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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년 전 즈음, 박근혜 정권이 '통일대박론'을 전면에 공개했다. 재미난 일이다. 사실 지금까지, 통일을 '대박'으로 인식하고, 그 인식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펼쳤던 정권은 대부분 '쪽박'을 찼다. 생각보다 잘 안 먹힌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내지는 여러 색깔론을 적절히 활용해 정권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는 사람들이 통일대박론을 말한다. 이것은 비웃을 일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다. 매섭게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들은 이런 태세전환(경제민주화, 복지담론, 심지어 대북협상 문제까지)으로 야당을 제압한 경험이 있는 프로다. 문제는 단지 '태세전환의 프로'라는 것이고, 야당은 그마저도 안 된다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롭게 쪽박을 차고 있는 정권이기에, 단순한 '워딩:레토릭'만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2. 통일이 대박일지 쪽박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들 각자의 경향적 소망을 기반으로 한 근거로 얘기하는 것일 뿐.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던 정치경제 연구성과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예상, 계획이 아니라 기획의 범주에 속한다. 고로 통일 대박/쪽박론은 제각기의 한바탕 춤사위일 뿐.
3. 우려되는 건 '정권대박'을 위한 '통일사업추진'이다. 대부분의 정권은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대외문제에 집중한다.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 이 '업적 남기기'에 대해 정권이 느끼는(정부가 아니다. 정권) 압박과 부담은 민간/일반이 생각하는 정도를 훌쩍 뛰어 넘는다. 이는 보수/진보, 우파/좌파와 관계 없는 공적 권력 특유의 속성이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 모두 마찬가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역시. 자연스런 정치력의 작동이다. 4. 다만 그게 북한을 향할 땐 문제가 다르다. 미중일러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복잡미묘한 가운데 이 작업을 진행할 여력이 한국에겐 없다. 한국의 여력은 한국의 구상과 실력으로부터 나온다. 허나 현 정권의 드레스덴 구상이나 mb의 비핵3000이나 작동할 가능성이 자체가 전무한 국제환경이다. 박근혜-mb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대북정책론을 내세운 것 같지만 본질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것이므로 스스로 상황을 타개할 카드가 거의 없다. 특히 엠비가 5.24조치를 그대로 두고 청와대를 떠남으로 박근혜의 대북 정책 관련 손발은 그대로 묶여 버렸다(나는 개인적으로, 박근혜가 임기 종료 전 5.24조치를 해제하고 청와대를 떠나는 정도가, 현 정권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대북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년, 한국의 대외전략/대북전략은 국제정세의 변동에 '편승'하는 수준에 그쳐 왔다. 그것은 수동/피동이므로 '구상'이 아니다.
5. 이 지점이 아슬아슬한 것. 전반적인 구상도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업적을 향해 돌진할 확률이 높다는 것. 사례를 들어보자. 현 정권 초대 통일부장관을 역임했던 류길재 전 장관은 퇴임 첫 날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은 군 출신 안보라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이 보도가 나가고, 북한은 그대로 류길재 장관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장관이 그게 할 소리라며 어쩌고 저쩌고). 많은 이들이 류길재 전 장관의 그런 발언을 비겁하다고 여겼다. 장관 정도면 자리 운운하지 않고 자기 뜻을 펼치다가 잘리든지 추진하든지 할 강단은 있어야 하는 것. 상황만 기다리는 방식은 맞지 않다. 그건 장관이 가져야 할 업무 태도가 아니다. 정무직을 뽑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말이다. 장관이 저런 수동적 자세를 가진다는 건 정권의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구상을 구성할 구조가 아니다.
6. 게다가 '대북강경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주요 안보라인에 자리 잡고 있다. 김장수는 재중대사가 됐고, 현 통일부 장관은 류길재 전 장관보다 북한에 대해 강고한 입장을 가진 홍용표다. 이게 또 위험한 지점이다. 정권대박을 고려하는 이들과 이 안보라인들이 깊숙하게 협업하지 못할 확률이 낮다. 외교안보에서 긴밀한 협의/협업이 지속되지 못하면, 똥줄 타는 그 현장을 장악할 수 없고 어쩌다 저쩌다 이러다저러다보니 같은 어설프고 몽롱한 판단이 누적되기 마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분주하게 외교부-통일부-국방부와 치고 박고 하며 전략을 확보해 나간(그것이 때론 어설펐다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와는 급이 다르다. 이런 저급한 수준으로 국내의 지지를 담보/추동받을 수 없는 건 당연한 노릇. 그러면 어떻게 되나. 무리하게 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전략과 구상 없이, 전술과 단판만이 가득한 외교안보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확률이 점증하고 있단 뜻이다. 7. 9월 3일은 중국의 전승기념 70주년이다. 김정은이 중국에 가니마니를 두고 설왕설래 중. 최근 김정은의 유화적 친중 발언과 열흘 전 시진핑의 연변/장춘 방문으로 북중 관계의 회복에 대해 우리는 '추정, 추론'하기 정신 없다. 중국이 동냥하듯 던져주는 정보나 한국이 애써 얻은 첩보들로 정황 판단 하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지난 3년, 한국은 동북아 무대에서 상당한 지분을 잃었다. 미중일러의 고도방정식 앞에서 헤매고 헤맸다. 지금 시점에서 기획할 수 있는 건 얄팍한 깜짝쇼에 불과할 것이다.
8. 여튼 대박을 외치면서 쉴 새 없이 쪽박을 찼던 지난 몇 년이 무리수를 일으킬 동력으로 슬그머니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대박/쪽박적에 대한 대안/대항적 담론과 실력을 확보한 정치세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남은 임기의 대북정책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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