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다가 잠시 생각이 나서...
정신분석을 전공했고 자기비판이 철저한, 그리고 내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한 말. “의사는 과학자가 아니다. 뭐 굳이 말하자면 artist 쯤 되지 않을까?”
그분의 말은 좀 과장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의학에는 과학(science)의 영역과 기술(skill) 또는 예술(art)의 영역이 있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에는 생리학, 해부학, 약리학, 유전학 뭐 이런 것이 포함될 것이다. 사실 의학에서 “과학”이라고 부를만한 영역은 의학의 고유한 또는 하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독자적인 기초과학 영역이다. 실제로 의과대학 교수들 중에는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래서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왕왕 있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기초과학자들이다. 환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관한 일반법칙의 발견을 추구하고, 이를 "글"로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의 영역은 글을 통해 온전하게 전달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식을 온전하게 문서화, 수량화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또는 예술의 영역에서는 감각, 직관, 운동기술 뭐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기술 또는 예술의 영역은 대단히 다양한 개인차가 존재하는 개별 현상에 대한 이해와 해결을 추구한다. 이 기술과 예술의 영역은 글과 숫자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손에서 손으로 전수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만약에 의학이 과학이라면 글을 통해 온전하게 전달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임상실습이라는 것이 불필요하다. 의대생들에게 임상실습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할 일이 과학이 아니고 기술 또는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자를 만나는 “의사”가 하는 일은 “과학”적인 연구가 아니라 (글을 통해 습득한 과학적 지식과 함께) 손에서 손으로 전수받은 기술 또는 예술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면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 또는 예술의 영역이다. 그래서 “의술”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문서화한다고 해도 그 글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만으로 체조선수들이 하는 공중회전을 할 수 없고, 500년 전의 명품 도자기를 재현할 수 없고, 맹장수술을 할 수 없다.
뭐, 이건 걍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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