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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작은 호텔을 예약했는데 로비에 앉아 손님을 맞는 분이 뜻밖에도 동양인 아저씨다. 언뜻 한국인 인가 싶을 정도로 익숙한 외모의 아저씨는 중국계 이민 2세대란다. 피렌체에서 태어났고 피렌체를 떠나 본 적이 없는 피렌체 토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왜 아저씨가 하는 이탈리아어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 귀에 어색하게 들리는 건지...ㅋㅋ
호텔 방 내부, 높고 긴 창문이 맘에 들었어.
기사를 쓸 건데 아저씨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한국인 손님은 별로 없는데 좋게 써 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찍게 된 게 아래 사진.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신 아저씨의 한 컷
어디를 가든 내가 좋아하는 코스는 역시 동네 골목길이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가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어 미로 속에 갇힌 듯 같은 곳을 돌고 돌며 몇 시간씩 헤매기도 하지만 골목길에서 느끼는 따스함과 익숙함들이 좋아서 시간만 나면 골목길 원정에 나선다. 호텔은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있었는데 내가 좋아라 하는 낡고 따뜻한 길들을 걷는 게 좋았다.
거리에서
그리고 길 위의 사람들
아! 그리고 길 위의 재활용 쓰레기통들..
처음엔 우체통 같은 건가 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재활용 분리수거 쓰레기통들이더라. 위에 사진에 보이듯 각각 분리해야 하는 쓰레기 종류들이 그려져 있고 아래쪽 페달을 밟으면 뚜껑이 열린다. 귀엽고 깔끔한 방법이구나 생각했다.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인 우피치(Uffizi Gallery)와 아카데미아(Galleria dell'Accademia)는 모두 떠나기 전에 예약해야만 했다. 워낙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매표소에서 한나절을 보낼 수도 있다는 말에 기겁해 미리 예약해 두었는데 도움이 되었다. 혹시 나중에 이 미술관들을 가보고자 하는 봉팔러들이 있다면 예약도 하고 아침 일찍 서두르시라 권하고 싶다. 밀려드는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듯 명화들을 감상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우피치는 르네상스 이전 시기와 그 과도기 또 르네상스가 비로소 꽃을 피우는 13세기~ 16세기를 관통하는 이름난 화가, 조각가들의 작품들이 그야말로 떼를 지어 모여있다. 그 부작용이랄까? 하나씩 두었어도 오래 곱씹으며 이리저리 뜯어 보고 싶은 작품들이 떼로 모여 있으니 감동에도 한계 같은 게 있더라. 인간의 감각은 지속적인 자극에 재빨리 길들게 되나 보다. 사진 촬영도 제한적이기도 했고 관람객들 속에 좋은 각도도 안 나와 직찍은 포기했다. 그래도 서운하니까 우피치의 벽장 속 명화 중의 명화들을 몇 개 인터넷 그림으로 보자.
사비니 여인 겁탈 (지암볼로냐)
마돈나 (지오토)
골드핀치의 마돈나 (라파엘)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봄 (보티첼리)
유비노의 공작과 공작부인 초상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아카데미아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의, 다비드의 의한, 다비드를 위한 갤러리라고 하는 게 적확하다. 원래 두오모 성당의 지붕 위에 놓일 계획으로 제작되었는데 후에 계획이 변경되어 메디치가의 옛 성이 있던 베키오 광장 (Palazzo Vecchio)에 놓였다가 작품의 손상을 피하고자 지금의 돔 양식 건물로 옮겨지게 됐다고 한다. 갤러리 초입에 인상적인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거대한 미술관을 점령하고 있는 건 골리앗을 노려보는 결코 작지 않은 소년 양치기 다비드다.
몰래 찍은 다비드상
마당에 나와 있는 비즈한 바시리 (Bizhan Bassiri)라는 이란 출신 작가의 다비드상. 근데 제목이 좀 뜬금없이 운석 (La Meteorite)이란다.
앞에서 얘기했듯 갤러리 초입에는 미켈란젤로의 인상적인 조각들이 전시돼 있는데 거칠지만 매끈한 다비드보다 더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들은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죄수들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스스로 화가이기보다 조각가라고 믿었다고 한다. 또 조각가가 하는 일은 돌을 깎고 다듬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감춰진 형상들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직도 반쯤은 돌 속에 숨겨진 죄수들의 모습을 보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 미켈란젤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자 이제 피렌체에서 마지막 밤으로 기억을 돌려 본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가를 끼고 양편으로 색채가 다른 풍광이 펼쳐져 있다. 지금까지 둘러본 광장과 성당, 미술관들은 아르노 강 북쪽에 있고 이 북쪽과 신 궁전이 있는 남쪽을 잇는 제일 오래된 다리가 말 그대로 옛날 다리, Ponte Vecchio 다.
아르노 강가
폰테 베키오 다리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풍경)
위 사진에서 보듯 평범한 다리 모양새는 아니다. 원래 이 다리 위로는 마을의 도축업자들이 무리를 지어 정육점을 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다리 남쪽에 메디치가가 신 궁전을 건립하면서 신 궁전과 옛 궁전 (이 자리가 바로 오늘날의 우피치 미술관과 그 옆에 있는 궁전)을 잇는 비상통로를 짓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정육점이 늘어선 다리의 2층 부분이다. 궁전과 궁전을 잇는 통로가 되었으니 피비린내 나는 정육점은 더는 이 다리에 어울리지 않는 부속품이 되었고 점차 금과 은 세공품을 취급하는 보석상들로 채워지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보석을 파는 보석상들이다. 그래서 피렌체 사람들은 이 다리를 우스갯소리로 'Old Bridge' 또는 'Gold Bridge'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리 위 풍경들
요런 것들을 판다
빠질 수 없는 젤라또 가게
폰테 베키오는 잘 알려진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만 피렌체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밤이 되면 피렌체의 연인들은 한껏 설레는 맘으로 다리를 거닐 거나 다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아르노 강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인단다. 내가 있는 동안은 별로 로맨틱한 광경을 포착하진 못했지만, 이국적인 말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조금쯤 그 거리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뜨르의 조언에 따라 유투브를 이용하야 동영상 올린다. 폰으로 찍은 거니 화질, 음향의 부족함은 용서해 주길. 짧지만 분위기는 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올려 보았다.
사족: 난 사실 여행 중에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기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일도 별로 없을 정도로 말이다. 특별한 데를 찾는다기보다 어떤 동네든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길 좋아하고 그러다 지치면 아무 데고 찾아 들어가 피로가 풀릴 만큼 앉았다 일어나는 별 목적 없는 여행을 즐기다 보니 사진을 찍는다는 일이 언제부턴가 여행의 흐름을 끊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사진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지나간 시간의 특별함도 그저 조금 허무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더라.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참 특별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기자 정신'을 발휘하며 뭐든 찍어 두려고 했으니까. 이제껏 보다 많이 바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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