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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그늘 53 <에필로그 1. 정의를 세우다>
글쓴이 : 적단                   날짜 : 2011-12-15 (목) 18:01 조회 : 6374 추천 : 16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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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필로그 -


   1. 정의를 세우다


한 중년의 등산객이 경기도 포천 근방의 이름 없는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맵시 있게 받쳐 입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베이지색 조끼며 의상과 조화를 이루는 연한 갈색의 세무가죽 배낭, 그리고 투박하지 않아 날렵해 보이기까지 한 디자인의 밤색 등산화로 미루어 근처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거기다가 머리에 눌러쓴 검은 색 야구모자와 그 밑의 짙은 갈색 색안경은 그가 평범한 등산객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야산을 오르기에는 지나치게 완벽한 차림새였다.


아직 쌀쌀한 기운이 채 물러가지 않은 이른 봄이었지만 산에는 이미 봄빛이 완연했다. 봄빛은 온 산을 점령한 연한 녹색의 새순들과 그곳에 붉은 색으로 점점이 수놓아진 진달래꽃들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그는 익숙한 길이라는 듯 머뭇거리지 않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곧장 능선으로 올랐다. 능선을 타고 한참을 걸어서 그가 당도한 곳은 주위에 커다란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관목이 우거져 있는 산등성이였다. 파인 힐 골프장의 15번 홀 그린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다.

그는 그곳에서 서성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는 몸을 숨긴 채로 안경을 벗고 수건을 꺼내어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안경과 수건을 배낭의 작은 주머니에 잘 챙겨 넣은 다음 배낭 속에서 부드러운 천에 싸여있는 몇 조각의 무거운 물건들을 꺼내었다. 그는 신중하고 느린 동작으로 그것들을 조립해 나갔다. 조립이 끝나자 그것은 한 정의 날씬하고 단단한 저격용 소총이 되었다.

미국의 레밍턴 사에서 제조한 ‘M24 SMS스나이퍼’ 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었다. 

김인철이 대선직후 유국민이 당선자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서석준을 사전 준비팀장으로 발탁되도록 하고 자신도 수행원중의 하나로 따라간 이유는 이 저격용 총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당선자가 교민만찬을 주재하고 있는 시간에 서석준과 함께 무기 판매상에게 갔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물건과 현금을 맞교환하는 프로만을 위한 곳이었다. 그는 가볍고 분해하여 휴대가 간편하다는 특징 때문에 몇 번 시험 사격을 해 본 다음에 이 총을 선택했다.

그것을 국정원 요원들 짐에 포함시켜서 한국에까지 가져다달라고 부탁했을 때 서석준은 어디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호신용으로 보관하려고 한다고 대답하자 서석준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믿지 않지만 너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스나이퍼의 다리를 펴서 거치시키고 그린 중앙의 홀에 꽂혀있는 깃발을 조준했다. 스나이퍼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깃발까지의 거리는 500미터 남짓 되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조그만 삼각 깃발의 중앙에 망원렌즈의 십자가를 올려놓고는 가볍게 방아쇠를 당기자 틱 하는 소리가 났다. 조금 후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싱겁게 끝날 것이었다. 그는 총을 다시 들어서 여섯 발의 실탄을 장전했다.

수풀 속에 숨어서 기다린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낯익은 얼굴이 그린에 나타났다. 네 사람 중에 두 사람이 아는 얼굴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공수부대사령관을 지낸 사람이었다. 표적이 곧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었다.

전 재산이 27만원 밖에 없다는 목표인은 골프를 칠 때면 항상 3개 조를 만들어서 온다. 앞 팀과 뒤 팀이 모두 자신의 측근들로 구성되고 자신은 가운데 팀에서 친다. 경호상의 목적도 있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로 가금씩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탓이기도 했다.

