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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그늘 34 <기업인 황태산>
글쓴이 : 적단                   날짜 : 2011-10-14 (금) 20:29 조회 : 6372 추천 : 14 비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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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인 황태산 -


김인철의 사직동 사무실에 딸린 회의실, 랩톱에 연결된 프로젝터가 이동식 스크린을 비추고 있고 스크린의 우측에는 김정수가 레이저 지시봉을 들고 서있다.

그가 조사한 황태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김인철에게 보고를 하려 는 참이었다. 김인철과 한지숙은 구수한 향을 풍기는 토라자 커피를 앞에 놓고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수는 자신이 조작하는 화면에 맞추어 설명을 해나갔다.

“태산그룹은 전성기 때인 2001년 기준,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28위, 주력회사인 태산건설은 국내 건설업체 도급 순위 7위에 올랐던 회사입니다.

황태산 회장은 Y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30세 때부터 건설업에 투신하여 맨손으로 굴지의 회사를 일으켰던 인물로서 방년 62세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그는 매우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전 계열사가 한 번도 기업비리로 조사를 받은 적이 없고 평소에 정경유착을 지극히 싫어해서 국내보다는 해외공사에 치중했다고 합니다. 국내의 대형 건설업체에게 흔히 있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하청업체의 진정도 없었습니다.

건실하던 그룹이 갑자기 부도가 난 이유는 순전히 이라크 전쟁으로 인하여 15억불에 이르는 공사대금을 못 받고 수주잔고 75억불 규모의 공사를 취소당한 때문으로 경영상의 잘못은 전혀 없습니다.

황회장은 부도직전 태산건설을 제외한 전 계열사들의 본인 지분을 전 직원에게 나누어 주어 종업원 지주회사로 만들어 태산건설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합니다. 7개 계열사중 2개사는 망하고 5개사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 회사들은 오너 없는 회사는 생존할 수 없다는 재계 통념을 깨고 탄탄한 성장을 하면서 종업원지주회사의 모델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그때 태산 건설의 부도액은 7천억으로 적지 않은 액수이긴 해도 초범에 비 범죄성 부도로서 보통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집행유예도 가능할 만한 사안이었는데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준 주식을 회수하라는 검찰의 요구를 거절하는 바람에 7년 징역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고 합니다. 검찰과 재판부는 그가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준 주식이 거짓증여라고 생각하여 그런 판결을 했고 채권단은 증여된 주식들을 회수하기 위한 민사소송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황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저의 판단에 의하면 거짓이 아닐 것이 확실합니다.

아직 형기가 4년 5개월 남았고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입니다.”

다 듣고 난 김인철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주 적당한 인물이군. 저렇게 훌륭한 기업인도 운이 안 따르면 감옥신세를 지게 되는군. 나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니 이제부터는 지숙씨가 나서주시오. 우선 감옥으로 가서 좀 만나보시지.”

“사면 카드를 써도 좋습니까?”

“그거 없이 될 문제가 아니지. 내일 대통령님 뵙고 허락을 받은 다음에 확답을 하겠소.”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수 씨, 신문사 두 곳 조사하는 문제는 진전이 있나?”

“드러난 계열사는 모두 조사되었습니다. 오너 사둔의 팔촌에 관련된 기업체까지 다 조사하자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급한 거면 더 빨리할 수도 있습니다.”

“급할 건 없네. 그전에 이일부터 마쳐야 손댈 수 있는 일이니 말이야.”

이 말을 마친 김인철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지숙은 할 말을 잠시 참았다.

한지숙은 이미 김인철의 습관을 어지간히 파악하고 있었다. 저런 행동은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런 경우는 언제까지고 내버려두어야 했다. 한참 후 그의 시선이 한지숙 쪽으로 돌아왔다.

“비만또로에서 어제 보내온 자료는 뭐였지?”

“설계 변경 도면입니다. 잠정안으로 단지에 카지노 시설을 추가하는 것인데 정부의 허가를 받아 낼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밤방씨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정수, 허가문제에 대한 자네 생각은 어때?”

“제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급진적인 이슬람 세력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고 종종 폭탄테러가 일어나기도 하는 그 나라에서 집권자가 그런 도박을 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과거에도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 되었지요.”

“말레이지아도 인도네시아 못지않은 회교 국가이지만 카지노 사업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지. 주변국에서 오는 관광객의 절반이상이 카지노 손님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고 동남아의 카지노 관광객이 도박을 하러 그곳에 가는 것은 아니야. 카지노하면 큰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아. 서민들도 들어가서 50불 100불의 돈을 가지고 카지노라는 곳의 분위기를 즐기고 각자의 운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곳이지.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독식에 배가 아픈 싱가폴이 최근 수많은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국 이래 카지노를 금지시켜왔던 도덕국가로서의 자부심을 버리고 아시아 최대의 카지노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 중이야. 그런데 사실 싱가폴이고 말레이시아고 고객의 대다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니 밤방이 그런 계획을 세울 만하지. 요는 카지노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들이 허가를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있어. 우리가 카지노가 설립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투자의향서를 그 나라 정부쪽에 제출해주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고 한지숙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퍼 씨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우리 사업에 대한 유럽의 투자유치 프레젠테이션을 런던에서 갖자고 합니다. 우리 계획에 관심을 보이는 100명 정도의 투자자를 초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좋군요. 정치발전을 위한 기금 때문에 복잡해진 투자 조건에도 그렇게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인다니........., 선진국 사람들은 돈만을 목적으로 투자를 고려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

“그렇더라도 첫 번째 고려사항은 수익성일 겁니다. 인도네시아 프로젝트의 장래성과 한국 건설사의 시공능력에 대한 신뢰 때문에 장기적 이익을 확신하기 때문이겠지요. 하퍼 씨의 영향력도 고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한지숙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근무한 경험이 없음에도 비즈니스 매카니즘을 빠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야. 내달 말 쯤 프레젠테이션 일정을 잡으라고 하지, 아니 황태산씨의 석방일정을 먼저 알아야겠군.”

