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9.25임시당대회에서 ‘향후 진보대통합 추진방안’이 부결됨에 따라 진보대통합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당대회에서 안건이 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진보대통합은 중단 없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여전하다. 민주노동당은 9.25당대회 결과에 관한 대변인브리핑에서 “대의원들의 뜻을 엄밀히 새기고 향후 진보대통합 추진방안에 대한 당내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민중의 요구와 국민의 바람을 반드시 실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8일 현재 진보대통합에 관한 이후 당 일정과 계획은 아직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이다. 앞서 당대회 다음날인 26일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긴 했으나 10.26재보궐선거에 출마할 후보 인준 외에 통합 관련 공식 논의는 없었다. 대신 간담회 차원에서 의견을 교환했을 뿐이다. 장원섭 사무총장의 전언에 따르면 향후 진보대통합에 관한 공식 논의는 10월4일 열리는 최고위 회의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9.25당대회 이후 진보대통합은 어떻게 추진될까. 당 안팎의 개괄적인 전망들은 이렇다.
9.25당대회 안건이 부결됨으로써 지금까지 진보대통합 사업에 주조를 이뤘던 신설합당 방식의 통합 추진은 어렵게 됐다. 진보신당이 9.4당대회에서 진보대통합 합의문을 부결시킨 데 이어 민주노동당에서도 국민참여당을 통합 대상으로 확인하는 게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당도 25일 밤 전자(온라인)중앙위원회의를 열어 임시당대회와 당원총투표 중단을 결정했다. 이렇듯 당대당 통합에 참여할 정당이 남아있지 않은 만큼 진보대통합은 다른 방식으로 추진해야 할 상황이다.
현 시점에서 다시금 살펴봐야 할 것이 바로 그동안 이뤄져 온 진보대통합 관련 당 의결사항들이다. 앞서 지난 6월 정책당대회에서 결정한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침’ 해설서를 보면, 신설합당이 불가능할 경우 재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재창당이란 진보대통합에 참여하는 다른 정당 또는 단체의 지도부, 인사들과 협의, 정치적으론 ‘신당 창당’을 의미하지만 민주노동당 입장에선 새로운 당명, 강령, 당헌 등을 변경하는 재창당 절차를 밟는 것이다.
새통추 중심 재창당?
이와 관련해 그동안 진보대통합 논의를 이끌어 온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새통추)에 참여한 단체들과 진보신당을 탈당한 노회찬·심상정 전 고문 등이 중심이 된 ‘(가)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연대’(통합연대)와 함께 재창당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은 “진보신당쪽 통합연대가 새통추에 가입한 경우 예의를 갖춰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법·제도적으로 신설합당이 안 되면 재창당으로 해야 한다”며 “(3지대에서)‘헤쳐모여’하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당원들이 탈당해야 하는 만큼 무리가 크다. 처음부터 그것은 염두에 둔 적이 없으니 신설합당을 추진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진 최고위원 또한 “새통추를 중심으로 진보대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정성희 최고위원도 “안타깝고 아쉬운 감이 있으나 당대회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대회 결정에 따라 진보신당 통합파를 비롯해 새통추에 참여하는 단체들과 함께 민주노동당 재창당 방식으로 1단계 진보대통합을 조속히 완료해야 한다”며 “늦어도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형식은 민주노동당 재창당이지만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란 외형을 갖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당 바깥의 세력들이 참여할 때 예우도 하고 민중들이 볼 때도 통합진보정당이란 이름에 모자람이 없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은 “형식적으로 재창당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하는데 동의한다”며 “내용적으론 무리하지 않게 진보정당을 함께하고자 하는 분들과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 위원장은 “새통추는 논의는 잘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며 “진보신당쪽 통합연대를 정당으로 보고 협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통합연대는)민주노동당 재창당 과정에 합류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런 재창당 방식의 진보대통합 추진은 9.25당대회에서 부결된 안건에 대한 해석 문제를 남겨놓고 있다. 당대회에서 부결된 게 “국민참여당이 통합 대상임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간의 합의정신에 따라 (진보신당에서)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모든 분들을 존중할 것”과 “8월27일 구성된 새통추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 단체 및 정당과 함께 11월 노동자대회 이전에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도 부결됐다. 부결된 안건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충분한다. “원점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재창당? “모든 가능성을 열고 지혜 모아야”
