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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당하다 -
어제 1차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아내는 오늘까지도 축 늘어져서는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시들은 오렌지와도 같은 색의 얼굴을 하고는 죽도 제대로 넘기기 못했다. 얼마 지나면 머리도 빠질 것이라고 했지만 전체적으로 의사의 말은 그를 적이 안심시켰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회복 경과가 좋았기 때문에 이렇게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주 간격으로 최소한 여덟 번 방사선이 아내 몸의 소중한 세포들을 유린하도록 허용해야 할 것이었지만 아내가 죽지만 않는다면야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도수는 아내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꼈으므로 참아내는 사람도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무심했던 지금까지의 삶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쳤다. 자신에게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내에게 진정한 행복을 안겨 주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하리라 생각했다.
그가 아내의 퇴원 수속을 막 마쳤을 때 병원 원무과 앞 복도에서 큰딸 소영이 그를 불렀다.
“아빠!”
경황은 없었지만 그는 딸이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임용면접을 마치고 오는 길임을 잊지는 앉았다.
“오! 왔니? 그래 어땠어?"
딸은 힘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면접은 잘 한 것 같아. 그런데 힘들 거야.”
“왜 지레 그렇게 생각하니?”
“두 명 뽑는데 지원자가 오십 명쯤 되는 거 같아.”
“그렇다면 스물다섯 군데만 지원하면 한 군데는 되겠구나.”
“그래도 안 될 거 같아요. 다른 일이라도 시작해야 될 거 같아요.”
“무슨 소리야. 너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고 사범대까지 나왔는데 왜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해? 아빠가 실업자도 아닌데..........”
“아빠 정말 몰라서 그래?”
딸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딸은 한숨을 한번 내쉰 다음 말을 이었다.
“나를 면접한 교감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엄청 관심을 보이데. 인상이 참 좋다면서........, 정작 내 학교성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지만, 아빠 직업은 물어보더라구.........., 그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냥 회사원이라고 말했어. 미안해요. 그 사람 거의 나를 뽑을 것처럼 말하데요. 교육이 어쩌고 근무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고 하면서........ 잘 되겠구나 했어요. 그런데 정식 면접이 끝나서 나오는데 교직원이라는 여자하나가 따라 나오데요, 볼일 있어서 나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일억 이래요. 미친........”
딸의 말을 듣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세상이 이런 줄 모르고 이 나이 먹도록 가장 노릇하고 살았으니......., 알았으면 어떻게 살았어야 했으며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만약 돈이 있다면 돈을 주고 딸아이에게 교사 자리를 찾아주어야 옳은가?
“그렇구나. 세상이 다 그런가? 우선 엄마를 퇴원시키고 나중에 다시 의논해보자.”
그가 딸아이에게 분노를 눈치 채이지 않고 이렇게 얼버무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떠오르는 의문들의 답을 얻지 못한 때문이었다.
딸은 내친김에 투정을 쏟아낸다.
“원재씨 어머니는 급하다고 상견례 날짜 잡으라고 하는데......... 미치겠어.”
원재는 딸아이가 사귀는 남자다.
가부장제가 강한 집안의 외아들이고 제 3공화국 때 차관을 지냈다는 시 할아버지 될 사람이 외동 손자의 결혼을 못보고 세상을 떠날까봐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도 결국은 돈 문제라는 것을 그 자신은 물론이고 딸아이도 알고 있었다. 그는 딸의 마지막 말은 못들은 체 하고 아내가 있는 병실 쪽으로 앞서서 걸어갔다.
그의 낡은 구형 승용차에 아내와 딸을 태우고 집에 도착하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시장기를 느낀 그는 아내도 배가 고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온밥솥에 밥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집에 온 아내에게 아무거나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나다니면서 본 적이 있는 근처의 죽 집이 생각났다.
“여보, 배고프지. 내가 죽을 좀 사올게. 전복죽이 좋겠지?”
아내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힘없이 말했다.
