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세력은 언제나 새로운 소통양식과 운동방식을 창출합니다. 자유주의 진보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기존의 정당 보다 SNS를 통해 결집하고 행동화 합니다. 이제 정당이 아니라 SNS가 그들의 정치적 의사와 행동을 결집하는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새로운 정치세력이 여전히 기존 정당 외부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4.11 총선을 계기로 몇몇 시민운동 지도자들은 정치권으로 존재이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치세력들은 여전히 정당으로부터 배제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이 지역주의나 반공주의가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큰 정당이든 작은 정당이든 정당 구조 자체가 이들과의 소통과 참여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당구조 아래서는 큰 정당이든 작은 정당이든 모두 제도의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 우리 정당이 지니고 있는 배제의 구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4.11총선에서 모바일 경선은 비록 동원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그 방향성에서 옳았다고 봅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배제된 상층 정치협상을 거부합니다. 과거의 밀실 담합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시민과 더불이 이뤄지는 정치적 과정을 희망합니다. 이는 더 많은 참여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정치형태입니다. 이런 희망을 반영해 더 많은 참여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뤄낼 때만 정당의 대표성 위기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세력교체 없는 정권교체 없습니다:정당의 위기 넘어야 경제민주화 가능합니다.
4.11 총선은 세력교체가 주요한 과제로 주어진 선거였습니다. 기존의 계층적, 지역적 동원구조를 넘어 '87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자유주의적 진보세력을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세력교체하는 일이 주요한 과제였던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야권은 이같은 '세력교체'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결과가 보여주듯 소수 시민운동 명망가들의 의회진출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17대 국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권교체란 구태의연한 세력들의 연대만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권교체에는 새로운 세력, 소통 및 정치양식의 등장을 수반합니다. 이런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설령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허물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류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개혁적 소수파들에겐 더욱 그러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탈지역적 집권이 그랬고,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적 집권 또한 새로운 세력과 소통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4.11 총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해관계 배분을 위한 단순 연대에만 매몰돼 세력교체의 관점을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특정 팬클럽 지도자를 공천하느냐의 문제로 좁혀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또 진보정당간의 통합에서도 이같은 세력교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파국을 맞고 있습니다. 특히 진보정당간의 통합은 진보 이념의 재구성을 비롯한 기존의 폐쇄적 진보의 자기 혁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진보개혁적 야당의 경우 이 새로운 소통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창출하지 않을 경우에는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설령 집권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집권이 어려울 것입니다.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비전을 가진 세력의 창출은 진보개혁 진영의 역량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집권 이후 보수적 논리로 움직이는 제도권력(법조, 교육, 언론, 경제, 종교 등)을 개혁하기 위해 집권의 공고한 기반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왜 허약한 집권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아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성찰해야 합니다.
이미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시장권력은 반격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세력의 기반을 공고화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정당의 대표성 위기를 넘어 강화되지 않으면 정당이 제도권력을 개혁해 나갈 동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후보전술이 과연 본질적 대답일까요?
시민정치세력들은 2012년 하반기의 주요한 과제를 정권교체로 파악하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미 특정 후보 진영에 합류해 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점에 가장 일반적이고 타당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민정치세력들 개개인들 입장에서 그것 외에 다른 참여의 공간이나 방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후보 전술이 지금 우리 정치의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정치는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세력교체를 통한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적 기반 확충이 없다면 정당의 대표성 위기 극복은 물론 실질적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그 후보 당선을 위한 참여가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본질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시민정치세력이 후보전술을 통해 정권교체를 하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정당의 위기를 넘어 세력교체를 통한 진보개혁 진영의 기반 확충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야권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현재 당면하고 있는 정당의 대표성 위기가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통령 선거 이후 정당의 위기가 폭팔적 형태로 드러날 것이며 정당들은 또 합종연횡을 통해 그에 대응하려 할 것입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시민 운동가 처럼 투쟁 현장을 찾아 참여함으로써 대안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정당의 위기를 해결할 본질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시민들의 참여를 제도화, 일상화할 것인가
