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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문예학자 발터 옌스와 신학자 한스 큉은 학교 대강당에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공동 강의를 하며, 그 후 같은 대학 동료 법학자, 의학자들을 초청하여 공개 토론회를 연다. 그리고 당시 법무장관과 논쟁을 하기도 하며 그 일련의 성찰을 담은 책을1995년에 출간한다. 책의 표지에는 제목보다도 크게 인쇄된 두 학자의 이름과, 누가 봐도 노인이라고 여길 만한 그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두 사람의 관점은 서양의 근대를 있게 한 사상적 배경 위에 서 있다. 바로 주체적이고 독립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와는 관계가 없다. 신학자 한스 큉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신의 선물이지만, 동시에 신의 뜻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우리 자신의 책임 있는 처리에 맡겨져 있다. 삶의 최종 단계인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락사는 최종적 삶을 돕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 책의 증보판이 나오는 2009년, 발터 옌스는 치매의 수렁에 빠져 있다. 혈관 장애로 인한 치매인데, 아마 한스 큉도 발터 옌스도 그들이 1994년 사회 각 분야 지성들의 심도 있는 관심을 촉구하며 안락사 논의를 펼치고 책으로 냈을 때, 이와 같은 상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증보판 책에는 발터 옌스의 아내 잉애 옌스의 글도 실려 있는데,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아내에게 자주 “끔찍하다, 죽고 싶다”고 말한 모양이다. 잉애 옌스는 이렇게 말한다: 서글프고, 부끄럽고, 소외되고, 절망적인 상태! 이런 말들이 내 남편의 현재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처음 책을 낼 때 발터 옌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치의 막스 슈르에 대해 얘기한다. 그에 의하면, 말년에 질병으로 큰 고통을 받았던 프로이트의 주치의 막스 슈르는 프로이트 본인의 뜻에 따라 다량의 모르핀을 투여하여 더 고통을 받지 않고 삶을 마감하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이제 끝이구나 하고 쉽게 인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고통의 수렁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투병하며 맞섰지만 턱 부근에 암종이 발견되자 막스 슈르에게 자신을 고통 속에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발터 옌스는 프로이트의 사례를 얘기하면서, 막스 슈르처럼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의사들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치매의 수렁에 빠져 있는 그의 옆에는 그런 의사가 없었던 모양이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앞장서 촉구한 그의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언급한 책은 <안락사 논쟁의 새 지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 후 발터 옌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발터 옌스는 1923년생이고, 한스 큉은 1928년생이다. 우리나라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논의가 빈곤한 편인데, 2009년 대법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아마도 논란을 우려하여) 안락사, 존엄사 등의 단어는 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저것 알아갈수록 안락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점점 더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답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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