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고심한 사실 하나만으로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급으로 급부상한데 이어,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 온 박원순 변호사가 10.26 서울시장 선거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면서 부쩍 '정당정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위기의 신호들
기존 정당이 "국민들의 요구와 바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불신 받고 있다"는 것이 정당정치 위기론의 배경이다. 실제 비정규직 등 양극화 문제, 높은 대학등록금, 전세대란으로 상징되는 주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국민적 요구는 분출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불신받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정치가 위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안철수-박원순 현상'은 민주당에 더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민주당의 위기'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장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요동친 것은 민주당 지지층이다. 안 원장 지지층의 절반은 무당파층이었고 나머지 절반 중 60%는 민주당 지지자, 40%는 한나라당 지지자였다.
ⓒ이승빈 수습기자
안철수 바람 이후 정당정치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주당의 위기라는 지적이다.
역대 선거를 보면 20~30대는 민주당, 50대 이상은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강했고, 40대가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안철수 바람에 이은 박원순 바람까지 20~30대는 민주당이 아닌 '안-박' 지지로 쏠렸다. 조직이 전혀 없었던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의 조직동원을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승리한 배경도 투표율을 60%대까지 끌어올린 20~30대의 자발적 참여에 힘 입은 바 크다. 선거 때마다 젊은층의 투표를 호소하던 민주당에선 "20~30대 젊은층의 투표를 이번처럼 두려워했던 적은 없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한나라당은 중장년 이상의 안정된 지지기반이 있어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외풍이 덜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새로운 이슈에 대한 수용성이 강하고 안정보다는 개혁성향이 강한 젊은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민주당 등 야권이 새로운 변화에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불신을 받고 있다는 징표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8월 27일 KSOI가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야권 중 민주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이 통합해 하나의 정당이 된다고 할 경우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 36.5%, 야권 3당 통합 정당 19.8%, 민주당 19.2%로, 통합 정당이 민주당 지지율을 추월했다. 지난 7월 말 '우리리서치'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입당을 거부하고 무소속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지가 지난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 후보의 민주당 입당 여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49.2%)는 입장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31.1%)는 입장을 크게 앞섰다.
지지층 변화없는 한나라, 답보상태 민주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패한 뒤, 손학규 대표는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대표직 사퇴 카드를 던졌었다. 보수진영에서는 제1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조롱섞인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김철수 기자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패배한 후,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대표직 사퇴 카드를 던졌었다.
하지만 60년 전통 제1야당의 '위기 신호'는 시간표를 좀더 거슬러올라가는 고질적인 문제다. 민주당은 제1야당이라는 자리에 안주해 혁신을 게을리 하면서 호남 이외의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실시된 각종 선거에서 대부분 승리했지만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당 지지율을 봐도 20%대 초반에서 답보상태다. KSOI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후인 6월 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1%까지 치솟으면서 한나라당(35.1%)을 턱 밑까지 추격했지만, 7월 여론조사에서는 다시 23.8%로 추락했다.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에서는 10월 30일 18.6%, 12월 1일 18.6%, 12월 18일 19.3%로 20%대 지지율도 무너졌었다. 올해 들어 20%대를 회복했으나 20~26%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답보상태다.
반면, 한나라당은 평균적으로 35%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기복도 크지 않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KSOI 정기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대 밑으로 떨어진적도 없다. 결국, 지지층에 특별한 변화를 겪고 있지 않은 한나라당에 '위기' 딱지를 붙일 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윤희웅 실장은 "민주당 지지율은 내용적으로 허약한데 민주당에서 지지기반 확충으로 과잉평가한 부분이 있다. 또 혁신과 변화, 민심을 정당운영에 반영하려는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면서 현 정권 후반기까지 온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웅재 기자jmy94@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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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