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 by Henri Fantin-Latour
맨 왼쪽이 베를렌, 왼쪽에서 두번째가 랭보 랭보(1854-1891)
1875년, 스물 한 살의 랭보는 걷기 시작한다. 걸어서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베를렌과의 폭풍 연애는 브뤼셀에서의 권총사고로 끝나고, 베를렌은 그 일로 감옥에 갔다. 베를렌을 중심으로 한 문인 그룹은 랭보를 뜨악해했다.
▲ Rimbaud Wounded, Jef Rosman
1873년 6월 베를렌이 쏜 총에 손목을맞고 다쳐 누워있는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뒤로 하고 랭보는 길을 떠났다. 그 사이 감옥에서 나온 베를렌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온 길이었다. 랭보의 여정 가운데 네덜란드와 관련된 일이 있더라.
1876년, 랭보는 네덜란드 중부지방의 하르더르베이크(Harderwijk)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랭보가 별 볼 일 없는 이 동네까지 온 까닭은?
바로 군대를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인도네시아) 식민지 군대를 모집했는데, 유럽 각지에서 하르더르베이크로 모여든 용병들은 술 마시고 사창가를 어슬렁거리며, 수영을 배우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랭보의 목적은 네덜란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짜 여행’과 모험이었다. 어디로든 가야했을 지도 모른다. (베를렌은 랭보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내라고 했다.)
하르더르베이크에서는 랭보가 제 고장에서 머물다 갔음을 기리고 축제까지 연다. 랭보는 여기서 23일을 지냈다. 1876년 5월 18일 목요일에 도착한 랭보는 196명의 다른 용병들과 함께 6월 10일 하르더르베이크 기차역으로 행진했다. 항구인 덴 헬더르(Den Helder)까지 가는 기차였다. 덴 헬더르 항에서 <오란여 왕자(Prins van Oranje)>호는 랭보를 수마트라의 바타비아까지 데려다 주었다. 한 달에 걸친 항해였다. 아체의 술탄과 싸우겠다고 모여든 용병 중에 프랑스인이 랭보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1876년 인도네시아의 아체 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용병은 1100명이었다고 한다.
자바에 도착한 랭보는 군대를 탈영한다. 동료 병사의 장례를 치른 뒤였다. 수마트라 섬을 이리저리 떠돌던 랭보는 몇 달 뒤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당시 네덜란드 군대 기록에는 1876년 8월15일 탈영했다고 적혀있다. ※ 아체 전쟁 네덜란드는 1800년부터 지금의 인도네시아를 "네덜란드령 동인도" 라는 식민지로 삼았다. 수마트라 섬의 북쪽에는 오스만 제국의 보호 아래 있었던 아체술탄국이 있었는데, 이 지역을 나눠먹던 영국과 네덜란드는 아체 술탄국은 그냥 놔두기로 했었다. 그러나 열강들의 힘 관계가 달라지고 (네덜란드의 지배를 묵인), 남쪽으로 팽창하려는 아체 술탄국과 네덜란드는 충돌하여 1873년에서 1904년 사이에 아체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네덜란드 승리로 인도네시아 지역을 완전 점령. 랭보의 삶과 문학 여정에서 하르더르베이크는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 여기서 시인으로서의 삶은 막을 내리고 모험가가 되어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그 뒤로 랭보는 3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쓰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이 작은 도시에서 여는 축제는 주로 문화 행사다. 연극, 강연, 자료 발간 행사 등이 민간 단체 주도로 이뤄진다.
▲ 랭보의 시 <나의 방랑>, 하르더르베이크
시인과 포주 얼마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내용 하나.
랭보가 그 군입대를 빙자한 여행을 하려고 왔던 하르더르베이크에서 만난 사내와의 이야기다. 랭보는 롯테 핏쪄(Rotte Pietje : ‘썩을 핏쪄’ 정도의 뜻. 매독 같은 성병이 악명 높을때라는 걸 감안하시라)라 불리는 창녀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롯테 핏쪄의 포주와 시비가 붙었는데, 한 사내가 랭보를 곤경에서 구해준다. 루이 항야스(Louis Hangjas)라는 이 사내와 랭보는 곧 친구가 된다. 하르더르베이크에서 열리는 랭보 문화행사에는, 루이 항야스가 네덜란드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영국인이었다, 아니다 항야스는 그냥 별명이라고 봐야된다, 하는 자료들이 발간되고 세상에 알려진다. 랭보의 삶에서 조금은 비어있는 한 부분에 대한 퍼즐을 맞춰가는 것. 랭보와 항야스는 어떤 사이였는지도 여러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는, 친구라기 보다는, 좌충우돌하던 한 시절, 오다가다 잠깐 사귄 사이였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낯선 이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낯선 곳에서의 우정이라고 한다.
어제 기사에는, 루이 항야스에 대한 다른 제보가 나왔더라. 루이 항야스는 1853년에서 1912년까지 살았으며, 상인이자 피아니스트였고, 하를렘에서 사망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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