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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 마음 잊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가는 청춘이란다.
아실런가? <빨간 마후라>, 보라매들을
쎄가 빠지게 돌리다가 부르게 하는 군가다. 보라매는 공군사관학교 생도를 말한다. 내 어린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수진이에게,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는, 되지 않을 사설로 윙크를 대신한 적이 있다.
수지니는 사람 손때 묻혀 키운 매, 날지니는 야생 매이고, 해동청은 수지니 중에서 푸른 깃털을 가진 매, 그리고 보라매는 새끼를
빼앗아 키운 매를 말한다고 한다.
공군사관 생도, 보라매는 어린시절 바라보기에 참 멋진 꽃청춘이었다. 골목에 나대던 떠꺼머리들이 따라들 불렀으니 말이다. 멋있었던 거다.
보라매처럼 빨간 마후라로 휘몰이로 댕기다 보면 알다시피 남겨진 밥이 없게 마련이다. 밥때를 맞춰 들어 오지 않은 건 혼구녕이 날 죄였다. 밖에선 창공을
날던 떠꺼머리 보라매는 살금살금 걷는 살찌니가 된다. 살찌니는 암팡지기 전 고양이를 이르는 말이다. 혹 밥을 건너 뛰더라도 조심스레 들키지 말고 들어가 자야 했다. 할마니에게
들키면 그 불똥이 엄마, 아니 며느리에게 튀기 마련이어서 납작 엎드리는 게 마땅한, 나름대로 효도의 한 형식이었다.
드나는 고샅부터 발걸음을 죽였으니, 울바자에 꽂힌 노란 봉투가 보였어도
모른 척해야 했다. 보라매 꽃청춘을 흉내 낸 댓가였다.
잠이 깬 건 수런스러워서였다. 아버지가 오셨나? 짐작하며 안방으로 갈 기회를 잡아 보려 했다. 배가 고파서였다.
아버지가 들어 오신 게 아니었다. 내가 안방으로 가기 전 할머니가 손주들이 자는 우리방으로 건너 왔으니 말이다. 웬 일인가? 사돈 댁, 그러니까 며느리 친정붙이가 소식을 전하러 온 터였다.
큰외숙이 오는 건 으레 낮이였다. 시앗에게서 본 망아지
같은 바깥 누나를 우리 집에 맡겨 두고 갔을 때도 그랬다. 할머니는 자리를 피했고 엄마는 육곳간에 쇠고기 한칼을 끊어다 간장조림을 해 쌀밥을 올렸었다.
개다리소반 앞에 고개를 쳐 받쳐든 나는, 큰 외숙이 이홉들이 소주를 비우는 동안 조림 간장에 흰밥을 비벼 먹을 입다심에 놀러 가자는 아이들
목소리도 외면했다. 엄마의 눈치가 무서웠으나 알 바가 아니었다. 맛있는
흰밥에 소고기 조림간장이라니…
그날은 외사촌 형님이 왔다. 난 아지 못하는 엄마 친적 그 누가 돌아 가신 것이겠다. 오후 나절을 버스 집어 타고 걸어 와 늦었으니 우리집에서
자고 내일 또 다른 일가붙이에게 가는 일정 중이었으리라. 나는 배를 채워 넣을 수 있어 좋았다.
여느 외날 썰매를 타거나 한 겨울 날에는 집에 들어 오면 아랫목에 언 발을 넣어 녹이곤 했다. 그러다간 이불 밑 밥주발을 엎곤 하게 되었다. 거기엔 꼭 두 그릇이 있었다. 어쨌든 엎어버린 밥그릇을 들키지 않게 되돌려 놓아야 했다. 엎어 이불에 뭉개진 밥을 주어 담았으니 오죽했으랴? 아버지가 오셔서 그걸 드실까봐 마음 한켠이 묵지근 했지만 들켜서 혼나는 것보다는 나았다.
엄마가 아랫목 이불 밑에 밥 두 그릇을 장만해 두는 이유는 간단했다.
친정붙이가 소식을 전하러 왔을 때 <나 아직 밥먹고 사니 너무
걱정 말라> 같은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식구들은 밀가루 것으로 저녁을 떼웠어도 이불 밑에는 반드시 쌀밥 두 그릇을 쟁여 놓아야 했다. 첫닭 울때 깨서 계양산 아래 역골 마을을 출발해 부평역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역 코스모스백화점 자리에 있던 학교로 통학하던 소싯적 그 자존심이 붙잡은 아우성이라 짐작한다.
이제 내 마음 속 아랫목엔 어머니를 대신해 세 그릇의 밥주발을 마련해 두려 한다.
새벽에 좇아 나가 빈거리를 다 헤매었을 그이를 기리며… 아직 그이의
부고를 담은 노란 봉투는 나는 받지 못했지만… 해동청 시절의 당신을 놓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추신: 아래는 1935년 당시, 그이처럼 늘 아파하던 이가 써 놓은 ...
신간 잡지의 표지와 같이 신선한 여인들, 넥타이와 동갑인 신사들 그리고
창백한 여러 친구들,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고향, 도회에 내
나체의 말씀을 번안하여 보내주고 싶습니다. 성경을 채자(採字) 하다가 엎질러버린 인쇄직공이 아무렇게나 주워담은 지리멸렬한 활자의 꿈…. 밤의
슬픈 공기를 원고지 위에 깔고 창백한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부고도 동봉하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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