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질 글 네 개.
1. 제법무아, 실체, 속성, 사건
2. 원자론과 연기론
3. 신
4. 인과고리 추상법
중에서 세 번째 글, "신" 이다. 글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
신
대부분의
인간은 사건들 간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파헤치기 보다는 허구적일지라도 얼른 손쉽게 인과관계를 구성해 내는 것을 선호한다. 머리 쓰는 것이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손쉽게 지어내는
데에 가장 강력한 도구가 신이라는 관념이다.
나는 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파악되지
않는 뭔가 거대한 것이 있어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현실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 이 기준으로 보면, 여호와/알라
등의 신, 마귀, 천사, 조상신, 처녀귀신, 지름신, 천지신명, 미륵불, 부처상, 영성, 영계, 태양이나 강 따위에 갖다 붙인 샤먼 등등, 이 모든 것이 본질에서는 다 똑 같은 신이다. 이 말을 들으면 ‘내가 믿는 신은 다르다’고 욱하는 감정이 치솟는 사람이 있겠지만 조금만
냉정을 찾고 생각해 보자.
신 관념의
핵심은 신한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편리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잡다단한 모든 사건이 신의 의도라는 단일 원인으로부터 다 설명된다.
풍년이 들면 풍년의 이유를, 흉년이 들면 흉년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전쟁을 해야하는 이유와 전쟁에서 이기거나 진 이유도 설명해 준다. 축구 시합에서 이긴 이유도 설명해 준다. 심지어 창조신을 믿는 과학자에게는
전자기법칙이 왜 그런 형태여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신은 이런 식으로 현실세상의 어느 지점에도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편리한 존재다.
사건의 원인을
몇 단계 파헤쳐 가다가 막히면, 바로 거기서 인과고리를 끓고 그 지점에 신을 끌고 들어오면 된다. 아주
편리하고 유용한 관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건이 설명되므로 마음의 안정을 찾기에 정말 좋다. 게다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천당 간다고 하니 영생을 누릴 것 같은 (허망한) 희망까지 주지 않는가? 신을 믿는 사람은 자기가 왜 신을 믿는지
생각 좀 해 보라. 신이 있어서 신을 믿나? 아니면 신을
믿고 싶어서 애써 신을 지어 냈는가?
문제는 모든
실체관념이 그러하듯이 신이라는 실체도 자연에 없고 머리가 지어낸 추상물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 추상물이
외부세계에 대처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이냐가 관건이다. 개똥이에게 나쁜놈이라는 속성을 추상한 것과 같이, 신이라는 추상물은 사건을 통제할 합리적 수단을 발견하는 데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허구적 인과관계를
구성했기 때문에 합리적 원인 분석이 되지 않고 허구적 통제수단에 집착하며 쓸 데 없는 노력을 낭비하게 된다.
위에서 내가
예로 든 신 관념 중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인류의 몇 %나 될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1%도 안 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신 안 믿는다고 하면서도 새 차를 사고 강가에 가서 고사를 지냈다고 하더라. 그러고도 접촉사고가 몇 번 났는데 고사 지낼 때 4대강 공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명박을 욕하더라. 허구적 인과관계를 지어내는 전형적인 예이다.
인류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이 사람 스스로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머리 속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교통사고가 날지 안 날지 결정할 능력을 가진 오묘한 존재를 추상했다. 그리고 그 능력자의 기분은 고사를 어떻게 지내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속성이 있음도 추상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4대강 공사 때문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황당한 인과관계가
도출되었다. 나는 저런 실체관념을 통틀어 신이라고 보므로 이 사람은 내 기준으로는 신 믿는 사람 맞다.
교회나 절에
가서 기복신앙으로 기도하는 것과 이 사람의 사례가 완벽하게 똑 같음을 알 수 있다. 파악되지 않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있어서 세상사에 개입할 수 있고 내가 고사를 지내거나 기도를 함에 따라 그 존재자의 의도가 바뀔 수 있다고 추상한 즉 그것이 바로
신이다. 그래서 강가에서 고사를 지내는 거나 조상한테 제사 지내는 거나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거나 본질에서
똑 같다.
기도한 결과대로
되지 않으면 적당히 다른 이유를 갖다 붙여서 인과고리를 정당화 한다. 신의 의도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으므로 4대강공사를 들이 댈 수도 있고 고사에 썼던 북어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을 들이 댈
수도 있다. 심지어 어제 밤에 성행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젖으면 신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요인을 수십 가지 생각해 내고는 그 모든 걸 다 지켜야 한다.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되고, 숟가락을 엎어 놓아도 안 되고, 생선 먹을
때 배를 뒤집어도 안되고, 밤에 손톱 깍아도 안 되고, 일요일에 일 하면 안되고, 하루에
몇 번씩 알라에게 절해야 되고, 절 할 때는 발을 씻어야 하고 등등,
다 지키기 불가능할 때까지 금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신이 내 소원을 안
들어 주었을 때,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하고 인과적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쓸 데 없는 수 만가지 금기를
외우고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
정작 공동체에 해가 되는 부동산 투기는 태연히 잘 하더라. 여호와한테는 금기 몇 개 없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금기들이 다 우리를 위한 거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금기는 여호와 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 그런
금기는 스스로 지켜야 되고, 필요하면 공동체의 약속으로 만들어 지키면 되지 꼭 여호와가 시켜야 지키나? 노예 마음에서 벗어나자.
인류 지성의
진화방향은 신 관념을 버리는 방향이다. 실체관념은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건조하게 파악하는
방향으로 간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인류지성의 진화방향에 역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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