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자 경향신문에 [5·16 쿠데타 50주년]“박정희 시대 산업화, 역사의 연속이지 신화 아니다” 라는 기사가 있었다. 이 기사는 박정희 시대 산업화에 대해 진보진영 두 학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대담을 나눈 것인데...
거기서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정희 경제성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박명림 = 박정희 시기 산업화에 대해 인정한다. 다만 너무 신화화되고 과대평가됐다. 객관성을 위해 세 가지 비교준거를 들겠다. 먼저 박정희 시기와 유사한 초기 산업화를 이뤘던 나라들과 비교할 때 박정희 정부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50년대 북한의 산업화와 비교해도 경제지표만으로는 박정희 시기가 특별히 우월하진 않다. 끝으로 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그 단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박정희 정부 못지않은 경제적 성취를 보여줬다. 종전 및 한·미동맹으로 인한 전쟁재발 가능성 종식과 국가역량의 국내발전에 집중할 여건의 도래, 토지개혁 성공으로 인한 산업화 저항세력으로서의 지주계층 몰락, 학교·학생·언론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교육기적과 국민교육 등 이른바 ‘산업화의 가능 조건들’은 전부 이승만 정부에서 이뤄졌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란 것에 대해 민주당등 야당 성향 지식인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위 박명림 교수의 견해는 아마 야당 성향 지식인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1990년 대학에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위 박명림 교수의 얘기와 비슷한 것을 정말 많이 들었다. "한강의 기적"이란 애초 거짓말이고, 있었더라도 박정희가 잘해서는 아니다. 뭐 그런 얘기... 그러면서... 그 증거로 제시했던 것이 바로 아래의 세 가지 논리이다.
1. 우리나라만 잘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 대만,싱가폴등이 더 잘 했다. 2. 북한의 경제성장이 박정희 보다 더 나았다 :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 산다. 3. 박정희는 숟가락만 얹은 거고, 계획은 이승만, 장면등이 다 세웠던 거다.
그리고, 20년 전 들었던 얘기와 지금 박명림 교수의 얘기는 거의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상상을 한 번 해 보자. 내년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현 민주당 대표 손학규가 붙었다고 치고... TV로 생중계되는 토론회에서... 경제성장의 방법을 놓고 두 사람간 설전이 붙었다 하자.
사회자 : 이제 경제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되신다면, 한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 건지 그 비전에 대해 박근혜 의원님부터 말씀해 보시죠.
박근혜 : 과거 울 아빠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지 않았습니까? 저를 찍어주시면 울 아빠처럼 경제를 살릴께요. 여러분 박정희 믿으시죠? "제 2의 한강의 기적" 제가 이루겠습니다.
손학규 : 잠깐만요. 박근혜 의원이 한강의 기적 운운하는데... 사실 한강의 기적은 없었습니다. 있었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한 건 아니죠. 한강의 기적은 왜곡된 것입니다.
박근혜 : 무슨 말씀이세요? 감히 울 아빠를 욕 보이는 건가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망발을 일삼으시는 거죠? 그 말씀에 책임질 수 있나요?
손학규 : 예. 그건 말이죠. 왜 한강의 기적이란 새빨간 거짓말이냐 하면 말이지요....
그러고선... 위 박명림 교수가 말한 바 있고, 20년전 내가 배웠던 한강의 기적에 대한 세가지 비판을 써 먹게 될 거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그러나, 위 세가지 논거를 대는 순간... 필패는 불을 보듯 명확해 진다. 왜냐하면... 위 세 가지 논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치명적 약점을 박근혜 쪽이라고 모를 리 없고... 그걸로 반격하는 순간... 손학규는 더는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럼 그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하나씩 알아 보도록 하자.
1. 우리나라만 잘 한 게 아니다 : 대만,싱가폴이 더 잘 했다.
