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서거 2주기 김병준 前참여정부 부총리 특별공개강좌중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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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려고 했나? 제 나름의 관점에서 이 점을 이야기 드렸으면 합니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겠죠.
현실 인정과 국가역할의 강화
첫째, 세계화를 인정하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죠. 기업이나 시장이 국가권력 위에 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시장이 세계화되는 만큼 정부권력도 세계화 되면 좋겠지만 당분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상당기간 시장과 기업의 영향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식했습니다. 옳고 그러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옳지 않다고 해도 현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시정되기를 바라고, 또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당장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보았죠. 현상은 현상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겁니다.
둘째, 기업과 시장중심의 질서를 현실로 인정하는 만큼, 그러한 질서가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점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부문을 더 강화하고자 했지요. 국가를 불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부문에 정부역할을 강화하고자 했을까요? 장하준교수가 강조하는 박정희 모델 같은 것은 당연히 아니지요. 지금이 어느 땐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과 노조보고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겠습니까? 참여정부의 1차적 관심은 사회정책 영역이었습니다. 즉 복지와 평생교육, 그리고 고용안정 등의 문제였죠.
솔직히 하고 싶은 만큼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그러나 일단은 사회정책 분야에서의 국가기능을 강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중심의 질서가 가지는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죠. 대통령 말씀을 빌리면 ‘어머니형 국가’죠. 늘 ‘어머니형 국가가 돼야 된다’고 하셨거든요. 다소 가부장적인 냄새가 나긴 합니다만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아이들이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붕대 매어주고 약 발라주고........ 공부하는 아이들 간식 챙겨주고.......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 키워 시장에서 제 역할 하도록 해 주고, 행여 시장에서 넘어지고 소외되면 보살펴 주고, 이들이 다시 힘과 기술을 얻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고....... 하는 것이죠.
2002년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공무원의 30%를 잘라 낼 거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몇 번 스피치를 했어요. 진정으로 했습니다. “구조조정 할 것이다. 어떤 구조조정을 하느냐? 사람 자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시장이나 시민사회에 대해 쓸데없이 간섭하고 쓸데없이 힘쓰는 부분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대신 사회정책 영역과 서비스 분야를 늘릴 것이다. 그러자면 공무원 수는 줄일 수가 없다.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작은 정부 할 생각 없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정책 영역에서의 정부역할 강화에 대한 강한 인식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한 말씀 드릴까요? 국가역할의 강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 보셨습니까? 신자유주의 질서의 문제를 인식하고, 또 시장중심과 기업중심의 질서가 불러 올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의 사회정책적 역할 강화를 꾀하는 신자유주의자를 보셨습니까? 우리의 진보진영은 이러한 대통령을 신자유주의자로 불렀습니다. 진보진영에 있어 ‘신자유주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욕하기 위한 언어적 도구였습니다. 시장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도, 또 개방이나 산업구조 조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도 바로 ‘신자유주의자’란 라벨을 붙였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언어적 도구였습니다.
시장 역동성의 활용: FTA
셋째, 시장을 힘을 가능한 한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진보진영이 대통령을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인 이유가 되기도 한 부분이죠.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업구조의 조정입니다.
글로벌 분업체제를 고려한, 또 우리나라의 고임금 구조를 고려한 미래형 산업구조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장하준교수 같은 분은 박정희대통령을 거론하며 왜 못하느냐고 지적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돈으로 유인할 만큼 재정이 넉넉하지 않지요. 기업이나 산업의 규모가 이제 정부가 돈 좀 댄다고 따라 올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칼과 총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르겠습니까? 자본이고 노동이고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정부가 시장을 주무를 힘이 있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이제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정부의 판단이 옳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내일 금융위기가 터지는데도 7% 성장을 한다고 큰 소리 친 사람들이.......... 말하자면 그 정도로 경제도 산업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집권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정부라고 다 정부가 아니죠. 그런 정도의 판단능력을 가진 정부의 판단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산업구조 조정을 하지요. 시장의 힘입니다. 시장의 압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들이 우리 산업의 구조를 미래형으로 바꾸게 하지요. 대통령께서 이야기하셨던 ‘메기론’입니다. 미꾸라지 사이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 놓으면 미꾸라지가 훨씬 더 강해진다는 거죠. 물론 이렇게 조정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나 재교육과 재훈련을 위한 평생교육, 그리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다시 일으키는 일 등은 모두 정부가 할 일이죠. 앞서 말씀 드린 사회정책 기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 하나를 드려야겠습니다. 한미 FTA 문제입니다. 시장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안이죠.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분들 중에도 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이상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입장이 곤란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편한 게 좋아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치 대통령께서 한미 FTA에 대해 후회를 하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셨지요. 엄청나게 고민하셨습니다. 한미 FTA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불안하잖아요. 그리고 한미 FTA가 발효되면 그로 인해 고통 받을 국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미 FTA를 하기만 하면 우리 국가가 단숨에 잘 될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하셨습니다. 상당기간 엄청난 진통이 따를 거라 걱정을 하셨죠. 잠을 못들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중간에 “내가 괜히 꼬여가지고.......”라는 농담아닌 농담을 하시기도 하셨지요. 그만큼 고통스러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개방을 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방을 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러한 고민과 고통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과 고통 속에서도 대통령에게 위안을 주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국민에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개방을 한다? 개방을 하고 난 다음에 엄청나게 많은 문제와 시련이 겪게 될 텐데, 이를 이겨나갈 수 있을까? “틀림없이 이겨나갈 것이다.” 이런 확신이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한미FTA를 반대하는 많은 분들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은 상당부분 우리 경제나 사회를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꼭 유물사관까지는 안 간다고 하지만 멕시코나 한국이나 브라질이나 다 같다는 것을 전제로 이해를 하죠. 그러나 이런 구조적인 해석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결국 경제와 사회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화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브라질 사람도, 멕시코 사람도 아닙니다. 숱한 어려움을 넘어 왔던 한국 사람입니다. 다를 수 있죠.
