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26 13:59:35ㅣ수정 : 2012-01-26 15:34:37 사건·사고“계약금 내면 임대아파트 준다”…노인들 울린 가짜 복지재단백인성 기자 fxman@kyunghyang.com 글자크기ll l이 기사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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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시에 사는 정남주씨(67·가명)는 매일 오후 8시면 역삼동으로 나간다. 8년째다.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청소업무를 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심장이 약해 20년 전 수술한 이후 무거운 것은 들지 못한다. 지금 소형 빌라에서 남편과 몸이 불편한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까지 8명의 가족이 산다. 아들의 집을 한 채 마련해주는 게 정씨의 소원이다.
정씨가 ‘그들’을 만난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소액만 내면 가난한 이들에게 임대아파트를 지급해주는 ‘참복지’를 하는 복지재단이라고 했다. 재단 대표라는 사람은 실제로 사업을 한다며 수백억원의 수표와 통장을 꺼내 보였다. 대표는 5000만원만 내면 재단이 서울시에서 매입한 임대아파트 20년간 소유권을 보장한다고 했다. 귀가 번쩍 띄었다. 정씨는 밤새 청소하며 모아온 4400만원을 이들에게 넘겼다. 그렇게 사기를 당했다. 정씨가 생전 처음 가본 경찰서에는 전재산을 날린 같은 처지의 노인들로 가득했다.
계약금만 내면 보유한 임대아파트를 지급하겠다며 복지재단을 빙자해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다단계 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강남구 대치동에 ‘국제호밍복지재단’이라는 유령 재단을 차려놓고 “접수비 5000만원만 내면 재단에서 보유한 반포·잠실 지역의 중소형 임대아파트를 20년간 사용하게 한 후 소유권을 이전해주겠다”며 저소득층 노인 83명을 상대로 12억7000만원을 가로챈 권모씨(54) 등 3명을 검거했다고 26일 밝혔다.
권씨 등 4명은 지난해 2월 서울 대치동 ㄱ모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각각 국제호밍복지재단 총재와 이사장, 주택보급위원, 사무총장 등으로 행세했다.
이들은 노인들을 끌어모아 “미국에 본사를 둔 재단은 연간 수경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세계적 복지재단으로 산하 24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집없는 서민들을 위한 ‘참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회원 접수비 5000만원을 내면 SH공사가 보유한 임대아파트 수백 세대를 호밍재단에서 시세의 절반 값에 매입해 2012년 1월까지 입주시켜주고 20년간 임대 후 소유권 역시 이전해주겠다”고 속였다.
이들이 주겠다고 장담한 강남구 반포동 ‘ㄴ’아파트와 송파구 잠실동 ‘ㄷ‘아파트 등은 이미 수년 전 입주가 끝난 아파트였다. 또 임대주택은 법적으로 거래가 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같은 사정에 어두운 저소득층 60~70대 노인들이었다. 권씨 등은 일부 의심을 품는 노인들을 아파트의 빈 집으로 데려가 ‘재단이 보유한 아파트’라고 속여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권씨 등은 또 오피스텔에 피해자들을 교육할 강의실을 만들어 놓고 평일 11시부터 4시까지 매일 강의를 진행했다. 노인들이 사무실에 방문하면 미리 짜여진 강의 시간표에 따라 ‘참복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 숨겨진 조상 땅 700만평을 찾아 마련한 자금으로 복지사업을 하겠다”거나 “중국 상무부 장관의 투자를 받아 황학동 소재 상가를 매입하고 인근에 중국상품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는 등의 사업가를 자처했다. 권씨는 100억원의 현금이 들어있는 통장이나 수백억원 가량의 수표 등을 지갑에 넣어다니며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신용을 과시했다.
특히 권씨 등은 노인들이 주변 회원을 끌어올 경우 “주택 값인 5억원의 3%를 지급하겠다”며 다단계 방식을 이용해 피해를 키웠다. 노인들은 “5000만원이면 집을 얻을 수 있다더라”는 소식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며 지인을 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권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이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으며, 달아난 공범 오모(55)씨를 지명수배해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집이 필요한 절박한 노인들의 심정을 이용한 악성 사기”라며 “최근 전세금이 폭등해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서민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는 사기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