“아파서 좋은 점도 있네요. 당신이 이럴 때도 있는 걸 보니, 개고 사람이고 집에 있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예, 소영이 데리고 나가서 저녁 사 먹이고 오시면서 전복죽 하나 사오세요. 나영이는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저녁 먹고 온대요.”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딸아이와 밥 먹느라 둘이 마주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배고픔도 달아나 버렸다.
여자가 적령기에 들었으니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데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한 일억만 떨어져 주었으면........, 어떤 방법을 쓰던 돈을 좀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송강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행에는 아직 적지 않은 빚이 있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연립주택 2층인 그의 집 국방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떨어진 철제 현관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검찰총장 송강식이었다.
그의 옆에는 운전기사가 사과 박스를 무거운 듯 들고 서 있었다.
“다행히도 집에 있었군요.”
송강식이 미소를 띤 채 말했지만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기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상자는 여기 내려놓고 나가 있게.”
“아니 총장님께서 여기까지 웬 일이십니까?”
천도수는 황송하다기 보다는 놀라웠다.
“안녕하십니까? 아주머니, 이쪽은 따님일 테고......... 문병을 왔지요. 하하하. 천 반장 나하고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좀 합시다. 부인이 아프신데 미안하지만 국가적으로 너무나 위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총장이 여기까지 왔다면 국가대사는 아니더라도 송강식에게는 매우 시급한 일일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소영아, 엄마 드실 죽은 혼자서 사다드려야겠다. 여보, 다녀오겠소.”
천도수가 말하자 그의 아내는 송강식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 걱정은 마시고 다녀오세요. 총장님께서 누추한 곳에 오셨군요.”
“소영이라고 했지? 내가 들고 온 저 사과상자는 나중에 아빠가 돌아오신 다음에 여는 것이 좋겠다.”
송강식이 나가면서 말했다.
천도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그 속에 사과가 들어있지는 않을 것임을 알았다. 기업체에서 권력자에게 뇌물을 전달할 때 사과상자에 넣어서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돈이 아닐 것은 분명했다. 검찰총장이 일개 형사반장에게 뇌물을 바칠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나오면서 딸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잘 보관해라.”
송강식의 차를 함께 타고 그들이 간 곳은 청담동에 있는 한 요정이었다. 미모의 두 여자가 송강식의 지시에 따라 양주와 안주를 세팅해 놓고 물러가자 그가 말했다.
“그 상자에 현금 2억 원이 들어있네.”
천도수는 놀랐지만 잠자코 있었다.
“나를 좀 도와주게. 솜씨 좋은 히트맨이 하나 필요해. 화내지 말고 내 말을 우선 끝까지 들어. 검찰 간부 한 사람을 칼로 찔러야 해. 내 개인이 관련된 건 사실이지만 맹세코 개인적인 감정이나 필요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요. 당연히 어떤 경우라도 내가 드러나면 안 되고, 그러니 하는 사람도 자네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 안 되겠지. 내게 그런 일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자네뿐이야. 자네가 일억을 갖고 칼잡이에게 일억을 주면 되지 않을까? 자네를 돈으로 움직이려는 건 절대로 아니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가를 위한 일이야. 자네가 도와준다면 고마워서 그냥 돈으로라도 보상을 하려는 것이지.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내가 직접이라도 꼭 해야 할 일이야. 도와줄 수 있겠소? 꼭 좀 도와주시오.”
“죽이라는 말인가요?”
“참, 그 말을 안했군. 죽이면 안 돼. 그렇지만 찔린 놈은 죽을 뻔 했다고 느껴야 돼. 피가 낭자하도록 칼로 해야 돼.”
“실수로 죽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할 수 없지. 하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고..........”
“총장님을 염탐한 사람입니까?”
“그래요. 그들 중 하나요. 천 반장 짐작대로 일은 국정원에서 했다는군.”
“그 사람이 자신이 관련자라고 시인을 했다고요? 그런데 총장님은 법으로 하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쓴다고요?”
