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이제 시작이지만 박원순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우호적인 것 같다. 최소한 흔히 말하는 뒤통수 치는 짓거리를 박원순이 할 것 같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고('혁신과 통합'에 합류), 선거기간 중 제시했던 공약에 대한 이행도 신속한 결단력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모양세를 보니 적어도 서울시의 행정에 대해서는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가치와 정책
나는 박원순을 정치가로 보지 않는다. 애초 공언한대로 그는 행정가로서 서울시장이지 정치인 서울시장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와 행정은 '같지만 다르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정치란 이념과 가치를 법이라는 형식에 담는 영역이고, 행정이란 정치영역에서 선택된 가치와 이념의 구체화된 산물 즉 정책의 집행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이 정치영역(가치판단)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한다.
때문에 자치단체장이 어떠한 배경을 같고 있느냐에 따라 정치에 비중을 두기도 하고, 행정의 역할에 더 충실하기도 한다. 이 차이를 분명히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쟤는 하는데 너는 왜 안하니? 라는 접근을 하면 피차간에 끝나지 않는 논쟁만이 있을 뿐이다. 벌써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박원순을 인정할 수 있는 이유
가치판단의 영역 즉 정치란 공간은 극심한 논란을 수반한다. 우리가 한번 지독한 경험했다. 참여정부에서. 결과적으로 완전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당시의 경험과 종국적인 성공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엄청한 자산을 남겨주었다. 노무현의 희생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구시대의 막차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첫차가 되었다. 최소한 향후 30년은 지탱할 수 있는 가치의 영역이 노무현에 의해 성립되었고, 남은 것은 그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라는 정책의 영역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남은 과제가 되었다. 박원순은 그러한 수단들중 하나로 기능한다고 보면 된다.
즉 더이상의 가치와 관련된 대립은 (적어도 현 야당진영에서는)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이미 노무현에 의해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남는 것은 구체화작업 뿐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행정의 영역에서... 어느 누구도 노무현에 의해 확립된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시한번 말하면 노무현이 곧 판단기준의 잣대가 되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박원순에 대한 판단기준도 노무현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판단기준은 탈권위주의에 기초한 서울시 행정이 어떻게 구현되는 가에 초점이 주어져야 된다고 본다. 즉 이런거다. 애초에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때 새로운 시도는 혼란과 불피요한 논란을 야기한다. 더군다나 가치와 이념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노무현에 의해 이념적 가치적으로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짐으로써 향후 박원순이 가고자 하는 행정 또는 (정치)의 영역은 노무현이라는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 지고 결과적으로 박원순은 노무현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협치 그리고 네트워크 조직
노무현이 관여하고 개입한 영역은 너무나 광범위하다. 때문에 남아있는 자들 개개인에게 노무현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단지 그 많은 것들중 일부만을 감당할 뿐이데 말이다. 박원순에게 정치의 영역에 대해 너무 깊은 요구하지 말것이며, 정치인 출신들에게 행정의 영역에 대해 너무 깊숙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된다. 그들에겐 너무나 큰 무리한 요구이기에 그렇다. 단지 그것들중 몇 가지만 요구하고 지켜보자. 노무현의 모든 것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 합쳐져야 본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행정의 영역에서 내가 박원순을 바라보는 관점은 '협치와 네트워크 조직'운영과 관련해서다. 둘다 권위주의 또는 관청위주의 시각이 아닌 시민이 되었든 조직이 되었든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중심의 행정이다. 거창하게 진보세력이 말하는 이념으로서의 사람중심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구현되는 당파성에 기초하지 않는 인간중심의 행정이 어떻게 가능한가? 에 대한 호기심이다. 분면 단점이 존재하지만 특히나 '영혼이 없는 존재'라 일컬어지는 철밥통 공무원조직과 모였다 하면 사적이익에 매몰매되어 버리는 시민들 수준이 엄연한 현실에서 어느정도 가능할까? 직접 간접적인 15년동안의 경험이 어느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에 대한 한편의 호기심과 다른 쪽으로는 만약 박원순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지형의 또다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때문이다.
사람중심, 공동체주의, 환경에 대한 배려 등.... 이념적으로는 진보에 가깝고 행태적으로는 합리성에 기초한 정치 또는 사회원리가 지배적인 가치로 대두될 수 있다. 하나의 구체적인 성공모델은 다른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정치의 영역에까지 그 효과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와 도전이 계속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경쟁 그리고 경쟁
박원순과 안철수는 다르다. 내게 있어 만약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했다면 박원순에 대한 잣대가 그대로 적용되었을거다. 하지만 서울시장은 물거너갔고 남은 것은 대통령직인데... 대통령직이란 다른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즉 이념과 가치의 문제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옳고 그름에 대한 냉혹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안철수의 대통령직 출마에 대해 비판적이고 결국엔 그가 출마하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안철수(박원순포함)가 차지하는 정치적 역할때문이다. 어짜피 선거란 중도세력을 누가 차지하는 냐의 싸움이다. 특히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것처럼 지역이 아닌 세대별 선호도가 뚜렷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강하게 다가오는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안철수는 비록 성향이 친딴당쪽에 가깝다 할지라도 반드시 야권의 경계안에 묶어 두어야 한다. 즉 그가 대통령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많은 중도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 세력을 잡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쉽게 이기지 못한다. 대선은 더 말할거리도 안된다.
그리고 안철수의 존재는 야당의 대권주자에게도 이로운 점이 많다. 계속적인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 내고 안철수의 존재로 인해 그 결과물들이 좋은 쪽으로 생산될 가능성이 많다. 당장 민주당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안철수는 적어도 합리성을 가진 이다.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기본개념이 있다. 다른 것 다 무시하더라도 이 정도면 야당의 바운더리 안에 묶어둘 자격이 된다. 말로만 진보와 개혁을 외치지만 자신의 이익이 걸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적이익에 몰두하는 이들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고 본다. 그들은 언제든 뒤통수를 친다. 최소한 안철수는 배신 때리는 짓거리는 안한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보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