박명림 교수는 말한다. "박정희 시기와 유사한 초기 산업화를 이뤘던 나라들과 비교할 때 박정희 정부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는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진술이다. 게다가 큰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진술이기도 하다. 문제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① 60년대 초기 산업화 국가는 이후 모두 성공적인 성장을 기록했나?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초기 산업화 국가 중 70년대 이후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한 나라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대만, 홍콩, 싱가폴등 극히 예외적인 사례인 거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상태였던 후진국들이 다수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1950년대~60년대 이 들 나라는 경쟁적으로 1차 산업 일변도의 산업 구조를 2차 산업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나라만 노력했던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런 60년대 초 초기 산업화 국가로는... 북한,인도,동유럽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부터... 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등 동남아 각국에다가...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등 남미권에다가... 이집트, 리비아,가나등 아프리카권 나라까지... 전세계 거의 100여개국 이상의 이른바 신생 후발주자들이...모두 같은 목표, 즉 "산업화,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었지만...
대개는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보단...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걸었다. 70년대~80년대 동안엔 부자 나라는 더욱 부유해진 반면, 가난한 나라는 더욱 가난해졌고... 가난한 나라 중 계속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예외적 행보를 보인 나라는 딱 네 나라 밖에 없었는데... 그게 바로 "아시아의 4룡", 즉 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폴 이었던 거다.
100여개 중 단 4개만 성공했음에도... "두드러진 성과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
지금 우리가 우습게 알고 있는 필리핀,태국등의 나라가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았고... 그렇다고 개네들은 경제성장 관심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뿐 이라는 거다.
"한강의 기적"이란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었고, 우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② 그래도 대만,싱가폴,홍콩보단 못 했다. 그러니 못한 거다.
이렇게 말하면... 심각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결론이... "박정희가 더 심하게 독재 했어야 한다"라고 나오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일단, 홍콩은 제외하자. 여긴 소규모 도시국가로써, 특이한 케이스니깐... 리히텐슈타인이 1인당 GDP 6만불로 세계 최고지만, 리히텐슈타인 닮자 얘긴 안 하니까 말이다.
현재, 대만이 2008년 기준 3만2천불, 싱가폴이 약 4만불 정도 된다. 1인당 GDP가... 그래서,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만이나 싱가폴 보다도 못 사는데... 박정희가 잘 하긴 개뿔. 우리도 대만처럼, 싱가폴처럼 했어야 하는데..."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진보진영에서 이런 얘기 하는 것처럼 정말 덜 떨어지고... 얼빠진 소리가 없다. 왜냐하면... 대만과 싱가폴은 박정희 보다도 훨씬 더 한 "반공독재"를 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에선 이광요가 26년간 장기집권을 했고... 물론 1당 독재고... 지금은 장남 이승룡(리센룽)이가 대를 이어 잘 해 먹고 있다. 이런데... 싱가폴처럼?
대만도 장개석이랑 국민당이 무려 40년간 철권통치를 한 나라다. 1992년 대통을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바뀌었고... 민진당 진수편(천수이벤)으로 잠깐 정권교체 됐다가... 지금은 다시 국민당 마잉주가 먹고 있고... 천수이벤은 감옥 가 있는... 우리나라 보다 여전히 덜 민주적인 나라가 대만인데... 그런 대만을 본 받자고?
그러니깐... 한강의 기적을 부정하기 위해... 대만,싱가폴을 운운하게 되면... "그래요. 대만, 싱가폴처럼 더 강력한 독재를 했어야 했는데 박정희가 맘이 약해서 야당인사 좀 봐 주고 하다 보니... 김대중이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 우리가 대만, 싱가폴보다도 못 살고 있는 거지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다.
이제...대만 운운이 왜 심각한 함정이 빠지는 일인지 이해 했으리라 믿는다.
2.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 했다 :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 산다
20년전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훨 잘 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북한인민은 "무상보육에 무상교육에 무상의료에 집도 무상이고... 하나도 걱정할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산다." 뭐 이런 얘기들...
인터넷이 발달되고, 북한에 직접 가 본 사람들이 생기고 하면서... 이제 이런 말은 잘 못 듣게 됐다. 뭐 아직도 그런 시대에 떨어진 얘기 하는 사람 있긴 하더라만은...