핵심은 더 많은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87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적 진보세력들이 길거리에서 소모하고 있는 투쟁역량을 제도 속에 합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당정치 외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각성된 시민정치세력의 참여가 제도 안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합법적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TV 프로그램 '나가수'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우리 정치에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시민의 선택을 소수가 밀실에서 배반하는 정치구조는 더 이상 감동을 줄 수도,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제도화한다는 것은 현상적으로는 기존의 정당과 시민정치운동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존 정당이 배제의 구조를 넘어 시민정치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과 아울러 시민정치운동의 제도화가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정치운동과 시민정치운동의 융합 공간을 확장, 발전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파나 계파의 정치를 넘어 새로운 정치모델을 창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실존형식을 창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시민정치운동도 자신의 관념적 과격성과 모험주의를 넘어서는 동시에 최소한의 활동으로 제도 안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노사모를 비롯, 촛불, 국민의 명령, 미권스 등 팬클럽 운동이거나 명망가 운동이었을 뿐 이들의 동력을 제도화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 요소 강화가 그 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 시민정치세력의 참여를 제도화할 것인가. 어떻게 더 많은 참여를 통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뤄낼 것인가. 어떻게 정당의 대표성 위기를 넘어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 진보개혁 세력의 공고한 정치적 기반을 형성할 것인가. 그리고 실질적 집권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직접 민주주의 강화에 있다고 봅니다. 이미 정당들은 이같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경선을 통해 야권 후보를 선출했고, 민주통합당의 경우 당대표 등 주요 당직 선출에서 이미 국민참여경선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정당의 고유한 권한이 '공직후보 추천권'과 '입법권'이라고 한다면, 공직후보 추천과 관련해서는 이미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부작용이 없지 않지만, 이같은 직접적 참여는 물론 SNS의 기반이 확충됨으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정당들이 '국회의원 소환'을 가능토록 법제화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국회에 집중되어 있는 법안 발의권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그들의 참여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국회나 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권한을 시민들과 공유함으로써 정당과 시민정치세력의 결합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해 자기 혁신 동력이 부재한 정당을 개혁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정치운동도 기존의 소모적 운동의 정치를 넘어 제도 속에서 체제 전환노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2013년 체제,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핵심입니다.
2013년 체제와 관련해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입니다. '87년 체제는 '탈권위주의'와 '시장의 자유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87년 체제는 민주주의 확대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시장의 권력화를 낳았습니다. 시장의 자유화가 일정부분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장이 권력화함으로써 시장은 실패했고 그 실패가 바로 IMF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결국 시장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주는 방식으로 극복하려 했습니다.
현재 정당의 대표성 위기도 이같은 시장의 권력화를 정치가 제어하기 보다 오히려 포획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2013년 체제의 핵심은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고, 그것을 '경제 민주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경제 민주화'가 현재의 정당의 대표성 위기를 넘어 더 많은 참여와 민주주의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87년 체제가 '경쟁'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장의 권력화로 귀결됐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 요청되는 것은 공동체적 가치입니다. 정의, 공정, 복지, 생태, 공존, 평가 등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로 재편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와 참여수준으로 도달할 수 없는 가치들입니다. 복지만 하더라도 박근혜식의 복지와 진보의 복지가 달라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촘촘한 민주주의와 참여 공동체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참여가 주어지지 않는 복지는 보수주의의 시혜적 복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정당의 대표성 위기는 단순히 정당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문제이며, 나아가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2013년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의, 공정, 복지, 생태, 공존, 평화 등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한 시장경제를 마련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민주주의와 참여가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 요소의 확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시민정치운동도 지쳤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헤아릴 수 없는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대응하기 지쳤습니다. 그렇다고 그 활동이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아닙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 종편 허가, 그리고 지금도 염치없이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와 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 등등....
이제 우리의 진로를 본질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일부 명망가 정치인들에 의해 이용돼 이제 좌절하고 있는 시민정치세력은 물론 새로운 대안정당을 시도했으나 좌절한 경우 모두 이제 본질적으로 우리의 대안을 함께 고민하고 참여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같은 제안이 대선국면에서의 후보 전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다. 개인에 따라 어떤 후보를 지원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이같은 본질적 논의의 장을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정치란 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보편화시키는 일련의 권력적 과정이다. 담론이 없는 정치는 패거리 정치에 다름 아니다. 이번 대선은 시민정치세력의 참여를 제도화함으로써 세력교체와 정당의 대표성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고, 진보개혁 진영은 정권교체와 함께 이 과제를 성취해야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넘어 세력교체가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의제화하고 실천하는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보들에게 그 생각을 물어야 하고 이 의제를 일반화하기 위해 저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시민정치세력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