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을 먼저 좀 하자면, 나는 OO 회원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이후로는 제대로 OOO(?) 생활도 하지 못한 주제에 이번까지 해서 두 어번째 OO OOO에 영화를 본 소감을 쓴다.
쓸 때마다 '내가 이런 거 해도 되나?'하는 생각과, '그래도 쓰고 싶다∼'는 갈등 속에 화면을 채워간다. -참고로 이런 머리 아픈 글들은 워드프로세서로만 쓴다-
나에게 이런 갈등을 주는 OO씨는 아마 행복하게만 살게 될 거다. 행복만이 가득한 그것이 바로 지옥이니까.
처음에 "빵과 장미"라는 영화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무슨 뜻일까는 고사하고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로 영화제목을 만들다니, 망할라고 작정을 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서 소개되는 빵과 장미를 접하게 되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바로 접게 되었다. 다만, 빵과 장미라는 두 단어가 여전히 깔끔하게 연관되지는 않았을 뿐.
이번 영화도 내가 작정하고 보는 영화의 공식 아닌 공식-감독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에 충실한 영화였다.
여기서 굳이 영화의 줄거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필요한 분들은 인터넷을 좀 뒤지시라. 영어가 좀 되는 분들은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이 영화는 알다시피 멕시코 이주 노동자인 주인공이 미국에 사는 언니네로 와서 노동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유쾌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단 2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그 과정이-현실에서는 이 과정이란 것이 십년이 걸릴 수도 있고 무수히 많은 사건 전개가 필요한 것임에도- 거의 기초공사 마무리 단계까지 진도가 나아간다.
그 과정의 설득력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영화 장면 장면, 대사 하나 하나 섬세하고 꼼꼼한 것은 물론 어느 하나 쓸데없이 들어간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짜임새 있는 구성에 감독이나 시나리오를 쓴 사람에게 감탄하지않을 수 없으며, 그들이 쥐어뜯은 머리카락이 아마도 한 세숫대야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무척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러나 과장이나 비약은 적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줄만큼 잘 그려내었다.
영화 속의 현실은 곧 우리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IMF 이후 어느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용역 노동자들, 온갖 궂은 일은 다 하면서도 가장 낮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
'코리안 드림'을 가슴 가득 안고 빚을 내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우리(!)나라에 밀입국 하여 손가락이 잘리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사장에게 맘놓고 병원비 달란 말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자신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완충장치로만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한 외침에는 귀를 막고 폭력과 탄압으로 일관하며 오로지 가진 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 힘을 쏟는 공권력.
노동자들의 문제를 그저 이익단체의 그것과 등치시키는 잘 나가는 시민단체들.
이런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는 언제나 그렇듯 눈과 귀를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얼치기 정론직필(?)의 언론들.
그럼에도 스스로, 또는 주위의 영향으로 노동자임을 깨닫고, 이 땅의 주인임을 깨닫고, 떨쳐 일어나 싸움에 나서는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 곁에서 함께 하는 또 많은 사람들.
빵과 장미. 빵은 죽지 않을 수 있는 생존권의 최소한을 말하고, 장미는 그 위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은 정말 죽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장미는 겉보기에 사치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삶에 없어서는 안될 그 무엇이라는 의마를 담고 있다. 인간적인 대우, 노동자로서 응당 누려야할 권리의 보장,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가 아닌 일한만큼의 정당한 보수, 문화생활도 누리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만큼의 대가들이 바로 장미라고 할 수 있다.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는 노동자. 노동자는 세계 어디를 가도 노동자인가 보다.
정규직이든 용역을 비롯한 비정규직이든, 청소를 하든 기계를 만지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우리 노동자 모두는 빵을 원하면서 장미도 원하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빵과 장미'를 요구하는 노동자로 성장하는 주인공과 그 동료들의 모습을, 장미가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게, 그것도 무겁고 심각하지 않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유쾌하고 경쾌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켄 로치와 같이 우리의 일상,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부담없이(?)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감독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이왕이면 우리 이웃을 그리는 우리나라의 감독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