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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유치원생이었다. 차량이 끊긴 한적한 도로에 탱크 한대가 느리게 지나갔고 한참뒤 유리창문이 깨진 버스한대가 지나갔다. 그 버스에는 피로쓴 광목 플랭카드가 걸려있었고 총을든 아저씨들이 유리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우리아버지는 그 아저씨들에게 보름달빵과 칠성사이다 한박스를 건넸다.
시민군... 그들의 이름은 시민군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5.18을 어렴풋이 알았던듯하다. 동명여중을 다녔던 나는 시내와 학교가 가까워 해마다 5월이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도청으로 향했다.
긴 꽃무늬 개더스커트를 입은 친구들과 함께 카톨릭센터에서...ymca에서...전일빌딩에서... 영상을 보고..사진을 보며..전단지를 얻어와 울면서 그 전단지를 읽었던 중학생 시절이 내게 있었다.
후덥지근한 공기..햇살은 눈부섰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나무위에 올라가고.. 그렇게 모여서 함께한 도청 분수대.. 누군가에게는 5월이 라일락 꽃향기의 추억을 불러온다면 내게는 그 처참한 사진의 전단지를 붙잡고 울었던 기억이 소환된다..
대부분 이런 성장과정을 거쳐온 광주 사람들에게 투표란...선거란...한가하게 정책과 공약을 보고 무엇이 내게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일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폭도가 아니라고... 빨갱이가 아니라고 총에 맞아 죽어간 그냥 광주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고 그렇게 말해줄 정치인들이 필요했다. 민주당과 광주는 그렇게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5.18전야제때 광주에 내려온 송영길과 우상호 김민석이 룸살롱에서 여자를 옆에끼고 술을 먹었다고 해서 한나라당을 뽑을수는 없었다.
호남고속철도가 적자가 예상되니 절대 개통하면 안된다고 이해찬이 반대한다고 해도 한나라당을 뽑을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이용섭시장이 전두환의 비서를 했던 전력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쪽 당을 찍을수가 없는것이다.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가 우리를 폭도라고 말하고 빨갱이라 말하며 간첩이라고 말하는 당에게 어떻게표를 줄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40여년이 흘러왔다. 그리고 마주한 이번대선.. 나는 이재명을 찍을수도 국힘을 찍을수도 없는 광주사람이엿다. 제발 이잔을 내게서 치워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진짜 죽을 만큼 괴로웠다.
기권 아님 안철수.. 라고 생각했던 내게 윤의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고 그 책꽂이에는 김대중평전과 새천년 민주당의 제1강령이었던 중도적 진보에 관한책, 중독적 진보 행복국가로 가는길이 꽂혀 있었다.
그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싣는것을 찬성 한다고 했고 김대중대통령의 유세장에 갔었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균형 발전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며 대구에서는 호남이 잘살아야 대구가 잘산다고 유세를 하고 목포에서는 대구가 잘살아야 목포가 잘산다는 유세를 했다. 김대중도 호남도 빨갱이라고 말했던 그당의 대선 후보는 그렇게 사뭇 다른 언어들을 풀어놓았다.
그 유세들을 들었던 순간이 평생 민주당만 찍어온 광주 사람인 내가 또하나의 선택지를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주 사람들은 그 새로운 선택지를 선뜻 택하기가 두렵다.
그것은 아직 광주가 그밤의 딱콩거리는 총소리를 잊을수 없기때문이며 창문을 막아놓은 카키색 담요를 뚫고 혹시나 총알이 들어올까 숨죽였던 그밤을 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이해하고 다독여 주시라. 광주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책과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게 선거라는걸.. 이쪽을 찍을수도 있고 저쪽을 찍을수도 있는게 선거라는걸.. 우리 광주는 아직도 그걸 받아들이는게 힘들다.
그 표하나에..민주당을 찍은 그표하나에 우리 간첩아니고..폭도 아니고.. 그날 그냥 그렇게 무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하는 그 마음을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투표를 통해 말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이 더욱더 용서가 안된다. 그 광주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 백제니 수박이니 전라디언이니 하는 호남혐오의 단어들이 마구잡이로 민주당내에서 쏟아져 나오고 복합쇼핑물을 이야기 하니 가난한 사람이 명품시계차면 부자되냐며 기어코 미래형 명품재래시장을 공약으로 내건 그 민주당이 용서가 안된다.
누군가 그랬다.. 민주당에게 광주는 유니셰프 홍보책자속 빼빼말라 울고있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같은 존재인거냐고..
광주는 ..민주당만 애닯게 바라봤던 광주는... 이제 좀 다른 선택지를 받아들여도 되는건가 하고 망설이고 있다.. 고민하고 있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니 그대들 마저 호남을..광주를..욕하지 마시길..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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