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나누크
다큐멘터리는 사실(Fact)을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연출자의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 의도는 왕왕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하긴 CCTV가 아닌 만큼 연출자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다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연출자의 의도’로 인해 다큐멘터리는 편집이나 BGM, 이야기 구조에서 극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사실 영상논리의 구조로만 따져 보면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는 크게 다를 게 없다. 본질은 마찬가지다. 설득력 있게, 재밌게 만드는 거다. 그래야 사람들이 보니까.
심지어는 촬영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고 동물일 경우에도 인위적인 연출은 흔하게 이뤄진다. 예를 들어 주인을 너무 사랑하는 당나귀가 한 마리 있다고 하자. 그런데 주인이 잠깐 당나귀를 집에 두고 출타할 일이 생겼다. 당연히 당나귀가 우리를 걷어차고 주인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이걸 보는 관객은 “말 못하는 짐승이 거 참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는 재미있어진다. 당나귀의 충성심이 특이할 정도로 눈에 띄니까. 그런데 당나귀가 주인을 끔찍이 따르고 좋아하긴 하는데 주인이 출타할 때 아무 반응이 없다면? 제작진은 당나귀가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어 당황한다. 제작진은 이 장면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당나귀가 무조건 난리를 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암당나귀를 데려와서 우리 근처에 놓아 둔다. 그러면 그제서 당나귀가 우리를 부셔 버릴 듯 난리를 친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촬영하고 떠나는 주인의 모습과 교차 편집해서 붙여 넣는다. 당나귀가 주인을 너무 좋아하고 따르는 건 사실이다. 당나귀가 우리를 부술 듯 난리를 친 것도 사실이다. 주인이 출타할 때 당나귀를 잠시 바라본 것도 역시 사실이다. 이 중에 거짓은 없다. 모두 사실이다. 그저 극적 구성을 위해 좀 손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인위적인 연출이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북극의 나누크>는 극적 구성을 가진 다큐멘터리의 원조다. 말하자면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극영화의 영향을 받은 편집과 구성으로 1920년대에 촬영된 다큐멘터리라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편집과 구성이 깔끔하다. 지금으로 치자면 나레이션 역할을 하는 캡션도 중간 중간 삽입된다. 제작자이자 감독인 로버트 J. 플래허티는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당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에피소드 중심의 20분 남짓 한 영상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꽤 파격적이었다. 극장에 찾아온 사람들도 어디 북극 근처에 사는 미개한 원주민들 생활상 정도나 보여주는 걸로 생각했다가 깜짝 놀란다. 굉장히 사실적인데다가 너무 극적이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정말 ‘진짜’라니 놀라운 것도 당연했다.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진실’이라는 추상적 이미지가 가진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했다. 로버트 J.플래허티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플래허티 감독은 북극의 나누크를 제작할 때 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 손을 좀 봤다. 일단 주인공인 나누크의 이름부터 문제였다. 너무 어려웠다. 본명이 ‘알라카리알락(Allakariallak)’인데 부르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쉽게 ‘나누크(Nanook)’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누크의 아내로 나오는 두 여인들도 실제로는 그의 아내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감독인 플래허티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인들이었다. 플래허티는 유럽인들이 가진 보편적 정서를 공명시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이누이트 가족을 만들었다. 즉 극적 구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연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나누크를 포함한 이누이트인들은 이미 총을 이용한 수렵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래허티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나누크를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나누크를 비롯한 이누이트인들은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물론 영화에서는 극적이고 성공적인 사냥 장면들만 편집해서 보여졌다. 플래허티가 만들어 낸 가짜 상황 연출은 이를 제외하고도 더 많다. 플래허티는 영화 틈틈이 캡션으로 나누크를 ‘위대한 사냥꾼’으로 부른다. 요즘 말로 하면 ‘캐릭터’를 부여한 셈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영민한 감각의 감독이긴 하다. 플래허티는 자신이 명명한 ‘위대한 사냥꾼’으로 인해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그 위대한 사냥꾼 ‘알라카리알락’은 2년 뒤 굶주림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플래허티의 성공 이후, 그의 뒤를 잇는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오지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조류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틈만 나면 아마존이며 아프리카며 이제 현대 사회에 얼마 남아 있지도 않은 그들을 카메라로 비춘다. 심지어 오지 원주민 중 몇몇은 이제는 프로(?) 출연자가 되었다. 촬영팀에게 출연비를 요구하는 건 일반적이고 평소에는 현대적인 생활을 하다가 촬영팀이 오면 의상(?)을 갈아입고 전통적인 생활상을 재현하기도 한다. 하긴 전 세계에서 일 년에도 수십 번씩 촬영을 오는데 어느 정도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촬영 협조가 잘 되기 때문에 제작팀도 편할 것이고 말이다. 물론 과장은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의문이 든다. 과연 이런 다큐멘터리가 왜 필요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북극의 나누크>는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다. 흑백이고 무성영화지만 의외로 굉장히 재밌다. 나누크의 개성과 매력도 만만찮다. 그의 얼굴엔 표현하기 힘든 순수함과 깊이가 있다. 낚시를 해서 팔뚝만한 연어를 잡아 올리고, 순식간에 이글루를 만들어 얼음 창문까지 달아 넣는 그의 모습은 듬직하기도 하다. 눈으로 작은 곰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활쏘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찡하다. 여기서 나오는 이누이트들의 생활상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과장은 있지만 전통적 사냥 방식을 표현하기도 했고 이누이트 가족들의 생활상도 영화에서 표현된 것과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이 영화를 보고 서구인들이 이누이트족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도 하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서구인들이 정말 이 영화를 보고 이누이트들에 대한 생각을 바꿨을지. 그래서 그들의 삶이 나아졌을지. 이 다큐멘터리가 정말 이누이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꼭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저 영화 속의 나누크, 아니 ‘알라카리알락’의 깊은 눈매와 순수한 웃음만을 기억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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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