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으로 얻고 마음으로 응하는 곳
장자는 말한다. “말하는 자 알지 못하고, 아는 자 말하지 않는다.” 말을 부정하면 언어로 쌓아 올린 인간의 모든 성취를 부정하게 된다. 허나 말 그 너머에 있는 진실과 문화를 말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집요한 반대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나라 환공,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천하의 패자로 올라선 당대의 영웅, 그가 당(堂) 위에서 한가히 책을 읽고 있었고, 수레 만드는 장인(匠人) 윤편은 당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편이 당 위에 올라가서 물었지요.
“주군께서 읽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인들 말씀이 기록된 책이지.”
“그 성인들은 지금 살아 있습니까?”
“돌아가신 지 오래지.”
이 말을 받아 윤편이 뱉은 말이 놀랍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냥 똥찌꺼기네요”
환공은 정색을 한다.
“과인이 성현의 책을 읽는데 일개 장인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는구나. 이치에 맞는 설명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각오하라.”
이에 윤편이 작심한 듯 자기 말을 한다.
“신이 평생 해온 일은 이 바퀴를 깎는 일입죠. 허나 이런 천한 작업이라도 조금만 덜 깎으면 바퀴가 느슨하여 덜컥거리고 조금만 더 깎으면 바퀴가 되똥하여 돌아가지 않아, 참으로 알맞게 깎는 일이 어렵죠. 그 ‘알맞음’이란 것이 손맛으로 얻고 마음으로 응할 뿐 말로는 전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아들놈에게조차 가르칠 방도가 없고 그 놈이 알아들을 수도 없어, 신이 칠십 평생을 혼자 깎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옛 성인들은 모두 전해줄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죽어버린 거지요. 그러니 주군이 읽고 계시는 것이 빈 껍데기가 아닙니까?(『장자』「천도天道」)
윤편의 말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통상 말을 소통 수단으로 하지만, 핵심에 이르러서는 언어나 문자의 소통기능은 먹통이 되고 만다. 장인이 바퀴를 깎는 일이건,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건, 연인이 사랑을 하는 경우건 모두 동일하다. 핵심은 언어로 전달 안 된다!
스포츠에서도 적실한 예를 본다. 이승엽 같은 홈런타자도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스탠스며, 배트 위치이며, 임팩트며, 팔로우 스윙까지 아무리 점검하고 점검해도 평소 때 나오던 자세가 안 나온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안 된다. 손맛으로 얻고 마음으로 응할 뿐, 남이 해 주는 조언으로 해결 안 된다는 걸 안다. 오직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는, 자기만의 문제라는 걸 안다.
언어는 언저리를 건드리고 말은 주변을 맴돈다. 그 언어를 넘어서는 소통의 대안을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안에서 우러나는, 솟구치는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 손맛으로 얻고 마음으로 응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장자는 이를 일러 득어망전(得魚忘筌: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은 버려라)이라고 했으니, 통발을 쥐고 있는 자 영원히 고기 구경 못하리라.
자, 인생은 배움이다. 교육이다. 그런데 거기에 단계가 있다. 기본과정 떼고 나면 거기서부터는 정상에의 도전, 모든 연장 내려놓고 홀로 맨 몸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철저히 각자의 몫이다.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다. 깜깜한 앞길에 놓인 불확실성에 대해, 오직 자기 안에 깃든 신과의 단독 대면으로 승부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탐구의 전선에 선 과학 연구도 같다. 연구방법이나 실험기법, 공개된 거 다 있다. 앞서 나온 좋은 논문, 그대로 따라 하면 비슷하게는 간다. 흉내는 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절대 일류가 되지 못한다. 자기 손맛으로 얻고 자기 마음으로 응하는 무엇이 없으면 안 된다. 자기만의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우뚝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인간으로서 자기 아이덴티티 확립에 성공하는 것이다. 자기 목소리로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것이다.
만약 실험실 단위라면 실험실 자체의 그것이 있어야 하고, 한 학교의 단위라면 학교의 그것이 있어야 하고, 한 기업의 단위라면 기업의 그것이 있어야 한다. 한 국가 단위라면 당연히 나라의 그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의 본질이다. 각 단위마다 자체의 노하우의 축적이 있고, 시행착오의 눈물이 있고, 비인부전(非人不傳)의 전수 방식이 있고, 말로 옮기기 이전의 은은한 아우라가 번져나가고, 그래서 독특한 향을 풍기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이런 것이 있어야만 장자의 대변자, 윤편이 말하는 그 핵심이 전달될 수 있다.
살아있는 문화는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고갱이를 드러내는 배경색이 된다. 그것은 수많은 고수의 능력이 터져 나오는 기반이 된다. 인간 세상에서 새로움을 잉태하는 창조력이요, 뭇 생명을 뛰놀게 하는 숲이다. 저 백범 김구의 비원이 서린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 ‘높은 문화의 힘’이야말로 장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궁극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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