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일 전에 아버님 집 창고정리하면서 예전 사진과 편지들을 찾았다. 대학 초년시절 여름방학 동안 혼자서 전국일주를 하던 당시의 편지들과 사진들을 보면서 광주가 그립다.
곽노현 교육감 응원하러 유시민 및 이정희대표가 법원앞에 간다는 소식보고 나 또한 무탈하게 돌아오시기를 기원하며 박봉팔닷컴에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내 소개를 겸해 사진속 과거의 내 생각을 쓴다.
우리 아버지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했다. 아니 당신께서 빨갱이로 몰리는 것을 무서워하셨던 거다. 빨갱이는 그렇게 우리를 마비시키는 말이다. 내가 육군사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육사 안갔다.)
빨갱이. 우리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의식을 마비시켜 본능적으로 살게하는 말이다. 남에서 빨갱이로 몰리면 몰살당할 수 있는 위험한 단어였다. 주로 앞잡이들이 잘 쓴다. 비슷한 쓰임의 단어로 북에서는 반동분자가 있다.
그런데, 나에게 전라도는 빨갱이 땅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추모하는 80년대 대학가는 외세를 거부하는 민족적이고 애국적인 깨어있는 양심세력의 진지였다. 광주의 아픔과 부채의식을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그리고 깨어있고 싶었고 빨갱이의 땅도 보고싶었다. 여름방학 동안 혼자서 전국일주를 하고 광주도 우금치도 가보기로 하였다.
어린시절 무지몽매하게도 전라도를 빨갱이의 땅으로 인식하는 말을 많이 들어온 터라,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선에 서서 전라도 땅에 첫발을 디딜려고 하는 가슴 설레임이 기억난다. 혼자라서 더 무서워 가슴 두근거렸는지도 모른다.
해방구 광주는, 대학가에서나 보고들었던 영상과 음악이 시내 중심가에서도 접할수 있는 저층 건물만 있는 낮게 깔린 안개처럼 아픔이 스며있는 그런 아픔의 도시로 다가왔다. 배낭여행 중에 광주에서 새 친구들을 만났다. 아래 편지속 광주의 친구들도 그들의 아픔도 생각난다.

서울 경기도를 거쳐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강원도 다시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는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 간직한 선량한 사람들의 수난을 기억하고 알고자 노력했다.
나이어린 풋내기 친일파 검사 오제도가 선량한 동포들 삼십만명을 빨갱이로 몰아 죽게하였듯이 지금도 또다른 외세의 앞잡이들에 의해서 서로 까닭 없는 원수가 되고 만들어지고 서로 다치고 있다. 우리는 정녕 우금치를 넘어서 진군할 수는 없는가 ?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빨갱이로 선량한 사람들을 몰아 학살하던 봉건적 사고의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고 진보시킬 수 있으며 노무현대통령처럼 온몸으로 세상의 강자들에 맞서 우리 선량한 시민들이 살 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깨어있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노무현대통령을 만날때마다 느꼈던 설레임으로 매일매일 박봉팔닷컴을 보고 있다. 박봉팔닷컴의 깨어있는 동지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있다. 모두 들 넉넉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힘 ! 빠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