담배 한 대를 피울 시간이 지나자 목표물이 동료들과 함께 그린에 올라왔다. 카우보이모자 덕분에 대머리가 가려졌지만 그는 첫눈에 목표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구에겐가 들은 '저격을 하기에 골프를 하는 중인 사람이 가장 쉽다.'는 말이 맞으리라. 골프중인 표적은 퍼팅을 할 때 충분한 시간동안 동작이 정지된 상태의 과녁을 스스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엎드려서 자세를 취한다음 렌즈를 통해 눈으로 목표물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목표물의 동작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린 위의 깃발이 꽂혀있던 장소 근처에서 목표물은 고개를 숙이고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망원렌즈의 십자가를 목표물의 얼굴에 올려놓고 다시 한 번 얼굴을 확인했다. 굳게 다문 입 주변에 굵은 주름이 있는 얼굴을 확인한 다음 천천히 렌즈를 아래로 내렸다. 십자가가 왼쪽 가슴에 위치했을 때 그는 호흡을 멈춘 다음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어깨에 와 닿는 개머리판의 반동은 예상보다 약했다. 이상적인 작동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시 동안 목표물이 움직이지 않다가 균형을 잃는 순간 같은 과녁에 한 발을 더 쏘았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총을 둘로 분해하여 배낭에 넣었다. 두 개의 탄피를 찾아서 줍고 짐을 다 꾸린 다음 목표물 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쓰러진 목표물 주위에 몰려들어있었다. 그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거나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골프장 쪽에서 저격자가 이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직접 이곳에 올 수 있는 길은 없다. 골프장과의 사이에 낭떠러지를 이루는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떨어트린 물건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능선의 뒤쪽으로 조금 더 내려왔다. 그리고는 8부 능선을 따라 뜀걸음으로 서쪽을 향해 이동했다. 만일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30분쯤 지나서 골프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저격의 장소를 찾아내는 데에는 똑똑한 수사관이 있다는 전제하에 한 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었지만 찾아낸다 하여도 거기서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를 부지런히 걸어서 그는 이미 안전한 지역인 소요산 자락에 들어섰다. 경찰이 방향도 잡기 전이었다. 어렵지 않게 커다란 굴참나무 옆에 그가 올 때 미리 파놓았던 구덩이를 찾아냈다.

그는 배낭에서 두 개로 분리된 소총을 꺼내어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잘 닦은 다음 미리 준비해온 비닐에 싸서 구덩이에 넣었다. 그리고 흙을 채우고 표시가 나지 않도록 위장했다. 자신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일을 마친 뒤 그는 전과 다름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능선을 따라 소요산 정상을 우회하여 동두천 쪽 소요산 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추가로 한 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그는 가게에 들어가 콜라를 한 병 사서 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마셨다. 갈증이 고조된 상태에서 마시는 콜라의 맛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콜라 한 병을 서서 해치운 다음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았다.

가게 앞 나무 등걸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그동안 꺼 놓았던 휴대폰의 스위치를 켠 다음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다. 커피와 담배를 동시에 즐기는 것은 젊은 시절에 자주하던 버릇이었다.

그의 작은 거사는 완전하게 성공한 것이었다.


커피가 금방 바닥나서 한잔을 더 살까 망설일 때 휴대폰이 울렸다.

새 정부의 국정원장이 되어있는 서석준 이었다.

이어 두 사람의 선문답이 이어졌다.

“자네 지금 어디 있나?”

“등산 왔네. 소요산에.”

“아! 소요산? 아름다운 산이라고 들었네. 혼자서?”

“그래, 혼자서.”

“그래서 그랬구먼.......”
“그래서 그랬네.......”

“조심하게.”

“걱정 말게.”


전화를 끊고 그는 주차장에 얌전하게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로 갔다.

오늘 그가 한 행동은 김희선을 찾아서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이후 무수히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으로 직접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연히 누군가가 나서서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구체적으로 이일을 자신의 손으로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4대입법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여야 협상에 의해 결국은 폐기된 과거사법을 열 번 제정하는 것보다 민족의 반역자 한 사람을 처단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었지만 그 때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굳힌 것은 그 자신의 스캔들로 인해 선거에 질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그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30여 년 동안 무거운 부채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이일을 반드시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대로 선거에 진다면 개인적인 의미만이 부여될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다시는 악몽에 나타나지 말라는 뜻을 담은 김희선에 대한 제사 의식으로서였다. 일을 끝낸 후 조국을 영원히 떠날 생각이었다.

기적이 생겨 선거에서 이긴다면 옳은 지도자를 선택한 훌륭한 국민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국민은 수천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고 국민을 도탄에 빠트렸으며 국권을 유린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린 죄인이 호사스럽게 천수를 다하고 죽을 수는 없다는 교훈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끊은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마음의 부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스스로도 이상했다. 힘든 노동을 마친 것처럼 조금 피곤할 따름이었다.

그는 한지숙을 빨리 만나서 그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위로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나 서두르지 않고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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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적단                   날짜 : 2011-12-15 (목) 18:01 조회 : 6374 추천 : 16 비추천 : 0

 
 
[1/3]   고랑 2011-12-15 (목) 23:34
강풀  만화가  생각나는군
 
 
[2/3]   이상형 2011-12-16 (금) 03:23
희선이 이제서야 저 멀리서 웃고잇는 모습이.. 오버랩..
 
 
[3/3]   졸라늬우스 2011-12-31 (토)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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