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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은 신터클라스의 날이다.
신터클라스의 날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플란더런
지방의 민속 명절인데, 내 체감으로는 네덜란드 최대 명절이다. 명절이라곤 기독교
축일 위주이고, 그다지 ‘민속적’이라 할 만한 요소가 없어서, 이 나라 참 재미없구나 생각했었다. (왜, 명절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별음식과 풍습 등 말이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 온몸으로 들뜨는
날이 있으니, 그것은 신터클라스의 날~ . (흥분 정도로는 카니발과
여왕의 날이 최고이지만, 카니발은 남부지방 풍습이고, 여왕의 날은 홀란트
지방 중심이어서 제외)
네덜란드의 신터클라스Sinterklaas(또는 신트 니콜라스Sint-Nicolaas)는 기독교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스St.Nicholas에서 왔다.
니콜라스 성인(270년~343년 12월 6일)은 소아시아의 리키아 사람으로 미라Myra (지금 터키
땅)의 주교였는데, 몰래 가난한 사람을 돕곤 했다. 신발에 돈을 슬쩍 넣어뒀다고 한다. ‘미라의 니콜라스Nikolaos of
Myra’라 불리는 이 성인은 어린이와 뱃사람의 수호성인이며, 기일인
12월 6일이 기독교에서는 니콜라스 축일이다.
이 니콜라스 성인 축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민속명절이 된 것. 니콜라스는 착한 아이에게 과자를,
말썽꾸러기에게는 벌을 주는 할아버지다. ‘신트 니콜라스’(성 니콜라스)라는 말도 그냥 신터클라스가 되었다.
신터클라스의 날은 12월
5일이지만, 신터클라스는 11월 중순에 네덜란드에
도착한다. 어디서?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온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도시에 배가 운하로 닿는지라...우리 동네에도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온 신터클라스가 강둑에 내렸고, 사람들은 강가에 나가서
이 신터클라스를 맞이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신터클라스 보러 갈
거지?” 물어봐서 참... 가짜인 줄 알면서도 어른들도 들뜨고,
아이들은 난리 나는 날. 아이 있는 집은 무조건 강가에 나가야 함.) ※네덜란드에서는 신터클라스 날 이브인 12월 5일을 쇠고, 벨기에는 12월 6일에 쇤다.
그런데 신터클라스는 한 명인데, 어떻게 도시마다
강둑에 배를 타고 도착하느냐. 우선 신터클라스가 스페인에서 배로 네덜란드의 항구에 도착한다.(해마다 항구 하나가 정해짐. 즉, 그 해의 ‘신터클라스 항구’로.) “신터클라스가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뉴스가 TV에 나오고, 생중계된다.
(1888년 이 최초. TV방송은 1952년부터) 신터클라스는 그 다음 날 도시마다 다시 배를 타고 도착한다. 신터클라스가 어떻게
다음 날 여러 도시에 동시 등장하느냐고 아이들이 물어온다면...이제 신터클라스를 믿지 않게 되는 나이...
배에서 내린 신터클라스는 하얀 말을 타고 여러 명의 '검둥이 피트'들과 함께 거리 행진을 한다. 아이들 명단이 적힌 두꺼운 책을 들고^^. 사람들은 '신터클라스 노래'를 합창하며 이들을 맞이하는데, 이 때 검둥이 피트들이 페퍼노턴이라는 과자를 던져준다. 아이들은 열광의 도가니. 부모들은 새끼들 과자 하나 받게 해 주려고 목마 태우고 열광에 동참.
(아무리 네덜란드에 오래 산다 해도, 원주민과 이방인을 굳이 구분한다면 이런 거다. 신터클라스 노래를 아느냐 모르느냐.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이 이 노래 부르면서 바보같이 행복한 표정을 짓느냐 아니냐... 네덜란드 언어학교에 다닐 때, 사회통합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따! 짜증 나 미치는 줄 알았따! “온다, 온다, 인자하고 선량한 성자가 온다. 내 절친, 너의 절친, 모든 어린이의 친구. 내 가슴은 뛴다. 내 가슴은 뛴다. 뭘 갖고 올까 뭘 갖고 올까?” 뭐 이런 노래다.)
신터클라스의 원래 직업은 '주교(bishop)'다. 주교 복장이 유니폼.
스페인에서 오는 배, 검둥이 피트,
페퍼노턴(양념 과자)...감이 오시남?
4세기부터 축일로 전해지던 니콜라스 성인 이야기에, 아무래도 16~17세기의 상황이 버무려져 있는 것 같다. (민속명절이란 게 그렇듯,
유래가 확실하지 않음).
▲ 페퍼노턴. 검은 피트들이 이 과자를 아이들한테 나눠준다.
