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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차린 건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나는 순간 죽음의 공포에 떨며 “살려 달라” 악을 쓰며 어머니의 품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내 어머니는
기절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자살 준비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앉아 있던
곳엔 명함에 또박또박 쓴 유서가 발견되었다. 뱃사공이 어쩌지 못하도록 술까지 먹여 놓았다. 아버지는 원래 술을 못했다. 강물은 잔잔하고 갈 길도 급하지 않으니
한 잔 하라며 본인은 한 모금도 들지 않고 사공에게만 권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어른 키로
스무 네 길이라는 호수 한가운데에 몸을 던진 것이다.
일행은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에 배를 대었다. 시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그 여름, 달은 유난히 밝은데 하루 종일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어머니는 밤만 되면 유령같이 일어나 나를 깨워 강가로 달려가려고 했다. 다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주장임 의지였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기미만 보이면 소리쳐서 사람들을 깨웠다.
일주일을 사람들을 동원해 시체를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지니고 있던
패물도 동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춘천으로 돌아왔다.
춘천에 돌아오자 무서운 공습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춘천 시내 중심에
있어서 폭격이 더욱 심했다. B29기가 슬슬 정찰을 하고 가면 영락없이 쌕쌕이라고 부르는 제트기가 날아와
폭탄을 퍼부었다. 우리는 급하면 두꺼운 솜이불을 둘러쓰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방공호로 피신하였다. 파편이 솜을 뚫지 못한다고 하여 유탄에 맞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중략)
그 즈음 청평 솔이 마을에서 아버지와 동생들의 시체를 찾았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어리다며 집에 남겨지고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이 시체를 수습하러 갔다. 사흘 만에 돌아온 어머니 얼굴은
흙빛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아서 한동안 궁금증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뒤로 들은 얘기로는 시체 네 구가 서로 꼭 붙어서 처음 출발한 솔이 마을로 떠왔다고 하였다. 물에 빠져 죽은 남자 시체는 엎어져 있고 여자 시체는 반듯이 누워서 떠오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갓난 막내 여동생을 겨드랑이에 끼고 엎어져 있고 두 여동생은 아버지 양옆에 나란히 누워서 네 식구가
고스란히 함께 떠왔다며 동네 사람들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갓난 동생은 막 잠이 든 듯 평화스러운 얼굴이고 나이가 많을수록 부패가 심하였다고 하였다. 어른들은 경황이 없어 물가에 가매장을 하고 돌아왔다.
현암사 간, 오늘이 역사다. 정옥자 19 ~ 23 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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