수임기관 지속 여부 관심… “최고위서 담당기구 결정” 의견도
수임기관, 지속? 해체?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이 높은 진보대통합 방안이 재창당이라고 할 때 다음 문제는 누가 이를 추진해나가느냐다. 9.25당대회 이후 전망과 관련해 엇갈리는 게 바로 수임기관의 지속 여부다. 여전히 수임기관은 통합을 추진할 기구라는 입장과 앞서 9.25당대회에서 “구체적 추진은 실정과 조건을 고려하여 현 수임기관에 위임”하려던 것까지 부결된 만큼 수임기관의 역할이 끝났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은 “당대회 때마다 수임기관이 권한을 위임받았는데 이번 9.25당대회에서 부결됐으니 수임기관은 역할을 다한 것”이라면서 “최고위, 중앙위 등을 거쳐 권한을 가진 (다른)기구를 만들어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김성진 최고위원은 “‘6월 정책당대회에서 신설합당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방식으로 추진한다’는 권한을 수임기관에 준 것”이라며 “수임기관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과 달리 정성희 최고위원은 “수임기관이나 최고위 회의에서 이후 진보대통합 사업을 관장할 당내 단위를 논의하면 된다. 만일 수임기관 임무가 종료됐다고 해석될 경우 최고위, 중앙위와 그 산하에 통합 추진기구를 만들던지 정상적인 (논의)체계를 밟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후 진보대통합의 진로에 대한 다양한 전망, 의견들과 관련해 장원섭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진보대통합의 가치는 살아있지만 그 가치를 실현하는 당론은 재조정이 필요하다. 당대회 뒤 한 호흡을 쉬고 4일 최고위 회의부터 논의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당장 숨고르기가 필요한 만큼 새통추도 당분간은 소집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통추 소집권자인 민주노총은 9월27일 중앙집행위원회의에서 새통추 관련 논의를 했지만 민주노동당의 향후 계획에 관한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개최 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국민참여당 문제
또 하나 관심사는 9.25당대회에서 “통합 대상임을 확인”하는 게 부결되긴 했지만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다. 당대회 부결 이후에도 트위터 등에서 이에 대한 의견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방증. 더욱이 9.25당대회에서 안건 부결에 찬성한 대의원들 가운데선 국민참여당과 ‘2단계 통합’에 동의하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새통추를 통한 진보진영의 ‘선 통합’을 이룬 뒤 국민참여당과 통합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정성희 최고위원은 “이번 당대회 원안에 반대하는 대의원 가운데도 기존 진보진영의 ‘선 통합’ 이후에 참여당 합류에 동의하는 흐름이 강했다”며 “참여당, 시민사회 등 진보개혁적 중간층을 견인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진 최고위원도 “국민참여당과 통합 여부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만들어지면 새롭게 논의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기갑 의원 역시 앞서 지난 26일 <불교방송> ‘전경윤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진보진영과 선 통합 이후에 외연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 통합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며”며 “앞으로 여러 가지 부분들이 많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은 “통합은 상대가 있는 것이라서 우리만 그림을 그린다고 되겠느냐”면서도 “진보정당이 수권을 위해 외연을 확대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당대회 부결로 참여당과 통합이 1차 실패했지만 일만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본다”고 조심스런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장원섭 사무총장은 9.25당대회 당시 안건을 설명할 때 “안건이 부결돼도 통합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참여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력을 전체로 모아야 하는 것”이라고 안건 부결의 의미를 해석한 바 있다. 이 역시도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안동섭 위원장 지적대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에서 중요한 게 바로 국민참여당의 입장이다. 9.25당대회 결과와 관련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26일 최고위 회의에서 “이것(민주노동당과 통합)이 옳은 길이라면 이번에 성사되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꼭 이뤄지리라 믿는다. 좋고 훌륭하지만 이루기 힘든 일일수록 한 번에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후일을 기약하는 것 같지만 판단 유보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국민참여당의 이후 행보에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참여하고 있는 ‘혁신과 통합’과의 관계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경의 기자 Kehwang@kdlpnews.org
<진보정치 536호>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