그가 다시 허공을 응시하자 한지숙은 소리 없이 먼저 방을 나갔다. 내일은 황태산을 만나러 청송 교도소를 방문해야 할 테니 오늘 인도네시아와 독일 쪽에 보낼 서류들을 작성해야 했다.

그녀는 그의 보스가 대통령으로부터 황태산에 대한 사면 동의를 얻어올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사면은 3주 후인 8월 15일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직업이 아직 프리랜서 기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는 일로 보자면 한 회사 CEO의 비서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작가의 꿈을 가진 기자로서 그녀는 피가 되고 살이 될 경험을 자신이 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만큼 우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슬프고도 안타깝다. 나라 내부의 사건이던 외국과 관련된 사건이던 역사의 고비에서 단 한 번도 그 전개와 반전이 민족에게 이로운 쪽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없다. 역사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6개월 전부터 시작하여 서양과 중국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진즉에 섭렵하고도 막상 한국사로 들어와서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많은 날들을 허송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몽고군의 침입에 강화로 제주로 옮겨 다니면서 끝까지 항거하던 삼별초가 같은 민족인 고려의 관군에 의해 섬멸 당하는 대목까지 읽고는 치미는 분노로 혀를 끌끌 차면서 책을 덮었다.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50회 하고나니 좀 마음이 가라앉았다. 잠자기 전에 50개만 더하면 오늘 목표치를 채우는 것이다. 그는 밥을 거를지언정 하루 200회의 팔굽혀펴기는 거르는 법이 없었다. 건강에는 아직 자신이 있었다. 고혈압, 당뇨, 관절이상, 잇몸질환 등등 그 또래의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 개 정도는 달고 산다는 노인성 질환도 그와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감옥 생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감옥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이렇게 공부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3여 년 간의 수감기간동안 그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었고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독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쌓았고 지난날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사업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도 얻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값진 성취는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달력에 방금 한 운동량을 기록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달력을 안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갖은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하루에도 몇 번 날짜를 센다. 아직 4년이 조금 넘게 남았다. 혼자말로 ‘마음먹은 공부를 다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야’ 하고 말하자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이곳을 나갈 때면 66세다. 30년은 더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가슴을 누르며 다시 국사책을 집었을 때 간수가 다가왔다.

“회장님, 면횝니다.”

간수들도 대부분 그를 존중해 주고 있었다.

면회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한지숙에게 불려나온 수감자의 모습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숱이 많은 백발을 올백으로 단정하게 빗어서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은 강남의 고급 미용실에서 갓 다듬은 듯 했고 깨끗하게 면도한 턱은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빛은 강렬했다. 죄수복 대신 슈트만 입힌다면 당장 런던의 프레젠테이션 행사장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그녀가 기대했던 초췌한 늙은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한지숙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지숙이라고 합니다.”

황태산은 뜻밖의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름다운 숙녀분이로군. 이 늙은이에게 무슨 볼일이요?”

“회장님의 능력을 빌리려는 분을 대신해서 왔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회장님은 8월 15일 광복절특사로 석방될 것입니다.”

 노인은 한지숙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혀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좋은 소식이라고? 나는 이곳에서 공부할 게 아직 많소.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는데.”

 한지숙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그 말씀 진심이십니까?”

그 말에 황태산은 한참동안 한지숙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다음 말했다.

“진심이요. 당신들이 나를 여기서 꺼내주는 데 따른 대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보통은 그런 거래가 음습한 것들이요. 그리고 숙녀분께서는 그 조건은 물론이고 자신과 그분이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잖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견딜만한 곳이요.”

이 말에 한지숙은 태도를 고쳤다.

“자세한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회장님은 듣던 대로 참 훌륭한 분이신 것 같군요. 오늘은 그냥 소식만 전해드리고 가지요. 우리가 회장님의 능력을 빌려서 하려고 하는 일은 회장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회장님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일을 전제로 사람을 물색하다가 이었고 회장님의 석방을 주도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내키지 않으시면 그 일을 맡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회장님처럼 훌륭한 분을 석방시켜서 사회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니까요. 어쨌든 회장님은 석방될 것이니 동료들에게 돈 빌린 것 있으면 갚으시고........,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소. 처자를 보니 못된 일을 하려는 사람 같지는 않구려. 출감 날 그쪽에서 나를 데려가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면회소를 나오면서 한지숙은 혼자말을 했다.
"늙었건 젊었건 괜찮은 남자는 일단 자존심이 강하고 만만치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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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적단                   날짜 : 2011-10-14 (금) 20:29 조회 : 6372 추천 : 14 비추천 : 0

 
 
[1/1]   고랑 2011-10-15 (토) 00:08
늙었건 젊었건 괜찮은  남자는  일단  자존심이  강하고  만만치가  않아

이 귀절이  맘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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