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잠들기 전, ‘흥부놀부’를 읽어주다가 놀부가 제비 다리 부러뜨리는 장면에서 ... 옛날 일이 하나 떠오른다. 지옥에 떨어질 뻔 했던 ... “ ... 지지배배 ... 지지배배 ... ” 어릴적 내가 살던 시골집에는 해마다 제비가 찾아왔다. 처마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키우고 그러다가 추워지면 떠났다. 겨울이 되면 처마 밑에 늘 빈 제비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때쯤 아, 제비는 추워서 따뜻한 데로 갔구나 ... 7살 때 쯤, 그해에도 어김없이 제비가 새끼를 낳았다. 툇마루에서 꼰지발을 하고 어미제비가 먹이를 물어와 새끼들에게 먹여주는 걸 지켜봤다. 주둥이를 내밀고 "엄마 밥줘" "엄마 밥줘"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 만져보고 싶었다. 때를 노렸다. 할머니와 엄마는 밭에 김매러 가시고, 언니 오빠는 학교 가고, 할아버지는 동네 정자로 장기 두러 가시고, 아부지는 자전거 타고 일보러 가셨다. 빈 집 ... 나는 어미 제비가 먹이를 구하러 갈 때를 기다렸다 ... 마침내 새끼제비 혼자 옹알거리고 있을 때, 의자 위에 상자를 얹고 ... 구렁이처럼 새끼제비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새끼제비를 잡는 순간 의자가 기우뚱하더니 와르르 무너졌다. ... 아이고 ... 엉덩이 ... 팔꿈치 ... 아프다 ... 다행히 새끼 제비는 손 안에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 떨어지면서 제비집을 건드린 모양이다. 제비집이 통째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할머니 말이 퍼뜩 떠올랐다. “나쁜 짓하면 제로(지옥)간다” ... 와락 겁이 났다. 할아버지한테 들키면 또 불벼락이 떨어질 테고 ... 후다닥 제비집을 두엄 속에 깊숙이 파묻고 의자랑 상자들을 치웠다. 빗자루로 제비집 부스러기까지 완벽하게 쓸어냈다. ... 완전범죄 ... 아니다 ... 처마를 올려다보니 제비집이 있던 자리가 휑했다. 새끼 제비는 이제 어쩌지? ... 집도 부서지고 ... 어디다 숨길까? ... 장독대가 있는 뒤란으로 갔다. 장독대를 지나 석류나무를 지나 풀이 무성한 곳에 이제는 못쓰게 된 탈곡기! ... 탈곡기 안에 가마니를 깔고 새끼제비를 놓고 헌옷들을 가져다가 덮어주었다. 두근두근 ... 아무도 보지 않았다 ... 아무도 모른다 ... 아무도 ... 지지배배 ... 지지배배 ... 어미 제비가 돌아왔다. 그날따라 소란스럽게 짖어댔다 ... 담벼락에 몰래 숨어서 어미제비를 살폈다. 제비는 처마 밑으로 갔다가 지붕위로 갔다가 ... 이리저리 새끼를 찾아다녔다. 제비가 내 쪽으로 날아올 때 마다 "내 새끼 내놔!“하면서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식구들이 집에 돌아올 때 마다 혹시 처마 밑을 쳐다보지 않을까 ... 조마조마 ... 어서 밤이 와서 처마 밑이 어두워지기를 ... 만약 누군가 제비집이 없어진 걸 알고 “네 짓이지!” 라고 추궁을 한다면 ... 제비가 이사 갔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날 저녁 꿈을 꾸었다. 커다란 동굴 속에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산다는 지네에 쫓기기도 하고, 얼굴없는 몽달귀신에 쫓기기도 하고 ... 결국 다음날 새벽 ... 자다가 이불에 쉬를 했다. 다음날 아침, 가족들에게 ‘찌렁내 오줌싸개’라고 놀림을 당하고 ...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 밥을 조금 남겨 손에 쥐고 살금살금 뒤란으로 갔다 ... 새끼제비는 어제보다 힘이 없었다. ... 밥알을 입안에 집어넣어주었다 ... 먹는 건지 마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벌레를 몇 마리 잡아다 놓아주었다 ...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새끼제비가 숨을 쉬는 듯 마는 듯 몸을 잘 가누지를 못했다. 벌레도 안 먹고 그대로 남겨놓았다. ... 죽으면 어떡하지? ... 덜컥 겁이 났다. 죽으면 진짜로 제로 간다! 불지옥, 바늘지옥, 몽둥이지옥 ... 어떻게 하지? ... 엄마한테 모든 걸 다 털어놓을까? ... 아냐 ... 그럼 온가족이 다 알게 될거고 ... 할아버지의 불호령 ... 아, 야단맞기는 싫었다 ... 싫어 ... 이웃집에 공부하는 '건주 아재'가 생각났다. 무슨 공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늘 책 펴놓고 공부를 했다. 어슬렁 어슬렁 ... 우리 집 암탉이 없어진 양 찾는 척 하면서 ... 건주 아재가 공부하는 방으로 다가갔다. “ ... 아재 ... 나쁜 짓 하면 진짜 제로(지옥) 간다요? ... ” “ ... 너 또 재앙(장난) 쳤냐? ... ” “ ... 아이고, 나가 만날 재앙만 치고 다닌 줄 아요? ...” “ ... 너, 거짓깔(거짓말) 하믄 진짜로 제로 간다이 ... ” 막혔던 울음보가 터졌다. 띄엄띄엄 자초지종을 고했다. 지금 새끼제비가 죽게 생겼는데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 건주아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새끼제비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바람보다 빠르게 달렸다. 다행히 새끼제비는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건주아재는 새끼제비를 조심스럽게 들고 자기집으로 가서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 넣어주었다. 그렇게 제비새끼를 친모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입양을 시켰다.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한 가슴이 뻥뚫렸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날은 하늘도 푸르고 꽃도 예쁘고 개미들도 귀여웠다. 모든 것들이 다 예뻐 보였다. 난 살았다. 제로가지 않아도 된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 “ ... 나를 나를 나를 두고 ... 산 너머 가시더니 ... ” 그 뒷일은 동무들과 처 노느라고 기억이 없다. 새끼제비는 남의 집에 입양되어 무럭무럭 잘 컸는지, 새엄마가 잘 돌봐주었는지, 낯선 형제자매들하고는 사이좋게 지냈는지 ... 나중에 강남에 가서 친엄마를 만났는지 ... 다행히 다음해에도 우리집엔 제비가 날아왔다. 제비집을 짓고 또 새끼를 낳고 ... 지지배배 ... 지지배배 ... 나 때문에 졸지에 집과 엄마를 잃은 새끼제비는 아직까지는 ... 나에게 박씨를 물어다주지 않았다 ... 
‘흥부놀부’를 다 읽고 딸에게 놀부가 왜 벌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제비새끼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 “마누라 말을 안들어서 그래. 두 번째 박까지 탔을 때, 놀부마누라가 박을 그만 타자고 했잖아. 근데 말을 안 듣고 세 번째 박을 타니까 똥이 쏟아져 나와서 망했잖아. ... 아빠도 그러니까 마누라 말 잘 들어 ... “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11-04 07:14:00 생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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