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할머니는 평생동안 모은 돈을 사학재단에 기부하고 가난하게 돌아가신다. 숭고한 정신이다. 널리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 돈 나나 좀 주시지, 하는 투정이야 할 수 있지만, 그 갸륵한 정신을 욕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누구도 김밥 할머니를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뽑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김밥 할머니는 자기희생의 정신이 가득하시고, 성실하며,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에게도 그런 점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김밥 할머니를 대통령으로 뽑자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고? 김밥 할머니가 무식하다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김밥 할머니보다 더 무식하지만, 그래도 그놈들은 정치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투표지에 도장을 찍지만, 왜 김밥 할머니에게는 출마하라는 소리조차 하지 않을까?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 할머니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입장이다. 입장이 없는 사람은 선한 일상인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이 될 수는 없다.
정치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세우고, 그 입장을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그 입장 정리와 선전선동의 작업은 정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의 본령은 대의에 있고, 대의의 본령은 정당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당이 밝히는 입장을 듣고, 그 입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하고, 정당 일반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국민은 최종적 의사결정권자이다. 국민이 최종 의사결정권자로 제대로 군림하는 때,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발휘한다.
김밥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입장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선한 성품을 온 인격으로 말하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감동할 수 있지만, 할머니를 우리의 지도자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할머니가 정치를 하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박봉팔의 안철수 비판 팩트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으면 솔직히 헛웃음이 나온다. 김밥 할머니의 선행에 대해 까려구 하는데, 그걸 까서 어쩌자구? 안철수가 7년동안 무료로 백신 개발한 것은 그 자체로 선한 행동이다. 안철수가 1500억을 기부한 것도 선한 행동이다. 안철수가 세계 최초도 아닌데 최초라고 구라쳤다는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고 간에 거의 최초인 것은 분명하며, 도스시절 그에게 감사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백신 유료화의 선두주자라고 까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에 값을 매기겠다는데 어쩌라구? 아무튼 박봉팔이 까는 팩트를 들으면서, 나는 '그딴 소리가 어지간히도 먹히겠다' 싶은 심정 뿐이다.
왜냐하면 안철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입장도 발표한 적이 없다. 그는 한미 FTA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도 말하지 않았고, 김진숙의 투쟁에 대해서도, 유성기업의 테러에 대해서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말하지 않았다. 그냥 한나라당은 싫은데 나는 정치는 잘 못하지만 행정은 잘하니 서울시장 함 해보고 싶다는 소리 밖에 없었다. 진짜 븅신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고, 박원순한테 양보한 것도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오세훈과 맞먹는 또라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좋은 머리로 금방 배워서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만 나의 안철수에 대한 호의는 '그가 김밥 할머니와 동류'라는 선에서만 작동한다. 그가 정치인이 된다고 나대는 순간 그는 한나라당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평가가 그대로 들어간다. 최소한 한나라당 개새끼들은 입장이나 발표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입장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있고, 그들에게 동조를 구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 범주에서 한나라당은 최소한 정치를 정상적으로는 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하나의 정책이 정신병자 수준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런데 안철수를 보라. 안철수가 1500억을 기부했다. 그것을 기반으로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다고 해석해 보자. 세상에 이런 개새끼에 멍청한 새끼가 어디 있는가?
개새끼라고 함은, 자신에 대한 지지를 1500억이라는 돈으로 사려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똑같은 짓을 했다. 다만 이명박은 청계재단이라는 또다른 사기를 쳤다는 점에서 좀더 추잡하지만, 돈으로 표를 구걸하는 비루한 짓은 똑같다.
멍청한 새끼라고 함은, 지금 한국사회에 1500억 기부라는 퍼포먼스가 중요한지, 아니면 한미 FTA를 비롯한 각종 사회현안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입장표명이 중요한지도 구분 못하는 새끼라서 그렇다. 어떤 착한 부자가 1500억 기부했다. 어쩌라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어떤 기부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했고, 자기도 한푼도 기부 안했다. 그러나 나는 정상적으로 세금내고 정상적으로 상행위를 해서 소비자들에게 효용을 주는 기업가가 세금 떼먹다가 들켜서 재산기부하겠다는 기업가보다 천오백만배 정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철수가 '정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 같다. 그가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까지는 그의 선의를 충분히 칭찬해 줄 것이다. 김밥할머니는 얼마나 숭고한가 말이다.
그러나 그가 정치의 길에 발톱한자락이라도 걸친다면, 그 숭고함의 크기만큼이나 쓰레기로 치부해 줄 것이다.
물론 안철수 좋다고 대통령 만들자고 떠받치는 색히들은 안철수보다 더 허접한 색히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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