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맞는 말일까? 나는 개소리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운이 따르지 못해 2인자에 그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야? 런닝맨에서도 광수하고 한 조가 되면 능력자 소리듣는 김종국도 한 방에 훅~ 가잖아??
오늘 이야기 할 1973년의 소련 축구 대표팀 역시 이광수와 한 조가 된 김종국처럼 강한 데도 살아남지 못한 팀이었지. 납득이 안 가는 룰+소련의 월드컵 진출을 바라지 않는 FIFA 집행위원들 때문에.
당시 소련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서독월드컵에서 개최국 서독과 함께 브라질의 독주를 막을 유력한 팀으로 지목되었지. 그리고 그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역예선에서 프랑스, 에이레(아일랜드)라는 만만치않은 팀들을 상대해 3승 1패, 골득실 +3의 압도적인 성적을 내며 9조 1위를 차지했지.
그러나 본선직행의 행운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어. 왜냐하면 FIFA는 '유럽예선 1조부터 8조까지의 1위는 본선에 직행하지만, 9조 1위(소련)는 남아메리카 3조 1위와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고 룰을 정했기 때문이었지. 각 조 1위 중 승점이 가장 낮은 팀이 플레이오프로 가야지 왜 9조 1위가 플레이오프에 가야 돼?? 어쨌건 그 악법 때문에 소련은 남미 3조 1위인 칠레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뤄야만 했지.
1973년 9월 26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대다수 사람들은 소련의 우세를 점쳤어. 그럴만도 한 것이 칠레는 홈 어드밴티지에 편승한 월드컵 4강이 역대 최고 성적이었지만, 소련은 올림픽에서 금, 은, 동을 한 차례씩 수집한 비공식 세계챔피언이었거든. 그러나 양국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같은 해 8월에 일어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군사 쿠데타였지.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스탠리 라우스(Stanley Rous) 남작은 산티아고의 치안 상태를 고려해 1차전을 스위스로 옮겨 치르게 할 생각이었어. 그러나 반공주의자들이 다수였던 FIFA 집행위원들은 소련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산티아고 개최를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소련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심정으로 산티아고 행 비행기를 타게 됐지.
그리고 불길한 예감 그대로 산티아고는 소련 대표팀의 지옥이었어. 계엄군들에 의해 발가벗겨지면서까지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했던 공항, 빈민촌 꼬마들에 의해 토마토, 짱돌 세례를 받아야했던 호텔가는 길, 그리고 우익 청년들의 소음 테러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 소련 선수들은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에 들어섰지.
그리고 그 곳에서 소련 선수들은 제대로 된 지옥을 보게 돼. 경기장 한 가운데에서는 공산당원들이 계엄군들에 의해 총살을 당하고 있었고, 스피커에서 "저 기세로 소련 빨갱이들도 조져버리자"는 말과 함께 날아오는 맥주병, 레이저포인트 빛. 결국 겁에 질린 소련 선수단은 기권을 선언한 뒤 쫓기듯이 경기장을 빠져나가야만 했어.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열린 2차전, 소련은 1차전 기권패(0:2 패배)로 인해 3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했지만, 0:0으로 비기면서 칠레한테 서독행 비행기 티켓을 넘겨줘야만 했어. 브라질의 강력한 대항마 소련이 허망하게 예선에서 탈락하는 순간이었지.
그리고 소련은 5~60년대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공중분해되었고, 구 소련의 적자(適子)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는 이제 월드컵 예선 통과도 힘든 그저 그런 팀이 되어버렸어.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 산티아고 1차전이 당초의 계획대로 스위스에서 치뤄졌다면, 스위스 1차전에서 이긴 소련이 본선에 진출했다면 서독 월드컵의 주인은 누가 되었을까??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3-26 17:29:47 연예·스포츠-연재기사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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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