“나를 믿게. 정말 국가를 위한일이네. 자세히 설명해야하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니라도 꼭 하실 생각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어차피 하셔야 될 일이고 그 사람이 꼭 칼을 맞아야 한다면 제가 도와드리는 게 낫지요.”
“고맙소.”
“시간은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그게 말이요. 아주 급해. 일주일? 이주일 까지는 너무 길어.”
“알겠습니다. 돈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송강식은 가죽가방에서 마닐라 봉투를 꺼내어 상대에게 내밀었다.
“그자의 사진과 신상에 관한 자료는 이 속에 있소. 그럼 나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겠소.”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본연의 권위를 회복하고 있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천도수는 그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나올 때까지 두 사람 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천도수는 일부러 돌아오는 교통수단으로 버스를 선택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의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아직 거절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런 일을 꼭 해야 할 만큼 커다란 신세를 졌거나 약점을 잡혀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타락한 적이 없었다.
그는 성동파의 독고일을 떠올렸다. 그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의 보스였지만 천도수의 손에 검거되면서 인연을 맺은 이래로 나이 두 살 위인 그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는 인물이었다. 그는 조폭으로서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합법적인 사업으로 70여명의 조직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독고일이라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며,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옳은 방법으로 살아나가려고 노력하는 전과자에게 그를 잡아넣었던 법의 집행자가 범죄 행위를 사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는 이일을 자신이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그런 생각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논리는 얼마든지 떠올랐다.
송강식은 자신이 거절하더라도 누구를 통하던 이 일을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송강식의 계획을 대상자에게 누설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 일을 맡지 않아도 결국 그 사람은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그리고 독고일의 부하나 그 누가 하더라도 실수로 죽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자신이 직접 한다면 절대로 그 대상자는 죽거나 불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이 실수로 실패하거나 잡히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대상자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한다는 논리에 도달하자 그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우나에서 그런 일이 있고난 후 한영관은 모든 행동을 조심했다. 매일 새벽에 30분 정도 삼청공원을 뛰는 것도 그만두었고, 차를 탈 때는 꼭 기사를 동반했다. 밤에는 편의점에 나가는 것도 삼갔다.
김인철에게는 A안이 힘들겠으니 대통령과 여당의원들을 움직여서 특검수사절차를 진행하는 계획인 B안을 시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평온하게 며칠이 지나자 송강식의 위협이 현실감이 없어졌고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다. 무엇보다도 20년 동안 해오던 아침운동을 못하는 것은 그의 몸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그를 꼭 해할 생각이 있는데 이렇게 기회를 안주면 집으로 침입하던가 해서 다른 식구들까지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는 평소의 생활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다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준비를 하였다. 김인철과 11명중의 하나인 경대승 앞으로 메모를 작성하여 USB에 담았다.
그 다음날 배용석을 불러서 그것을 건네면서 말했다.
“ 유사시를 위한 자료입니다. 잘 보관 하십시오.”
배용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사시?........ 거기 뭐가 있는데요?”
“지금 조용해 보이지만 우리 쪽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X파일을 빌미로 특검절차가 곧 진행될 겁니다.”
“바빠지시겠군요. 건강 잘 챙기십시오.”
“그래서 말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니 내가 혈압이 좀 있어요. 갑자기 뇌출혈이나 그런 일이 안생기라는 법도 없어요.”
배용석은 펄쩍 뛰며 말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나이라면 제가 더 많은데 죽어도 제가 먼저 죽지, 저한테 무슨 뒷일을 부탁..........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요즘 들어 자주 뒷골이 땡기는 것 같고........., 아무튼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거 열어서 거기 적혀있는 당사자에게 전해주세요. 나라에 중요한 일인데 다된 일 나 때문에 망치지 않도록 말입니다. 준비해서 나쁠 거야 없잖아요?”
배용석은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한영관은 단호한 표정을 만들어서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더는 신경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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