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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 부터 늘 우리집 김장은 장모님이 해줬다. 그런데 얼마전 장모님이 갑자기 대장암 수술을 한 탓에 올해는 울 마눌님이 하기로 했다. 안그래도 연로하신 장모님 덕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던 중이었던 집사람은 장모님께 김장에 관한 레시피를 모두 전수 받았다. 그리고 김장을 시작했다.
배추는 하나로 마트에서 해남 배추를 젓갈은 장모님이 봄에 직접 담근 꽁치젓 그리고 꼬추가루와 마늘등 각종 양념 모두 이미 장모님께서 마련해 놓은 것을 가지고 김장에 돌입했다.
그런데 첫 단계 배추 절이기에서 무지 큰 에러가 나 버렸다. 밭에서 막 케온 아주 싱싱한 해남 배추를 둘이서 다듬을 때만 해도 올해 배추 정말 잘 샀다고 좋아라 했는데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원래는 금요일 저녁에 나랑 집사람이 같이 배추 절이고 토요일 아침에 처남댁이랑 내가 배추 싯어 놓으면 토요일도 일나가는 집사람이 일 끝마치고 나서 양념하고 버무리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잡혀서 밤 늦게 들어와서 인사불성(과도한 음주) 골아 떨어져 버렸고, 집사람은 야속한 남편 탓하면서 혼자 절여 놓고 그리고 양념까지 모두 만들어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절여 놓은 배추를 보니 아직도 생생한것이 좀 이상했다. 그리고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가 점심때 들어와 보니 처남댁이 배추가 아직도 밭에가게 생겼다며 절인 배추위에 소금물을 붓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먹은 술이 들 깬 흐리멍텅한 머리로 그냥 잠깐 생각해 보아도 잠시 소금물에 담구었다 뺀 후 소금을 뿌리는 방식으로 절이는데 아애 소금 물에 담구면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집사람이 그렇게 시켰다고 처남댁이 말을 하니 뭐 둘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소금 물에 젖은 배추가 초스피드로 시들어가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짤방 사진 크기의 통 4개에 나누어서 절였는데 누워있던 배추를 모두 세웠다. 소금물에 금방 시들어버린 잎을 살리고 비교적 두트운 줄기부분을 절이기 위해서 세웠는데 세우면서 보니 이미 많은 부분 잎이 상해 버렸다.
그래서 많이 상한 외피를 모두 벗기고 일단 물에 한번 행구기로 했다. 그렇게 모두 행구고 나니 잎은 절여 졌는데 줄기는 아직 생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사람이 도착해서 처남댁과 집사람이 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하는데 이거 배추가 너무 싱싱하다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집사람은 30포기 김장하면 5섯통이 나온다는데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4통을 채웠다면서 이건 아니다를 선언하고 배추를 다시 절이기로 했다.
그렇게 양념하다 다시 배추를 절이고 하룻밤을 보냈다. 난 너무 절여져서 올해 김장을 망치는게 아닌가 불안해서 자다가 몇 차례 일어나서 절여 놓은 배추 상태를 확인 또 확인했지만 여전히 싱싱해도 너무 싱싱했다.
그렇게 밤 9시에 절인 배추를 다음날 아침 9시에 확인해보니 어제 보다는 숨이 많이 죽어있었다. 집사람과 둘이서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싯어 놓았다. 집사람 말이 충분히 물을 빼야 나중에 물이 안생긴다고 4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1시 부터 양념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씻을 때는 분명 숨이 죽었는데 물을 빼고 나니 다시 살아나는 배추.. 아.. 싱싱해도 너무 싱싱한 것인지 아님 배추를 잘 못 절인것인지 암튼 그렇게 절인 배추를 아니 싱싱한 배추를 양념했다.
한편 몇 차례 싯기를 반복한 탓에 원래 배추포기에서 떨어져 나온 짜투리가 어마어마했다. 진한 소금물에 맛이가 버린 맨 바깥쪽 퍼런 배추잎과 짜투리만으로 두통이 넘는 분량이 나왔다. 이것은 양념 덤북해서 싱싱한 굴을 넣고 겉저리 형태로 먼저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김장을 끝내고 장모님께 김치 냉장고 용 보관용기 두 통 분량의 김치를 드렸다. 그리고 겉저리는 돼지고기 삶아서 장인어른과 오랜 만에 맛나게 한잔 하면서 먹었다. 장인 어른이 겉저리만 드시면서 올해 김장 너무 잘 했다고 칭찬이 자자했는데 처갓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하니 장모님께서 전화가 왔다.
배추가 그새 숨이 죽어서 두통이 어찌 한통 반도 안돼냐? 그리고 뻣뻣하기는 왜이라 뻣뻣해.. 마늘은 왜 더 넣었어. 청갓은 왜 짜? 누워 있어도 천리를 본다고 장모님은 이미 이번 김장이 어떤 식으로 됐는지 알고 계셨다.
집사람이 양념하면서 마늘 냄새가 안난다고 장모님이 준 마늘에 자신이 좀 더 첨가를 했는데 그것을 도사 처럼 알아 채셨다. 장모님 김치는 구수한 젓갈맛인데 마늘이 많이 들어가면 배추가 물러져서 구수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마늘을 많이 넣지 않는다고 한다. 마늘이 많이 들어가면 시원한 맛은 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좌충우돌 하면서 많이 배웠다. 김장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완성된 맛이 탄생한다는 것. 올해 김장 어떤 맛이 나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이렇게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년에는 내가 직접 절이면서 제대로 한번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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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