한미 FTA에 관해 가장 정확한 이야기는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김현종씨의 책 속에 있습니다. 얼마전 『한미 FTA 이야기』라는 책을 써셨죠. 그 책 속에 대통령과 김본부장의 대화가 대거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의 약 40% 정도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를 잘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국지적 정부(parochial government)를 넘어
그리고 넷째, 글로벌 체제에 맞는 공적 거버넌스 구조를 늘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죠.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글로벌화 되는 시장구조와 경제구조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권력 구조에서 나온다고......... 즉 시장은 글로벌화 되는데 비해 정치권력과 정부는 여전히 지역적 또는 국지적(parochial)인데 그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글로벌화 되는 시장에 상응하는 공적 권력체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이점과 관련하여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레짐 내지는 신자유주의 가버넌스를 대체할 수 있는 공적 권력 내지는 정부 권력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일테면 한ㆍ중ㆍ일ㆍ대만ㆍ북한 등을 모두 포함하는 동북아협력체계를 만드는 일 등입니다. 이들 모두가 안 되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만이라도 참여하는 협력체계를 만들고 싶어 했죠. 그래서 이 지역 안에서라도 지나친 조세경쟁을 막고, 환율이나 통화량 문제에 대해서도 협력하고, 산업ㆍ경제영역에 있어 외국 대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쇼핑당하는 구도를 막을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EU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EU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죠. 유럽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늘 말씀 하시기를 “유럽 분들이 우리보다 한수 위라 생각한다. 끊임없는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넘어, 분쟁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 오로지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 하나로 나아가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느냐고 안타까워 하셨죠.
아마 기억하시리라 생각하는데요. 한번은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죠. “내 재임기간 중에 과거사 문제를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언론에 엄청 맞았지요. 그런데 실제로 꺼내지 않으시려 하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었죠. 나중에 일본이 또 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 일으키니까 대통령께서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한국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지 마라. 가만있지 않겠다.” 이렇게 이야기 했죠. 그랬더니 일본의 고위외교관이 절 좀 만나자고 해요. 그래서 만나서 저녁을 했는데 저보고 그러는 거예요. “왜 대통령의 말이 달라졌느냐?” “무슨 이야기냐?” “전에는 내 재임기간 중에는 과거사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고이즈미 수상을 직격탄으로 때렸지 않느냐?”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길게 이야기했지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대통령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다. 한ㆍ중ㆍ일이 일종의 원 아시아가 되기를 원하고, 아시아에 있어서의 공적인 거버넌스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 등을 극복하는 것을 염원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과거사 문제는 오로지 학자들이나 시민사회에 맡기고 국가의 지도자들은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 나아가자는 이야기였다. 그런 차원에서 과거사 이야기는 서로 더 이상 꺼내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당신네가 계속 이야기를 꺼내고 야스쿠니 참배에, 독도를 탐사하겠다고 나오니 어떻게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한 입으로 두 말 한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한ㆍ중ㆍ일 협력체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를 맺으며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을 네 가지로 정리해서 이야기 드렸습니다. 세계화와 시장중심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체제가 초래할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와 정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의 긍정적 기능을 활용하여 산업구조 조정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구도에 대응할 수 있는 아시아지역 협력체계를 구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의 정신과 정책으로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큰 맥락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 위에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또 그 동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따져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싫다는 말 몇 마디로 없어지는 그런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레짐을 해체하자면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첨병으로 움직이는 기구들의 활동을 철저히 저지하고, 조세경쟁을 막을 수 있는 협력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등의 실질적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한 노력도 없이, 또 그 동력도 활용할 의지도 없이 마음에 안 드는 정책 나올 때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신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라벨이나 붙여서야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대통령께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냉소 섞인 농담을 했겠습니까? 한 쪽에서는 좌파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신자유주의자라 하니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랬더니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말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정말 그렇게 이야기한 줄 알고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시비를 걸기도 하고, ‘좌파 신자유주의’와 ‘우파 신자유주의’가 뭔지를 알아보기도 했죠. 제가 보기에는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좀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뭐든 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으면 합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사회디자인연구소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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