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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쓰지 못하고 미루어 두었던 휴가를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쓸 수 있게 됐다. 목적지는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도시 피렌체. 부드럽게 흐르는 능선들 사이로 목이 긴 나무들과 황갈색의 지붕을 얹은 마을이 떠오르는 토스카나지방의 중심도시이고 르네상스가 태어나고 꽃을 피운 문화의 도시다. 사실 오랫동안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곳은 도시 피렌체이기보단 토스카나지방 그 자체였는데 짧은 여정에 끼워 맞추기엔 무리일 수밖에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했다. 글재주도 없고 여행기를 쓰는 건 더욱이 처음이라 그냥 지난 한 주 보고, 듣고, 읽고, 걷고, 또 걷고 나서 아직 기억에 남은 것들을 봉팔러들에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
피렌체의 상징, 아이리스
떠나기 전에 궁금했던 건 피렌체라는 도시이름이었다. 영어 이름으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하는데 어떤 책에서는 플로렌시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해서 처음엔 플로렌스 - 플로렌시아 - 피렌체 라는 세 이름이 같은 도시인지조차도 헷갈렸었다. 공항에서 'Aeroporto di Firenze'라는 게시판을 보곤 이제부턴 피렌체가 좋겠군 싶었다. 택시 아저씨한테 발음교정을 부탁하니 '휘렌쯔에'라고 '쩨'도 '쯔'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서 화해하는 것 같았다.
피렌체 공항
피렌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몇 가지가 있는데 라틴어 Fluentia(나중에 Florentia로 변형됨, 뜻은 '계곡 사이'로 도시가 계곡 사이에 형성되었기 때문에)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역시 라틴어 Florents(풍요로운 땅의 의미가 있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건 내 생각인데 Fluentia가 로마제국의 술라(기원전 80년경)가 도시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그 유래를 찾지만, Florents는 그 이전인 에트루리아인(기원전 150년경, 이때에는 토스카나 지방은 에트루리아인들의 땅이라고 여겨졌음)들이 도시의 기초를 세웠고 그 후 로마의 지배하로 편입되었다고 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후자의 설명이 더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카틸리나의 역모 사건(기원전 63년)에서 카틸리나의 군사적 기반은 술라시대에 이 지역에 배치된 퇴역군인들이었다고 하는데 이 퇴역군인들이 에투루리아인들이 세운 피렌체를 로마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중세에 들어 피렌체는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는데 특히 금융과 교역에서 창출한 부를 기반으로 이후 르네상스를 주도하게 된다. 이 시대의 웬만한 작가, 화가, 조각가, 종교인들과 정치인까지도 피렌체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도시는 한때 가장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의 중심지였고 피렌체는 중세의 아테네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다.
산타마리아 성당 돔에 올라가서 찍은 피렌체 전경
피렌체의 중심에는 산타 마리아 대 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 있다. 다른 이름으로 두오모(Il Duomo) 성당이라고 불리는 데 판테온 이후 가장 큰 돔 양식 건축으로 유명하다. 이 돔은 피렌체 출신의 필리포 부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라는 건축가가 설계하고 건축했는데 완공까지 총 14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움과 크기에서 이후 르네상스 돔 건축의 모델이 되었고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성 페드로 성당의 돔 건축을 부탁받았을 때 "I'll make its sister...bigger, but not more beautiful"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돔으로 오르면 피렌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463개의 좁다란 계단을 헐떡이며 올라온 보상으로 모자람이 없다.
산타 마리아 대 성당 (전부 흰색, 초록색, 분홍색 대리석으로 감쌌음)
돔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돔의 안쪽 천장 그림은 최후의 심판
성당 옆에 지어진 지오토(Giotto)의 켐페넬리(종탑)
그리고 세례당(Baptistery)
성당 내부
성당 내부 바닥 장식. 누구 오빠인 건지?
제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더라도 시장만큼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곳이 있을까? 도시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시장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산로렌조 시장(San Lorenzo Market)이 산타 마리아 대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돔에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땀을 흘렸더니 뭔가 요깃거리도 궁금해져서 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 로렌조 마켓
피렌체는 옛날부터 훌륭한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시장은 가죽제품을 특화상품화 한 것 같다. 70% 이상이 가죽제품을 팔고 있고 가격도 착한 편이다. 듣기론 가죽은 주로 남아메리카에서 수입해서 피렌체 인근에서 가공된다고 한다. 또 특이한 것은 가죽제품을 파는 대부분 상점주인은 이란계 이민자들이라는 점이다. 왜 이란인들이 시장을 접수하게 됐는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말이 짧아서리...
산 로렌조 마켓에 바로 인접한 중앙 시장(Mercato Centrale)
인도어(Indoor) 시장으로 실제 장을 보러 나 온 지역인들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구석구석 우리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정육점, 생선가게, 야채가게, 반찬가게들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시장 한쪽엔 간단한 먹거리들도 팔고 작은 식당들도 있는데 그 중 이 식당이 단연 눈에 띄었다. 줄을 선 사람들이 꼬불꼬불 시장을 반 바퀴 돌고 있는데다 다른 식당에 넘쳐나던 관광객들은 가뭄에 콩 나듯 보인다. 이런 걸 진짜 '오리지날'이라 하렷다. 무조건 줄 끝을 찾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뭘 시켜먹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한 20분쯤 기다렸다가 마침내 주문 대에 이르렀는데 아는 단어가 없다. 메뉴도 모두 이탈리아어로 돼 있고...ㅜ.ㅜ 할 수 없이 줄 서 있을 때 눈팅으로 보아 둔 아티쵸크 겨우 시키고 맛보고 싶었던 호박요리, 고기 요리 입도 못 떼고 뒷사람에게 밀렸다. 어쩜 하나라도 맛본 게 행운이었지. 맛이 어땠냐고? 일주일 이탈리아에 머문 중에 맛본 음식 중 최고였다. 아주 쉽게 만든 요리 같았는데..지금 생각해 보아도 군침이...돈다.
식당은 1872년에 문을 열었다
식당 옆에서 아코디언 연주하던 할아버지. 표정이 예술.
쫌 있다 2부 쓸께..이거 생각보다 큰 작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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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