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오늘자(2014년 1월 8일) 신문의 ‘아주 문화적인 세상 읽기’ 코너에 ‘변호인의 좌절’이란 글이 실렸다. 고동우 기자가 쓴 글인데 내 생각과 차이가 있어 반론을 재기하고자 한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5344)

고기자>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의 가장 빛났던 시기를 다룬 영화다. 혹자는 정치인 노무현이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우고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영광의 순간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더구나 패배를 피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희생만큼 숭고한 것은 없다.  

나> 글쎄, 노통의 가장 빛났던 시기가 과연 부림 사건 변호할 때 뿐이었겠나,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항상 정의를 말하고 불의와 싸웠던 노통 아니었나. 

그리고 패배할 줄 알고도 변호했다고? 누가 그러더나? 노통은 절대 패배를 생각하고 변호하지 않았다. 확실히 외치지 않았나. 국밥집 아들 진우만큼은 무죄라고… 근데 무슨 패배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고 단정짓나? 
고기자한테 부림 사건 변호가 가장 빛나 보였다면 고기자는 노통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고기자> 만일 뜨겁게 살다 안타깝게 떠난 노무현이라는 안전판이 없었다면 '어느 날 갑자기' 소시민에서 민주 투사로 변신하는 또 하나의 영웅 탄생기에 우리는 쉬이 공감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노무현은 평소 그를 안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도 짠한 그리움과 아쉬움의 이름이다.

나> 이건 또 무슨 헛소린가? 노통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란 얘긴가? 글구  변호인이란 영화가 고기자 눈에는 ‘영웅 탄생기’로 보이나? 난 상식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절규만 보이는데. 

노통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이 노통은 짠한 그리움과 아쉬움의 이름이란 얘기는 오늘 처음 듣는다. 안 좋아하는데 그리워하고 아쉬워한다는 것은 모순이잖아. 좋아하면 그리워하는 것이고, 좋아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게 맞는 말이지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슨 짠한 감정이 있으며 그리움이 왜 있나?

고기자> 변호인은 그로부터 15년 후 자신이 맞서 싸웠던 국가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올라선다. 세상은 마땅히 훨씬 더 좋아져야 했지만 수많은 장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보수 세력의 저항도 있었고 그 자신의 오류와 한계도 있었다. 2003년부터 2009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그에게도 국민에게도 좌절의 연속이었다. 영화 <변호인>은 그러나 그가 끝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근원들에 대해 아무런 성찰도 반성도 전략의 단초도 쥐여 주지 못한다. 오직 노무현을 향수와 연민의 자리에 가두어놓고 상업적 용도든 추종자들 결집이든 목적한 바를 이루는 데 충실할 뿐이다.

나> 그에게도 국민에게도 좌절의 연속이었다고 조중동은 얘기하지. 그렇지만 노통은 수많은 수구기득권의 장벽 앞에서 절대 좌절하지 않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싸웠다. 그리고 대부분은 포기하지 않고 극복했다. 조중동과 기성언론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었겠지, 실제 삶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노통 재임기간의 모든 지표들이 국민들이 좌절할 정도였으면 이명박근혜 정부의 각종 지표들은 절망이라 표현해야 하나? 

변호인에서 무슨 성찰과 반성을 찾으며 전략의 단초는 또 무엇인가? 고기자!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그것을 보고 무슨 감정을 갖든 그것은 관객의 자유야. 고기자의 얘기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어… 너 독재자야? 고기자가 뭔데 관객의 마음까지 좌지우지 하려 하나?

고기자> 자연히 우리의 시야도 과거에 갇힌다. <변호인>은 선과 악의 '손쉬운' 이분법이라는 익숙하면서도 퇴행적인 해법을 다시 꺼내든다. 좋은 사람은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영웅적 희생자고, 악인은 아무 고뇌와 갈등도 없는 태생부터 괴물이자 가해자다. 조작과 고문에 앞장섰던, 하지만 6·25 전쟁 때 북한군에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은 차동영(곽도원 분) 경감이나 '자각' 이전의 그저 먹고사는 데만 바빴던 송우석 같은 사람의 삶은 포기되고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노무현의 '재림'을 꿈꾸는 사람들의 계속된 좌절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일도양단식 도덕적 재단과 편 가르기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 것 아니었던가.

나> 뜬금없이 시야가 왜 과거에 갇히냐? 고등계 형사로 일제시대 때 떵떵거리며 독립투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차동영의 애비, 일제 식민지에 해방되고 나서도 떵떵거리다 6.25전쟁 아니었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떵떵거렸을 친일파의 죽음으로 고통 받았을 그 아들이 그리 안타깝더냐? 

애비의 피를 이어받아 빨갱이 만드는 고문기술자가 된 차동영을 죽일 놈 한다 해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진 편가르기냐? 고문으로 평범한 사람을 빨갱이로 만드는 공안 경찰에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다. 이건 노무현의 ‘재림’을 꿈꾸는 사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하는 공분이다. 고기자는 노무현의 재림을 꿈꾸는 사람들은 편가르기 한다라는 잘못된 전제로 영화를 억지 해석하고 있다.

고기자> 영화 <변호인>은 그러므로 간직하되 머물러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민주주의가 불안한 이 시대 현실과 공명한다고 하지만 '응답하라 1987!'이란 외침에 왜 별 메아리가 없는지 오히려 돌아봐야 할 때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며 새로운 시작을 당부하고 떠난 그분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변호인>의 시간을 넘어서야만 한다.

나> 고기자는 노통의 마지막 유언에서 인용할 말이 ‘너무 슬퍼하지 마라’ 밖에 없더냐.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글은 보이지 않더냐?

새로운 시작은 과거의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과거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박정희는 반인반신이 되는 것이고, 그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호인은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던 세상에서 치열하게 상식을 외치던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과거의 진실한 기록이다. 특히 역사가에 의한 기록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열정에 의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겠다. 뉴라이트와 친일파의 역사 왜곡에 맞서 진실한 과거의 기록들이 계속될 때 미래는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