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9일 만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특유의 말투와 태도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1월 창당 이후 ‘가시밭길’을 걷고 있지만 민주진보 진영과의 적극적인 연대와 통합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의지만은 확고했다.
유시민 대표는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과 발전방안, 불교와의 인연, 종교간 갈등 해소와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소신 있게 밝혔다. 이와 더불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국민참여당 대표로써 꿈꾸는 국가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만난 사람=이성수 편집국장
- 국민참여당이 지향하는 노무현 정신의 의미와 우리 시대에 노무현 정신이 필요한 까닭은.
=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상식’이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사람 사는 세상’이란 싸인을 많이 했다. 못 가진 사람, 많이 가진 사람, 배운 사람, 덜 공부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가르침이 통용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하다. 돈과 권력이 있는 분들이 그렇지 않은 분들을 야박하게 대하고, 한편에서는 이념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신이 필요하다.
불교는 ‘상생과 평화의 종교’
이 정신이 사회에 널리퍼지도록
스님과 불자들이 힘써줬으면…
- 스마트폰에서 따뜻한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대화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따뜻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동안 대중들에게 강한 이미지로 비춰진 부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 강한 것이 꼭 나쁜가. 사실 좀 그렇기도 하다. (웃음) 따뜻한 라디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다루는 이슈 또한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1700년 됐다. 그동안 불교는 우리민족과 고락(苦樂)을 함께 해 왔다.
= 우리민족에게 불교는 생활문화다. 언어, 속담, 단어 등에 불교가 녹아있고 생활 예법에도 뿌리 내렸다. 불교를 믿지 않는 한국인들도 알게 모르게 불교문화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다. 저도 절에 가면 마음이 굉장히 편하다. 혼자 가서 불전함에 보시하고, 부처님께 절을 세 번 한다. 법당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편안해 진다.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절에 가서 자식 잘 되기를 기도하신다. 대구 시내에 있는 절을 다니신다.
- 절 가운데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 예전에는 집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파주 보광사에 종종 갔다. 칠곡군 가산면의 송림사에도 자주 갔다. 고향인 경주는 동서남북 사방에 불교문화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고도(古都)이다. 어릴 때 경주박물관에 가면 목 잘린 작은 불상들이 양쪽 화단 옆으로 놓여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이후 타종교가 유입되면서 아마도 배타적인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그 같은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상 전체를 운반할 수 없어 머리만 잘라 훔쳐간 사람도 있을 거다. 불교에서 최고로 받드는 분의 형상인데 민족문화유산을 논하기 이전에 이같은 짓을 해선 안 된다.
- 불교는 오랜 세월동안 백성과 호흡해 왔다. 불교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또 한국사회가 수용해야할 불교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 부처님과 중생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울타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싯다르타 왕자는 생로병사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고 수행에 나섰고 결국 깨달음을 성취했다.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신라시대 순교한 이차돈 이야기부터 민중이 도탄에 빠졌을 때 산속에서 수행하다 내려온 승병들의 활약이 역사책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살린 불교의 가르침을 계승해야 한다.
종교 갈등은 들불과 같아
한번 타오르면 끄기 힘들어
종교는 행복 위해 존재해야
- 불교와 관련된 국가법령 가운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 전통사찰보존법은 오래된 법이다. 법이 제정됐을 때와 지금은 많이 변했다. 법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바꾸기 어렵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사찰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고 새로 짓는 종교시설과도 엄연히 다르다.
적어도 몇 백 년 전부터 있었던 건물이며 내부에 있는 그림 등의 유물도 문화유산인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유물들도 있다. 고찰이 위치한 곳이 대부분 환경보존구역에 해당되다보니 규제의 필요성을 느껴 법을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정 당시 이를 투명하게 알리고 정부당국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부분도 있다.
사찰의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많이 발전했다. 스님들의 활동범위 또한 복지와 의료 분야까지 넓어졌다. 모든 상황이 변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불교관련 국가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정부, 불교계, 사회를 대표하는 분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구체적인 법안을 찾아야 한다.
- 일부에서 불교문화유산의 국가예산을 특정종교에 대한 지원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 ‘불교만 지원해 주냐’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단순한 발상이다.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 사찰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간.문화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민족문화 뿌리 가운데 하나다. 청와대도 있고 빌딩 숲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을 알릴 수 없다.