내가 실제 북한에 다녀온 사람에게 들은 우스개 소리가 있다.
"북한 잘 살 더라. 초등학교 얘들이 다 무상으로 악기 교육을 받더라고. 자기 적성에 따라 바이올린도 배우고, 플룻도 배우고... 그런데, 약간 문제가... 학교에 바이올린이랑 플룻이 없더라구... 북한 참 살기 좋더라. 동네마다 다 병원이 하나씩 있고, 또 공짜야. 누구나 아픈 사람 무료로 다 치료 받을 수 있더라고... 그런데, 약간 문제가... 병원에 약이 없어."
뭐 이 정도로...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 산다... 이런 얘긴 종식하기로 하자. 하구...
1950년대, 그리고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나 뭐 이런 각종 경제지표가 우리보다 훨씬 좋았다. 분명히... 그건 인정해야 될 거구...
다만, 문제는... 북한의 경제성장이란 게 어느 순간 멈춰질 수 밖에 없는 한계란 게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1950년대 가장 빠른 성장을 나타낸 나라는 소련이었다는 사실을 말한 바도 있는데... 이게 바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혹은 계획경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란 거다.
많이 뒤처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따라 잡을 때에는 명확한 목표와 또 명확한 방법이 있다. 따라서, 중앙에서 계획해서 자원을 집중하고... 열심히 감독하고 매질하다 보면... 빠른 속도로 앞선 자와 격차를 줄이는 게 가능하구... 그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은 그 방법이 사용 불가능해 진다. 중앙의 계획에 의해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니깐... 모방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창조는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는 분명히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거다.
이게 소련등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1970년대 이후 한계에 부딪힌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주의가 결국 붕괴된 이유이기도 하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하고... 북한이 지지리 못 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북한과 비교 운운도 우스운 얘기인거고...
3. 박정희 무임승차론 : 계획은 이승만, 장면등이 다 세웠다.
또 하는 얘기가... 박정희는 그냥 장면 정부에서 세워 놓았던 계획을 그대로 카피해서 따라한 거구... 그러니 박정희의 공은 아니지... 뭐 그런 얘기다.
근데...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획은 계획이고 실천은 실천이니... 100% 모방했다 하더라도 실천한 데 따른 공이 없다 할 순 없는 것이구... 또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장면 것의 모방이라 하더라도... 2차,3차... 나중에 중화학공업화 이런 것까지 모방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니만큼...
논리가 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 탈취하지 않았으면... 장면정부등이 박정희 보다 더 뛰어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을 거다...는 얘기도 하던데... 이건 사실 나도 많이 동감하지만... 박근혜는 이 말 한 마디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되는 약점 또한 존재한다.
"역사엔 "만약에"란 말은 없다"
토론이란... 나와 토론하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와 상대방 사이의 토론을 듣고 있는 제 삼자를 내 의견에 동조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즉, 박근혜와 손학규간의 토론에서 토론의 목적은 시청자(=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가 박약하고, 실제 사실과도 많이 거리가 있고, 결정적으로 반격 당하기 딱 좋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져온 위 세 가지 논거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늘 느끼는 문제지만... 우리 진영은... 우리 야당 성향의 지식인들은... 경제에 너무 약하다. 경제학에 대해서 더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4. 결론 : 그래도 박정희는 비판 받아야 한다.
박정희에 대한 기존 비판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어째 박정희가 잘 했다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그렇지 않다. 한강의 기적은 분명히 있었고... 이에 박정희의 공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박정희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격의 여지가 많고...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20년 된 비판방법은 극복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고... 전통적 비판방법 말고... 다르게 비판하면 되니깐 말이지.
그 다르게 비판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또 내가 생각해 놓은 "박정희를 비판하는 방법"이 몇 개 있다. 다만... 시간 관계상 +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예전에 서프에 썼었던 박정희 비판글 두 가지가 있는데... 내용이 괜찮다. (재탕)하려하니... 보신 분들한텐 조금 미안한데... 뭐... 즐감하시길 바란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