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소나타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주쯔칭(朱自淸, 1898-1948) 그해 겨울 나는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고향에 갔다. 아버지는 실직 상태셨고 집안살림은 엉망이었다. 집안 물건들을 팔거나 저당을 잡혀 아버지의 빚은 갚을 수 있었으나, 할머니의 장례를 위해 다시 빚을 져야만 했다. 아버지는 일을 구하기 위해 난징으로, 그리고 나는 공부를 마치기 위해 다시 뻬이징으로 돌아 가야 했다. 아버지와 나는 난징까지 동행하였다. 난징에서 나는 친구를 만나 시내구경을 하며 하루 더 머물렀다. 다음날 역에 나가는 나를 위해 아버지는 여관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에게 나를 동행토록 부탁을 하였다. 아버지는 그 심부름꾼에게 몇번인가 귀찮을 정도로 신신 당부하다 결국 마음이 안 놓였던지 당신이 직접 따라 나서게 되었다. 아버지는 기찻간까지 따라 올라와 차문 쪽으로 자리를 잡아 주었다. 나는 그 위에다 아버지가 준 자주색 외투를 깔았다. 아버지는 기차창문 밖을 둘러 보더니 "귤이라도 좀 사 올테니 넌 여기 앉아 있거라. 절대 어디가지 말고." 라고 말하셨다. 건너편 플랫폼 너머 몇몇 노점상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건너편 플랫폼까지 가려면 철길을 건너야 하고 플랫폼의 벽을 또 오르내려야 했다. 뚱뚱한 아버지가 갔다오기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마고자에 남색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뒤뚱뒤뚱 철길위를 걸어 갔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천천히 플랫폼을 내려 갔다. 아버지는 플랫폼 벽 윗면의 바닥을 두 손으로 잡으며, 두 다리를 위에 걸치려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중심을 잃고 뚱뚱한 몸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순식간에 나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 <略, 출처-사면낭가 블로그>
대통령은 3일 전부터 전 안기부 마크맨 이화춘을 찾으셨다고 했다. 왜? 새로운 마크맨들이 보였고 위협을 느끼셨던 거다. 아주 짧게 스친 망념이다. 그저 번뇌. 그리고 아버지(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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