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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버이날 모두들 부모님께 카네이션 달아드렸는가...
난 기념일에 약하다. 이런 기념일은 비자발적으로 챙겨왔다.
결혼하고 가족 생일 모르고 지나간 것은 다반사였고,
결혼전에는 어버이날은 그다지 뭘 했던 기억도 없다.
그러나, 이번 어버이날은 왠지 그냥 넘길수가 없다.
칠순을 넘기시고, 언제나 건강할 것 같던 두분이 작년부터 부쩍 늙으셨다.
왠지, 올해가 마음 편하게 맞는 마지막 어버이날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앞으로 매해 그럴거 같다.
우리 아버지. 성질이 개떡같다.
며칠전 대형 사고를 쳤는데, 그것만 아니면 이렇게 '개떡'이라는 표현으로 글을 시작하지도 않을거다. 당신 인생을 이렇게 인터넷공간에 잠시 생각해보려고 시작했는데, 갑자기 그 일이 떠오른다. 그 그늘에서 늙어가는 것은 엄마뿐. 그래서 뇌졸증 증세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쨌든, 더러운 성질머리를 타고난 우리 아버지.
고향은 통영이다. 충무.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도시. 할어버지는 아버지 어릴적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만주로 장사를 다녔다는 이야기도 그저 흘려가듯 한번정도 들었는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 시절, 어린 남매를 두고 할머니는 시장에서 떡장사를 하셨는데 아버지가 15세쯤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통영은 나전칠기가 유명한 곳이다. 학교는 아마 초등졸업? 졸업은 하셨는지 알수가 없다. 그때는 다 그랬으니까. 그곳에서 나전칠기 기술을 익혔다. 기술이 좋아서 어린나이에도 공장장 역활을 했다고 말씀 하시곤 했다. 3대독자라 가까운 친척도 없고, 형제도 많지않고, 그래서 결국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제 2의 고향에서 50년 이상을 사셨다.
아버지의 이십대는 기술자로서 자기 자리를 잡으면서, 독서를 통해 배움을 갈망하는 시기였다. 사업이 기울면서 책을 두수레를 내다 팔았다고 말씀 하시곤 했다. 김지하의 황토 초판본이 우리집 책꽂이에 있었던것을 기억한다. 어느날 신세진 분에게 그 책을 선물하실 때까지. 술 한잔 하시거나 하면 당신이 이십대에 읽은 철학자들 이야기를 늘 하셨다. 주로 당신의 처지를 변명하고 싶은 철학자들만을 기억하시는게 탈이었지만.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골, 버나드쇼...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철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여자 철학자는 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별달리 반대도 없었는데(어린애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진 않으신거겠지만), 왜 그말에 그대로 순응한건지 모르겠다.
책장 맨아래 문이 달린 칸에는 아버지가 젊었을 때 쓴 일기가 들어있었다.
한권은 나무를 깍아 표지를 만들고, 직접 만든 일기장이었다. 몇년동안 쓰다 만 일기장들에는 이십대의 형이상학적인 고민들이 가득 채워졌다.
어릴적 우리집은 농방을 했다. 자개를 켜고, 아교로 붙이고, 칠을 하고..
아버지는 직접 도안을 하셨다. 중국에서 들어온 화집을 사다가 그림을 보고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투명한 트레이싱지에 밤새워 배껴서 도안을
만들었다. 이 도안을 자개에 붙이고 오리고, 조각을 해서 농에 붙이고 칠을
하는게 기본 작업이다. 아버지는 꺽음으로 범벅이 된 자개농을 은근히 멸시했다. 디자인이 후지다고. 그리고 사군자나, 매화나 국화가 4자 농 전체에 풍경화처럼 펼쳐지는 것을 직접 그렸다. 당시에 유행하는 정자와 집이 있고 폭포가 있는 그런 풍경은 비율과 원근감이 맞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만든 것은 제대로된 그림들이었다.가끔 자투리 공간에 들어가는 도안을 사다 쓰기도 했는데, 그런것들도 직접 다 그리셨다. 아버지는 예술가였다. 지금 생각하니 성격도 꼭 예술가였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아버지의 기술은 필요가 없게 세상이 바뀌었다. 결국 아버지는 농을 만들만한 돈이 없어 엄마와 함께 작은 소품을을 만드셔서 소품가게에 팔러 서울까지 가기도 했지만, 결국은 일을 접으셔야 했다. 집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은 작은 소반에 학한마리가 날아가는 것 뿐이다. 같이 기술을 배워서 무슨 무슨 장인으로 이름을 불리우는 분도 계셨고, 일치감치 기성가구 쪽으로 눈을 돌려 사업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원활한 사회생활을 할만한 성격이 못되는 탓에 결국은 무능한 가장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멋쟁이셨다. 난 몰랐는데 친구들이 한번씩 집에오면 깜짝 놀랐다.
항상 화장을 하셨고, 매니큐어까지..음식도 정말 잘하셨다. 미모도 있으시고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보면 정말 젊고 세련된 엄마였다.
단 한가지 자식을 위해 뭐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억척스러움은 없으셨다.
그런 분이 생활고와 예술가적인 자의식 과잉의 예민한 남자와 살게 되었으니 그 인생의 팍팍함이 말로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가 도망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사회생활에서 낙오하신 자격지심을 가진 성질 더러운 아버지와 생활의 짐을 다 앉고 살아야 했던 엄마...난 좋은 딸이었을까?
십대에는 늘 집이 좋았다.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늘어놓곤 했다. 가족의 생활이 어그러지면서 부터는 반대로 엄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놓으셨다. 결혼후에는 엄마가 먼저 전화를 건 경우는 대부분 뭔가 눈물 쏟으실 만한 일이 있으셨을 때가 많았다. 어느날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왜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시느냐고.
그리고, 그 뒤로는 그런 일로는 거의 연락을 안하셨다.
물론 가끔 집에 가면 말씀은 하셨지만....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시면 난 그때 일을 가장 후회할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무슨일이 있곤 하면 난 부러 연락을 드려 어떠신지 여쭈어보지는 않는다.
결혼을 하고, 우리 아이들이 크고, 부모님은 나이가 드시고...
나이가 든다고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알수가 없다. 그렇게 엄마와 우리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는 늘 우리
걱정만 하신다. 뭔가를 해드려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함께 뭘 많이했던 가족은 아니었다. 분명 힘들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나는 것들은 부모님의 인생 그 자체다.
오늘 나는 용돈을 드리거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 부모님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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