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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지지부진해왔던 야권의 정치 지형도가 이제서야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년간 저마다의 암중모색과 주고 받는 빅엿의 시련 속에서도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다잡고 제갈길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보건데 지금 야권 통합을 위해 펼쳐지고 있는 저마다의 길은 결국 각자가 그러해왔던 그대로의 제 갈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찬-재인이 가고자 하는 길은 오래되고 익숙한 민주당으로의 길이다. 한때 DJ와 노무현이라는 세기의 리더십의 존재를 통해 끊임없는 변신과 혁신을 거듭해오던 바로 그 민주당이다. 그러나 DJ와 노무현의 부재 이후에 지속되고 있는 리더십의 진공상황은 그 자체로 민주당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
해찬-재인의 다른 한편에서 유시민과 이정희가 가고자 하는 길은 한국정치의 전혀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대중적 진보정당의 길이란 애초에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던 길이었다. 그러나 시민-정희는 지난 1년 동안의 고난의 시간을 거쳐 결국 그 시작의 문을 열어재끼는 데 성공했다.
만약에 해찬-재인이 시민-정희를 앞과 뒤에서 밀어주고 당겨줄 수만 있었다면 한국의 진보정치는 10년은 더 빨리 발전했을 터인데 이토록 생각이 다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해찬-재인의 선택은 결국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해찬의 기획은 민주당의 혁신과 시민세력과의 통합을 통해 민주당을 리모델링해내겠다는 것이다. 즉 "민주당 + 시민운동권 수혈 + SNS + 문재인-문성근" 정도의 화학적 결합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물론 해찬은 이런 일에 더 없는 적임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의 정치인생 자체가 민주당의 끊임없는 혁신과 리모델링의 기획과 관리자였기 떄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해찬은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김총수도 인정한 차기대권주자 문재인이 그의 곁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해찬의 기획은 지난 20여년간 그러해왔듯이 다시 한번 민주당을 혁신하고 새로운 인재들을 수혈해 문재인이라는 새로운 리더를 옹립해 정권 교체의 토대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DJ-노무현 이후의 리더십 공백에서 비롯하고 있다. 수십년간을 DJ와 노무현이라고 하는 불세출의 리더와 함께 해온 정당으로서 그 두 사람이 남기고 간 자리가 너무 크고 깊다. 특히나 과거 호남을 중심으로 했던 민주당은 DJ라는 절대적 존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그 이름과 모습을 바꿔가며 혁신과 리모델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DJ와 노무현은 없다. 열린우리당을 통해 기존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기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 민주당엔 DJ와 노무현의 영정만이 쓸쓸히 남아있을 뿐이다. 금뱃지를 향한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솟구칠 총선 정국에서 민주당은 2008년 그 이상의 기괴스러운 몰골을 다시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해찬과 재인은 그런 민주당을 한국의 제일 정당의 위치로 복원시켜낼 수 있을까? 또는 문재인은 민주당 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포스트 노무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해찬-재인의 길이 익숙하고 오래된 길이라면 시민-정희의 길은 그누구도 아직 걸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다. 애초에 그것은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싸가지 없는 리버럴이라 오해받아온 유시민과 종북좌파 낭만소녀라 낙인 찍혀온 이정희가 이제 한국의 정치지형을 아예 통째로 갈아엎으려 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던 진보정치가 이제 펄떡 튀어오르며 대중 속에서 우뚝 서보려는 것이다. 시민-정희의 길은 장기적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그들이 있었어야 할 원래 그 위치로 되돌려 놓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DJ와 노무현의 시대는 끝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짊어져 왔던 과중했던 역사적 책무를 이제는 가볍게 해줘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시민-정희의 길이 그 시대를 열어제끼는 서막이 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떨거지라 오해받았던 자들의 패자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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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