십 년, 몇 세기 차이가 난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 기준을 맞춰야 할 지 난감한 史書(사서)다. 기년문제만 놓고 본다면 官에서 펴낸 역사책(史書)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다. 그래서 일본 사학자들이 돌파구로 찾은 것이 <삼국사기>다. 그들 스스로 ‘믿을 수 없다’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기준으로 <일본서기>의 기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일본서기>의 날짜(기년), 120년(2회갑) 인상 정확한 <삼국사기>의 날짜(기년)
‘일본서기’라고 하면 ‘2주갑 인상’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여기서 ‘주갑(周甲)’은 회갑(回甲)과 같은 말이다. 1주갑은 60년이고, 2주갑은 120년이다. ‘2주갑(周甲) 인상(引上)’이라는 말은 연대를 120년을 上代(상대)로 끌어올렸다는 말이다. 나는 ‘주갑’보다는 ‘회갑’이 친근하여 ‘회갑’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서기 400년을 2회갑 인상하면 280년이 된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근초고왕은 375년에 사망했다. <일본서기>에는 255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정확하게 120년 차이가 난다.(갑자를 따지면 같은 해다.) 그래서 ‘2회갑(주갑) 인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중일 사서를 두루 비교하면 서기 255년에는 근초고왕이 활동하던 시기가 아님이 확인된다. 따라서 근초고왕의 사망 시기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날짜(기년)에 문제가 있을 때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한다.
<삼국사기> 近肖古王(근초고왕) 三十年(서기 375년) 冬十一月, 王薨 (겨울 11월, 왕이 죽었다.)
<일본서기> 氣長足姬尊 神功皇后(신공황후) 五十五年(서기 255년) 百濟肖古王薨(백제 초고왕이 죽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날짜(기년)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날짜(기년)가 전부 일괄적으로 120년 인상된 것이 아니라 불규칙하고 또 5세기 중반 이후에는 날짜가 어느 정도 맞다.
기원전 660년부터 461년까지 날짜(기년)는 신빙성이 굉장히 떨어지며, 375년부터 405년까지는 <삼국사기>와 비교하면 딱 120년 차이가 난다. <일본서기> 내용에는 ‘魏志云...’라고 하며 중국 사료인 <삼국지>를 인용하고 있다. 이는 8세기 초에 <기기>를 편찬자한 주도세력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서도 의도적으로 날짜(기년)를 조작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날짜를 조작해야 했었는지,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 파악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그리고 왜 375년부터 405년까지 역사를 집중적으로 조작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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