재밌는 것은, 어김없이
이즈음엔, ‘검둥이 피트’를 둘러싼 인종주의 관련 토론이 벌어진다는
거다. 신터클라스의 시중을 들면서 오는 이 '검둥이 피트'의 고향은 아프리카일 테고, 노예였을 것이다. ‘굴뚝 통과설’도 있긴 한데...좀 구차한 것 같고,
신터클라스의 몸종 노예였다고 봐야지...
그런데, ‘인종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생긴 풍습이라, 이제 와서 검둥이 피트를 흰둥이로
바꿀 수도 없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주의자들은, 억지로
이 풍습을 바꾸지는 않는다. 인종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는 자신감도 있는 것 같다. 그 유래야 어찌됐든, 지금 네덜란드 사람들이 검둥이 피트를 보면서 인종차별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 피부색깔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이
풍습을 놓고 지난해에 했던 말을 또 하고, 마땅한 결론없이, 갑론을박하다가,
때가 되면 또 끄집어 내서 토론하고, 답은 없지만 토론은 반복된다.
내가 보기엔 ‘검둥이 피트’를 놓고 역사와
풍습과 인종주의에 대해 끝없이 얘기하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거 아닌가 싶더라.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는, 검둥이 피트가 굴뚝을 통과하느라 검댕이가 되었다는 ‘굴뚝 통과설’로 정리되었다. 지금 어린이들은 ‘흑인 노예’가 아니라 굴뚝 통과하느라 검게 되었다는 ‘굴뚝통과설’로 타협된 설화를 믿으며 자란다.
이 신터클라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산타클로스가 된다. 뉴욕이 뉴 암스테르담이던 시절,
뉴 암스테르담에 살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쇠던 신터클라스 명절이 산타클로스로 재창조 된 것.
크리스마스가 보편적인 명절이 된 것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는 두 번의 산타클로스를 맞는 셈. 가게들은
11월부터 신터클라스 특수에 들어가서 (착한 아이에게 주는 선물)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진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선물. 일반적이진않음.). 네덜란드에서 산타클로스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맨(kerstman)’이라고 불린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명절의 하나로 쇠는 것이지, 미국이나 한국처럼 민속명절, 가족잔치, 파티 문화, 선물 공세, 이런 요소는 없다. 부활절 보다 더 조용함.
▲ 얀 스테인, 신터클라스 잔치. ca.1663-1665 여자아이는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 선물을 잔뜩 받았고, 울고 있는 남자아이는 벌을받고 있는 장면. 요 앞 바구니에 담긴 과자와 빵들, 지금 먹는 것과 똑같음^^.
11월 중순에
신터클라스가 네덜란드에 도착한 날부터, 아이들은 아침마다 신발을 확인한다. 착한 일을 했다면, 신터클라스와 검둥이 피트가 와서 신발에 뭔가를 넣어놓고 가기 때문이다.
이런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12월 5일 바야흐로 신터클라스 날이다.
이날
아이들은 부모한테 몇 가지 선물을 받는다.
내가 감탄한 몇 안 되는 네덜란드 풍습 중 하나. 첫번째는, 부모의 자작시. 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시를 직접 써서 준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요즘은 인터넷에 자료가 많다고 ㅎㅎ
시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라임 맞춰서 쓴 몇 문장이다.
“신터클라스는 오래 고민했네.
봉팔이한테
뭘 선물해줄까” 이런
식인데, 꽤 재밌다. 두 번째는 초콜릿. 그냥 초콜릿이
아니라, 아이의 이름 첫자 알파벳 초콜릿이다. 예전에 무슨 장난감 선물이
있었겠나. 초콜릿은 얼마나 귀했겠나. 그런데 자기 이름으로 된 대빵
큰 초콜릿을 받는 거다. 
세 번째는 말 그대로 선물. 이 선물을
집안 어딘가에 숨겨놓는데, 아이들은 이 숨겨진 선물을 찾는 순간 카타르시스 폭발^^. 선물을 개봉할 때, 부모들은 자작시를 큰 소리로 읽어준다. 네덜란드 친구들이 지금도 신터클라스의 날에 그렇게 들뜨는 게 이해되더라.
이 신터클라스 선물은 아이가 다 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ㅋㅋ,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가 자식에게 선물 챙겨주는 집이 많다. 우리네 명절처럼, 평소 고마운 사람한테 간소한 선물도 주고 받고.(정말 간단한 선물, 몇 천원짜리^^) 집 근처에 사는
친구 아이를 가끔 봐주곤 하는데, 오늘 친구한테 갔더니 신터클라스 날이라믄서 머그잔 하나를 선물로 주더라.
오늘 슈퍼마켓에서 알파벳 초콜릿이 쌓인
진열대 앞에서,
P를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 P자 초콜릿 샀다는 이야기하려다보니 사연이 길어져서, 본격적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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