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 3학년 때 축제를 맞았다. 1, 2학년 시절 축제때 무의미했던 술잔치를 반성하고 뭔가 남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고 영감을 얻어 학교 안에서 활쏘기 사업을 하기로 했다.
놀이공원가서 주민등록증, 학생증 맡기고 5만원에 활 2개와 화살을 빌렸다. 그리고 주막을 준비하고 있는 곳에 밤에 몰래 찾아가 가마니 몇개를 훔쳐오고 학생회에서 쓰는 대형 선전판을 역시 훔쳐서 활 표적판 만들고 공대 건물 옆에 설치했다. 그리고 그냥 활만 쏘면 밋밋하니까 활 표적판에 노태우, 전두환 그림을 크게 그려서 붙였다.
전두환, 노태우의 눈깔과 심장에 활을 명중시키는 사람들에겐 상품으로 운동권 가요 테입(역시 학생회에서 신입생환영회 때 쓰다 남아도는 걸 훔쳐서 갖다 놓았다)을 준다고 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대성황이었다. 첨엔 화살 열발에 500원 받았는데 사람들이 몰려 몇 시간 후 바로 화살 다섯발에 1000원 받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실 대학축제 때 뭐있나 별거 없거든. 술이나 퍼마시지. 활쏘기란게 지나가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거니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첫날 15만원, 둘째날 25만원, 세째날 35만원을 벌었다. 당시로선 대단한 매출액이었다.
2.
매출도 매출이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활을 쏘고는 싶은데 제대로 쏠 줄 모르는 여학생이 막상 활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면 내가 여학생의 뒤로 다가가 거의 뒤에서 껴안다시피 하면서 같이 활을 당겨줬다.
"활을 쏘는 핵심기술은 이렇게 가슴을 쭈욱 펴는 것이예요" 이러면서 어깨를 잡아 당겨주기도 하고.. "등이 굽으면 안되죠.." 이러면서 등도 만져보고.. 흐흐흐..
여학생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활 쏘는 것까지 가르쳐준다며 고마와하고..
(대체 누가 고마운 건지 모르겠더라..)
당시 나에게 그런 식으로 성추행 당한 여학생들이 약 100명 쯤은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쁜 여학생들에게는 전두환 노태우 눈깔 안 맞춰도 노래테입 공짜로 줬었다.
당연히 남학생들에겐 "빨리 돈내고 빨리 쏘고 빨리 가라"는 식으로 대했고..
3.
그런데 문제는 세째 날.. 아무리 돈도 좋지만 장사를 하고 있다가 또 갑자기 회의가 밀려오는 것이었다. 축제는 역시 술인데.. 하루종일 앉아서 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친구 하나가 와서 술 마시러 가자고 한다. 난 카운터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데.. 하다가 문득 김**라는 평소에 날 따라다니던 여학생을 떠올렸다. 난 걔가 있던 인문대 학생회실로 뛰어가서 걔를 데려와 카운터에 앉혔다. 내가 잠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니 잠시동안만 나 대신 장사하고 있으라고..
그리고 난 주막에 술마시러 갔다. 그런데 술을 너무 열심히 마시다 보니까 카운터 보고 있던 걔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밤 늦게까지 남녀 학생들과 어울려 실컷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난 갑자기 활쏘기 장사판이 생각나서 "엇 큰일났다" 하면서 거기로 가 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아무도 없는 그 활쏘기 판에 걔가 혼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도 없던 시절) 난 술이 확 깨면서 미안한 마음에 걔에게 다가갔는데..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걔가 날 보더니 환히 웃으며 일어서서 500원짜리가 가득 든 돈 주머니를 나에게 들이민다.
"봉팔아, 돈 많이 벌었어.. 이것 봐.."
난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해서 걔를 한 번 껴안아주었다. 물론 걔는 더 고마와하고..
걔는 졸업후 몇 년후에 결혼했는데 결혼 전에 학교로 날 한 번 찾아왔었다. 나는 별 할 말도 없고 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걔를 학교 정문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애의 뒷모습이 참 쓸쓸했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5-02 04:44:50 월간박봉팔닷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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