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표절이 사회적 관심사로 자주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조금 뉘앙스는 다르지만 언론의 무책임한 기사 인용의 위험성 또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사화된 언론의 공공성으로 인해 효과를 본 경우들도 있으니, 미디어 전후에 걸친 이런 인용상황 비교거리를 한번 들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적어 본다.
편의상 A -> 미디어 -> B 로 나누어 미디어 전후 인용상황으로 각자 구분해 보자. 시간차는 있지만 A 인용예는 2013년도의 사건, B인용예는 1872년 경의 사건으로써 한 번 되짚어 보겠다.
A의 예 (2013년 대한민국)
1.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인 저(황장수)는 지난 6월 17일자로 검찰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하여 무혐의 처분된 것을 6월 21일자로 통보 받았습니다.
2. 안철수 측은 지난 6월 18일 『황장수 무혐의 처분 유감』이라는 성명을 배포한 바 있습니다. 안철수 측은 『황장수 소장의 주장이 허위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의(범죄적 의사)가 없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이는 정치적 결정에 의한 면죄부라 주장했습니다.
이 보도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20여 개의 언론은 『허위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의가 없다』라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듯한 안철수 측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바 있습니다. 이 보도를 한 언론 중 어느 언론도 저에게 통화를 하거나 반론권을 행사한 언론이 없습니다.
3. 이에 대해 첫째, 저는 안철수 의원 측이 어디서 어떻게 상기한 『허위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의가 없다』는 말을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밝히기를 요구합니다.
B의 예 (1872년 유럽)
1. 언론에 이미 공표된 내용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부에 관한 문제의 진상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이런 현기증이 날 정도의 엄청난 부와 권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것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유복한 계급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우리와 아픔을 안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아무 것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부와 권력의 증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정확한 보고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만 한정되어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2. 이 사건의 전개는 이렇다.
위 내용은 1863년 4월 16일 영국 재무장관 글래드스턴의 의회 예산연설 내용 중 일부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글래드스턴 연설을 인용했었다. 그런데 그 연설 중 상기 연설 내용이 마르크스 저서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인용오류 지적을 받았던 것이긴 하다. 비판자는 상기 내용은 본래부터 없었던 것을 새로 지어낸 것이라는 식의 비난을 했다. 1872년 3월 7일 독일 공장주협회 기관지 <콘코르디아>에 익명의 글을 통해 그 비판자는, 예산연설에 대한 인용이 날조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콘코르디아>해당 호를 같은 해 5월에 받아 본 마르크스는, 6월 1일 <폴크스슈타트>를 통해 답변을 했다. 전에 인용했던 잡지를 기억해내지 못하여, 대신 똑같은 인용문이 실린 두 개의 영국 서적을 일단 명시하고, 덧붙여 <타임즈>보도를 인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부에 관한 문제의 진상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이런 현기증이 날 정도의 엄청난 부와 권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것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유복한 계급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우리와 아픔을 안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아무 것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부와 권력의 증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정확한 보고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만 한정되어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파악한 사실은 이렇다. 나중에 다시 정정된 속기록판을 통해서 글래드스턴은 약삭빠르게도 영국 재무장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얘기로는 위험했을 부분은 연설 속기록 작성 후 다시 삭제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영국의회의 오래된 전통이기도 했다.
익명의 인물은 다시 <콘코르디아>7월 4일치의 답변에서 얼토당토 않는 모순된 말을 주절거렸다.
마르크스는 8월 7일 치 <폴크스슈타트>를 통해 답변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1863년 4월 17일자 <모닝 스타>와<모닝 에드버타이저>의 보도를 소개하였다.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분명 언급되어 있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이 부와 권력의 증가가 만일 실질적으로 유복한 계급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생각될 경우 이것을 우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데, 그럼에도 이런 부의 증가 현상은 사실상 유산계급에만 한정되어 나타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의회 연설 다음날 아침에 발간되었던 별개의 세 신문 <타임즈><모닝스타><모닝 에드버타이저>에 똑같이 보도된 내용을 다시 예로 들었다. 실제로 얘기 되었다고 확인된 문장이, 잘 알려진 관례에 따라서 교열을 받은 핸서드의 속기록에서는 빠져 있으며, 그것은 글래드스턴이 나중에 그 부분을 슬쩍 훔쳐내버렸기 때문이라고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사건은 묻힌 것처럼 보였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 여덟달 뒤인 1883년 11월 29일자 <타임즈>에, 과거 익명이었던 자와 주변인들이 이름까지 드러내면서 다시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모순을 드러내면서 마르크스의 딸인 엘리니 마르크스에게 간단하게 무력화 되었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그의 답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반대로 마르크스는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조금도 무엇을 허위로 덧붙이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는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분명하게 얘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렌서드 속기록에서 누락되어버린 어떤 구절을 망각되지 않도록 되살려 놓았던 것이다."
엘리너가 언급한 이 마지막 문장은 왠지 나에겐 낯이 익다. 최근 다국적탈세 심층탐사를 펼쳐내고 있는 ICIJ (탐사보도 국제기자협회)의 자료공개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뉴스타파가 이 공개원칙에 잠시 하자를 보인 점을 미래경영연구소가 제대로 지적한 역할도 여기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토록 앞뒤를 맞춰 보자는 취지가 과연 통할지는 현명한 디어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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