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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연극은 마음닦는 수행을 함에 있어서 그 우열을 가리기가 좀처럼 힘들 뿐더러, 속세의 어느 직업군도 이를 대적할 자 없는 것으로 들어왔다.
짤방의 바둑판은 일전에 백제사진박물관에서 만난 피안 기자한테 어렵사리 빌려논 아주 귀한 바둑판이다.
보시다시피 바둑판은 여자줄 19개, 남자줄 19개로 짜여져 있다. 이 남자줄과 여자줄이 교접하는 교차점에 바둑알이라는 것을 놓는 것이다. 왜 놓는가. 심심해서이다. 그건 마치 결혼은 왜 하는가 물어보는 것과 같은 쓸데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비아냥을 잠재우기 위해 바둑판의 한가운데 지점에 천원(not 千圓 but 天元 )이라는 씁쓸쌉쌀한 이정표를 붙여놨다. 그리고 장안의 유명한 예술가 점쟁이 사이비종교인들까지 동원하는 기민함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려내던 중, 우주의 중심 우주의 숨구멍 우주의 기원 무극태극 진아(사람이름 아님)라는 둥 온갖 사기협잡의 샘물이 여기를 거슬러 시작하도록 이바지했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아주 일부의 짱꿔 민족주의자들 포함 동아시아의 합리적 인물들이 분서갱유 속에 이를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석가의 육도윤회가 동방삭 육십갑자를 만나 360일 동안 하릴없이 뒤엉켜 노는 중에도, 우리동네에선 담배연기맛 때문에 기원에서 죽때리는 얼간이 놈들만 북적됐다. 갸들 덕분에 내 봄날도 새됐지만.
한 때 중원의 바둑계에 조서전쟁으로 불리웠던 연극시나리오는, 군부독재에 맞서싸웠던 친구들을 알고만 지냈다는 것을 대단무쌍한 자랑으로 삼던 남다른 친구들조차 열광케했다, 어느 짙은 여름날 애꿎은 까라스끼야를 일거에 케이오우패 시킨 홍수환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동네기원의 선풍기를 냅다들어 메쳤을때는 말 그대로 오르내르가즘 그 자체였었다.
조훈현에 비하면 서봉수는 촌사람이었다. 그래도 둘은 도시나기와 촌놈을 대표하듯 아니면 독재에 신음하던 민주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라도 하듯 매사 쌍심지를 켜고 서로 대들었다. 바둑보다 연극을 더 좋아하는 척 했던 친구놈들은 낄낄대며 이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보다 연극을 더 사랑하는 편이었기에, 조훈현의 성냥개비 부러뜨리기나 신음소리내기 서봉수의 선굵은 주름 앞에 오히려 옷깃을 더 여며야했다.
주연같은 조연들을 더 아꼈던 난, 극단(?)중에서 가장 연기력있던 선배가 대뜸 나서서 모든 년놈의새끼들이 발빼던 시체역할을 그것도 거적마리에 싸여 등장하는 1회성 초단역을 맡았을 때 바로 그 순간, 어느덧 촌놈 서봉수의 바둑을 더 사모하기 시작했었다. 서봉수와 조훈현을 지나 이창호가 동양3국지 바둑을 원위치 시키고 나서야 우리의 정치연극무대에도 김대중 노무현 같은 천재들이 겨우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 질문을 끝으로 이 연극도 그 1막을 내리겠다.
노무현은 서봉수인가 이창호인가?
(조훈현은 섭섭해하지 마시라. 서봉수보다 사진발 더 잘 나온 것 대신 걸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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