도시의 큰 빌딩이나 돌과 유리로 지은 멋진 종교시설이라 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사찰에 머물면서 우리의 고유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이다. 그렇기 때문에 템플스테이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한 것이다. 따라서 타 종교에 대한 특혜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불교계의 자산을 우리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소중한 인프라로 봐야 한다.
- 불교계는 1980년 10·27법난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10·27법난에 대한 진정한 명예회복과 보상방안은.
= 제주 4.3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범죄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임시정부 수립이후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그 기간 특정한 시기에 국가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느 시점이든지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 이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다.
스님들도 국민이고 불교신도도 국민이다. 국가가 부당하게 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다. 10.27법난은 전국의 수천 개 사찰 및 암자에 일시에 군화를 신고 들어가 많은 스님들을 잡아 가두고 구속한 끔찍한 사건으로 알고 있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된 것인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국가가 보관한 서류를 검토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진상을 규명 해야한다. 삼천교육대 피해자 보상사례를 참조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면 그 속에서 여러 가지 현안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10·27법난의 법률 개정 필요성은.
= 미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하게 확인해서 검토 할 사안이다.
- 최근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양상을 놓고 우려가 나오고 있다.
= 1차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도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특정종교에 치우치거나 종교가 권력에 유착되면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헌법에 따라 국가공무원은 사적인 생활 영역에서조차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종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자신을 죽이고 남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종교 갈등은 한 번 타오르면 들불과 같아 끄기 어렵다. 마른 들판에 성냥을 함부로 켜는 행위다. 종교 갈등을 자꾸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특정종교 신자라 할지라도 재임 중에는 청와대에서 자신의 종교 의식을 열어서는 안 된다. 혹시 행사에 참석 한다면 타종교 종교의식도 함께 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 종교시설도 재임 중에는 가면 안 된다.
(기독교계 일부에서) 종교 정당을 만드는 것은 우려된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다뤄야지 물리적 강제력을 다루는 기구가 아니다. 국민들이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새로운 도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바로 20대
어려움 뚫는 용기 잃지 말 것
- 인연 있는 스님들이 있다면.
=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청화스님, 파주 보광사 주지였던 일문스님, 법안스님, 효림스님 등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소속 스님들과 친분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불교계에서 큰 힘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 감명 깊게 읽은 불교책이 있다면.
=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나 김성동 작가의 <만다라> 등을 읽으며 불교를 이해했다. 사실 전문불교서적은 읽어도 잘 모르겠다. 어렵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으면 한다. 지난 2009년 김해 정토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49재를 지낼 때, 한글로 뜻을 풀어 놓은 법요집을 보았다. 의미가 하나하나 와 닿았다. 최근 조계종에서 한글 경전을 사용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의기소침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지만 모든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가 있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자기 세대의 십자가가 있고 불교식으로는 공업(共業)이 있는 것이다. 도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20대라고 생각한다.
모든 세대가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이 시기를 통과했다. 공업 혹은 십자가를 원망하기 보다는 난관을 뚫고 헤쳐 나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청년들의 아버지 세대는 훨씬 더 큰 어려움을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 도전하는 용기와 기백을 잃지 마라.
- 내년 총선과 대선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 사회적 선(善)을 이루기 위해 야권은 손을 잡고 단결해야 한다. 통합할 수 있는 정당은 통합해야 한다. 당장 서로의 신뢰가 충분치 않아 통합하지 못한다면 연합이라도 해야 한다. 함께 힘을 모아 선거에 임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다. 진보통합과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후 공동 책임을 지고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이같은 노력에 국민들이 응원해 줬으면 한다.
- 어떤 정치인으로, 어떤 ‘유시민’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 누구나 훌륭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원할 것이다.
- 스님과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 불교는 상생과 평화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서로 화합해 살아가는 사회를 정토(淨土)라고 생각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르침에 따라 잘 화합하고 살아가는 그런 사회이다. 이같은 정신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힘써 줬으면 한다. 좀 더 밝은 빛으로 세상을 비춰줬으면 한다.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19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과 복학을 거듭한 끝에 1991년 졸업했다. 1992년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책과 칼럼을 쓰고 방송 일을 하면서 시사평론가로 널리 알려졌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고, 2003년 제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재선했다.
2006년 2월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했다. 저서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국가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불교신문 2756호/ 10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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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