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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잠깐 한국에서, 강원도 지인의 거처에 의탁했을 때 일이다.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읍내였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조금/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서, **초등학교 앞 이란 정류장에서 내려 바로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대체로 빨간불이기에 조금은 파란불을 기다린다. 그날도 그랬다. 아파트, 공단, 군부대,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소복한적호젓한 바람이 부는 한산한 동네의 한 구석에 있는, 정오의 횡단보도에서 느긋하게 2명의 사람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나와, 통통과 뚱뚱의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한 꼬마 한 명. 갑자기 이 녀석이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무색무취의 표정으로 "아저씨, 저 아파트 살아요?" 라고 물어온다. "나는 사는 게 아니라 잠깐 얹혀 지내는 건데 곧 떠날건데 어디로 갈지는 몰라" 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응 너도?"라고 해버렸다. 녀석은 표정이 환해진다. 역사에 등장하는 빛나는 간신배들의 표리부동태세전환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정도. 안그래도 정오다. 햇살이 전면으로 전격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지상에 닿는 가장 환한 타이밍에서, 녀석은 태양처럼 뜨거운 아우라로 물어왔다.
"네. 그럼 우리 같이 걸어갈래요? 아파트까지" 나는 사실 아파트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우편 공단 아래쪽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담배를 한 갑 샀어야 했지만, 저 작렬하는 태양 같은 존엄을 거부할 수 없어서 "응. 그래" 라고 했다.
걸어가며 녀석은 뜬금없지만 어색하지 않게 재잘조잘한다.
"혼자 걸어가면 심심해서 싫어요. 아저씨는 어때요?" "나는 혼자 걷는 게 좋아." "왜요? 친구들하고 가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좋지. 하지만 생각해 봐. 만일 네 친구들이 걸어가면서 수학 점수 학원비 등수 중학교 이런 것만 얘기하면 너 같이 걷고 싶겠어?" "아니요" "응. 아저씨도 비슷해." "같이 놀 친구가 없어요?" "있는데..뭐랄까 지금 너랑 비슷한거지. 같이 걸어갈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아." "그렇구나...그럼 아저씨도 심심해요?" "아니, 난 심심하지 않아. 혼자서도 잘 놀거든. 이 동네도 고양이 몇 마리 있던데 친구 먹으면 되는거지." "그렇구나...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백수....란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저씨 말투가 이상해요. 어디 살아요?" "대만, 일본에 있다가 중국에서 왔어"(왜 이리 자세하게 설명했는지) "중국 사람이에요? 와 한국말 잘한다!" "아니....한국토종이란다.." "아..그럼 떠돌아 다녀요?" "응" "와 돈 많은가보다" (화들짝) "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대충 벌어서 대충 다녀.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해서." "에....그렇게 살아도 되나요?" (화들짝) "뭐 재미만 있다면." "전 재미가 없어요. 하루 종일 공부만 해요." "하루 종일? 근데 지금은 집에 가잖아?" "집에 가도 공부만 해야 해요." "에 뻥치지 마. 어떻게 공부만 하니." "공부 아니면 티비. 두 개 밖에 없어요." "흠....너 몇 학년이랬지?" "4학년요." "여기 너네 학교 친구들 없어? 같이 놀면 되잖아." "1,2학년 애들 밖에 없어요. 걔들 어려서 말이 안 통해요." (주억끄덕, 아파트 거의 도착) "아 그렇구나. 근데 너 나랑 말하고 있잖아." "네" "나는 **살이지롱!" "헉...완전 늙었다. 우리 아빠랑 비슷...." 1#!@$!@$#@!# 너는 안 늙을 것 같냐!#@!# 너희의 젊음이 너네가 잘 해서 얻은 게 아니듯이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아니..그게 아니라 "아저씨는 오후에 뭐해요?" "나...(생각해본다) 오늘은 누워 있을 거 같아. 그래야 하는 날이거든." "누워 있어야 하는 날도 있어요?" "만들면 되지. 오늘은 아침부터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런 날이야."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구나. 부러워요." (고개를 갸웃거린다)"너네가 날 부러워할리가. 다 왔네. 아 통성명 해야지. 이름이 뭐니?" "승희요!" "응 난 **야. 반갑다. 동네친구 먹자. 가다가 보이면 불러서 인사하기 놀이 어때?" "네!" "난 좀 있다 가니까, 뒷통수 보이면 바로 불러. @#$! 이렇게. 안 부르다 걸리면 서로 아이스크림 사주기다!" "어...네." "그리고 1,2학년들도 나름 고민들이 있으니까 같이 한 번 놀아보고. 네가 꼬마도 아니고 어린 애들이라고 안 놀아주면 좀 그렇잖아." "네. 알았어요. 안녕히 가세요." "잘 가"
칩거 중인 당시, 그 녀석과 나눈 10분 남짓한 대화는 옹달샘 처럼 느껴졌다가 뭘까, 무언가 쌉쌀해졌다. 공부와 티비로 하루가 가득한 알찬 아이들. 탄탄하게도 튼튼하게도 단단하게도 든든하게도 느껴지지 않는 나의 수많은 하루들 수많은 여백들이, 놀라서 꺄울꺄욱거웃거렸었다. 4학년도 1,2학년하고는 수준 떨어져서 안 논다던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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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