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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 공정성 확보 논쟁
대학 신입생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 어느 나라에서든 쉬운 정책이 아니다. 영국 정부가 이 질문에 대답할 때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은 대학의 ‘공공성’에 있다. 즉, 영국에는 사립대학이 거의 없기에 대학 입학 정책을 둘러싼 논의의 대부분은 공적 차원에서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불거진 등록금 인하 문제도 결국 공공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영국은 사립대학이 1개 뿐이고, 나머지 150여 개의 모든 대학은 국공립이다.)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사이몬 휴스 자유민주당 부대표는 최근 “대학들이 공립 고교 출신 졸업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현재 영국의 사립학교 재학생 비율은 7.2%에 그치는데, 25개 상위 대학들 가운데 사립학교 출신 입학생 비율은 25%, 옥스퍼드대학의 경우는 더욱 심해서 46.6%를 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전혀 새롭거나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몇 십년지난 해묵은 과제다. 마치 고장 난 전축에서 똑같은 음악이 계속 나오는 듯하다.
인종과 계층 격차도 문제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인도, 아프리카, 파키스탄 출신 민족의 학생 비율은 인구 분포에 비해 현저히 낮다. 옥스퍼드는 11.1%, 케일브리지는 10.5%만이 소수 인종 학생을 받아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중등학교 시절 무료 급식 지원을 받은 학생들이 옥스브리지에 입학하는 비율은 1% 미만이다. (2004년 전국 평균 무료 급식 비율은 14.3%). 한편 사립학교 학생들이 옥스브리지에 갈 확률은 무료 급식 지원받은 학생들보다 55배나 높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공부 잘 한 학생을 뽑느냐, 아니면 대학에 들어와서 잘 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을 뽑느냐 하는 것도 해묵은 숙제이다. 교육 자선단체 <서튼 트러스트>가 5년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입시에서 같은 성적을 받았다 하더라도 공립 출신들이 사립학교 출신들보다 대학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립 출신들의 에이레벨 시험성적(영국의 대학입학 고사)이 실제 학점보다 과다 평가되었다고 한다. 즉 A학점을 받은 사립 출신 학생은 사실상 B, 또는 B+학점 정도의 학업 능력만을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사립학교가 실제 학력보다 시험 준비에 더 능하다는 말이 되겠다.
대학들이 어떤 학생들을 신입생으로 뽑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사실 이런 원칙은 영국 고등교육에서 잘 지켜져 왔다. 하지만 옥스브리지 대학이 해마다 6억 파운드(1조2천억 원)의 엄청난 교육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학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의 교육기관인 만큼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신입생 선발 정책에서도 올바로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11세~18세 사이의 영국 공립 중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포부수준 높이기(The Aimhigher) 프로그램’은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기구는 공립학교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거나 방학을 이용한 대학 기숙사 체류 프로그램을 체험토록 함으로써 사회적 소외 계층들이 옥스브리지 대학을 비롯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옥스퍼드대학 하트포드 칼리지에 있는 '한숨의 다리' 전경>
역사적으로 영국은 계층에 따라 구분된 사회를 형성해 왔다. 그 모습이 교육제도에 거울처럼 투영되어 있다. 대체로 노동자 계급은 대학 진학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학 가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데, 무엇하러 머리 아프게 공부를 더 계속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대학은 딴나라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여러 가지 대안 정책을 개발하여 고등교육을 노동계급에게 개방함으로써 계층 고착화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 현실과 대비된다. 엄청난 사교육비 투자 격차로 인해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로 변질되어 가는 대한민국. 경쟁에서의 승리가 시민적 협력이란 가치를 도배해버린 교육현장. 그 살벌한 자화상이 입시제도라는 거울에 그대로 비춰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 기회를 보장해줘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저소득 계층이나 소수 인종들은 어릴 적부터 가정과 지역사회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출발점부터 공정한 경쟁에서 밀려나 있다. 이런 측면을 사회가 교육정책을 통해 보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다양성이 창조성과 사회적 포용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와 대학 시절에 가난한 가정, 지방 소도시 출신 친구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런던에서 숱한 타민족 출신 동료나 친구들을 사귀면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입체적 관점을 더 폭 넓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은 '차이'와 '섞임'을 통한 교류에서 출발한다.
세 번째는 사회적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 다양성은 특히 ‘집단사고’의 폐해를 막는다. MB 가카의 ‘고소영’ ‘강부자’ 중심 인사 기용을 비판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차원에서였다. 특정 지역, 종교, 경제력, 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엘리트 그룹이 뭉쳐 있으면 ‘집단사고’에 빠져들어 사회적 위험 요인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지난 3년간 집권층이 보여준 안보, 통일, 경제, 외교, 문화, 국방, 정치에서의 무감각과 무능력, 오만과 허접함을 돌아보라.
그러므로 학벌, 지역감정, 경제력 격차에 따른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를 더 공정하고 더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일이다. 교육정책은 이런 점들을 간파하면서 수립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가려 했던 (그러나 동시에 조중동이 한사코 훼방하려 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
추가 정보: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의 영국 영화 <History Boys>를 추천한다. 지방 도시의 한 그래머 스쿨이 배경이다. 재학생들을 옥스브리지로 최대한 많이 진학시키려 노력하는 학교 측의 시도와 노력, 학생들의 시니컬한 반응 등이 약간은 코믹하면서도 리얼한 터치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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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은 <모난돌> 제9호(2011년 1월)에 실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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