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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제 제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지요.
어젯 저녁 자정을 목전에 두고 유시민이 보낸 트윗 내용중 일부다. 유시민은 지난 4월 28일 '큰 죄를 지었다'며 감사와 사죄의 트윗을 보내고 스스로 자숙에 들어갔다.
한동안 근황이 궁금했는데 바로 며칠 전 5월 20일, 중간트윗으로 '많은 생각 속에 살고 있음'을 알려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5월 23일, 봉하에 노짱님 추모행사를 다녀온 후 밤 11시.
비로소 '저도 이제 제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는 내용으로 결심의 트윗을 보내왔다. 편의상 유시민의 트윗내용을 일자별 원문으로 올린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http://twtkr.olleh.com/u_simin)
4월 28일/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5월 20일/ 생각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생각할 게 많네요.
5월 23일/ 오늘 봉하 다녀왔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끝까지 가셨던 분.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 저도 이제 제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지요.
트윗의 핵심은 ① 감사와 죄 ② 많은 생각 ③ 주어진 길이다.
트윗 횟수로는 4.28 이후 딱 세번이다. 많지 않은 횟수다. 모두 짧은 문장이다. 적은 횟수와 짧은 문장. 문장이 짧고 내용이 간단해서 전달코자 하는 핵심 키워드가 즉각 눈에 띈다. 그래서 누구나 '현재 유시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횟수 또한 세번에 불과해 '유시민이 현재 어떠한 숙고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 필부필녀라도 뚜렷하게 그 행보를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결과론일지 모른다. 부모의 처분만 기다리는 자식의 심정이랄까. 지켜보는 지지자 입장에서는 그 간격 사이 사이 무척이나 애가 타고 궁금했을 것이다.
세번에 걸친 트윗의 핵심 키워드와 행보는 아주 간단하다.
단계별로 ① 감사와 죄 ② 생각 ③ 길이다. 여기에 유시민의 말로 덧붙이면 ①큰 죄 ②많은 것을 생각 ③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복잡할 것 없다. 한달여에 걸친 유시민의 모든 것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게 주어진 길을 가겠습니다'로 요약된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선물한 유시민
유시민은 CHANGE 2012! 공개토크쇼에서 민노당 이정희 대표에게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선물한 적이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그리고 각자 4.27 보선을 치뤘다. 유시민은 패배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는 유시민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2012년의 총/대선은 차치하고 당장 목전의 일로만 보았을 때, 이 시를 선물받은 이정희 대표는 유유자적이고, 오히려 선물을 한 유시민이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유시민에게 길이란 어떤 것일까.
유시민이 다시 길을 말한다.
이전에는 '가지 않은 길'이었고, 이번에는 '주어진 길'이다.
유시민의 언어가 변했다. 이제는 '주어진 길'이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란 다분히 전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여서 이 속에 "주어진 길'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언어에는 상황에 따른 어감이라는 것이 있다. 프로스트가 말하는 '가지 않은 길'은 선택의 기로에서 본인의 의지에 따라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는 통상의 길이지만, 어제 시점에 유시민이 말한 '주어진 길'은,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양자가 혼재되었든, 절체절명의 순간에 반드시 선택하고 가야할 운명의 길이요 이에 관한 강력한 실천의지의 표명이다.
평범한 지지자이자 네티즌에 불과한 나로서는 그의 길을 알 수가 없다. 알 방법도 없다. 다만, 그간에 걸어온 유시민의 행보를 담보잡아 이번 역시 믿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적어도 유시민이 사리사욕의 길을 놓고 '주어진 길'이란 말을 썼을리는 없잖은가! 그래서 나는 유시민을 믿는다. 그것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화자가 바뀌었다. 그분으로!
다시 트윗을 살펴보자. 4.28과 5.20트윗은 그 대상이 일반대중이다. 그러나 5.23트윗은 혼잣말의 형태를 띈 채 대상은 그분을 향하고 있다. 화자가 바뀌었다. 그분으로! 숙고한 심경의 공적표출이다.
또한, 시기상으로도 그렇다. 4.28 숙고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유시민이 비로소 2주기 추모를 불과 사흘 앞둔 5월 20일 '많은 생각을 한다'고 말문을 연다. 그리고는 어제 5월 23일, 그것도 자정 직전. 마치 5.23을 정점으로 치달아온 듯 '저도 이제 제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지요.' 라며 그분에게 결연한 의지를 고한다.
왜 유시민은 5월 23일을 넘기지 않았을까. 유시민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유시민의 길은 다시 그분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 너마저 순교자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길'. 사실 나는 유시민의 5.23 트윗을 보고, 순간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생각났다. 그 영감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 굳이 설명조차 필요없는 민족의 순교자 윤동주.
그의 서시(序詩)에 똑같이 '주어진 길'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어떤 심정으로 이 서시(序詩)를 썼을까.
서시(序詩)/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비오는 봉하의 5.23.
그토록 사랑했던 님인데 .... 그 님의 추도식에 일반인 출입구를 이용했다는 유시민. 그런대로 다들 편안한 모습들이건만 무엇이 유시민만을 저리 침통하게 만들었을까.
오늘따라 윤동주님의 '괴로워했다/ 사랑해야지/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라는 시어가 서럽게 서럽게 가슴에 꽃혀온다. 이러한 유시민에게서 민족시인 윤동주의 순교자적 채취를 감지함은 억지스런 꿰맞춤일까. 아니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트윗 속의 짧기만 한 유시민의 말 속에서 윤동주와 그의 서시를 떠올림은 이 무슨 해괴망측한 불경이란 말인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유시민이 또 다른 순교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못된 이기심의 발로는 아닐까 싶어, 이러는 내 모습이 실로 섬뜩하기까지 하다.
유시민. 잠시잠깐이라도 헛생각해서 미안하다. 노무현이 모자라 유시민 너까지, 그럴 수는 없다. 결단코 그래서는 안된다. 다시는 너를 순교자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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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