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뽕회장이 동화읽기를 주제로 글 쓴 거 잼있게 읽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데서 동화 원전에 상상력을 붙여 내놓는 거 볼 때
나 같으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온전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힘들게 작업하고 반 이상은 원전 이름 팔아주는 저런 건 못하겠다 생각했었다.
각설하고
위 그림에 소개한 '고양이대학살'에 동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 담겨 있는데
이건 개인적으로 내가 봐왔던 어떤 종류의 동화 해설보다 섹시했다.
사실에 입각한 통찰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뇌구조를 지닌
니들 역시 이 책에 공감할 거라고 본다.
때로 끔찍하고 때로 비상식적인 스토리에 대해 정신분석이나 상상력을 동원해 해설하는 게
최근 우리가 자주 접하던 동화읽기 방식이었다.
일테면 잠자는 숲속의공주가 물레에 찔렸다는 건 첫 성교를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식이지.
'고양이대학살'에선 상징보다는 리얼리티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동화의 끔찍한 결말은 대개 18c적 팩트라고 소개한다. 원전에 소녀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나는(사냥꾼이 도와주는 장면은 후대의 각색임) '빨간망토'는 18c 상황에서 상징이 아닌 사실이라는 게 이 책의 설명방식이다.
당시 범 유럽의 경제상황은 굶어죽는 사람이 발에 채이고 유리걸식하다가 우글거리는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화라는 장르가 완전한 다큐는 아니기때문에 이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건 '인생의 현존하는 가혹함을 환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스토리에 대한 낭만적 치장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계모가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것은 타고난 악덕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두 딸을 먹이기에도 부족한 식량 사정의 결과이다. 그렇기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는 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토록 잦은 재혼과 계모 모티브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보편적 관습의 소산이다.
이 책을 보고 현대인들이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에너지 삼아 사실마저 환상으로 각색하는 데 중독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광고, 방송, 언론, 책임감 없는 지식인들의 프레임에 빠져서. 뼈빠지게 공부해 억 대 이상 드는 대학비용을 치르고 난 뒤 실직자 대열에 합류하는 거 보다 룸싸롱 텐프로가 되어 돈 모으는게 현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유도하는 이 현실을 한 번도 자기 문제로 마주한 적 없는 그들이 제공한 가상현실 말이다.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기땜에 여기서 마치겠다. 책 본문은 논리적 구성과 아름다운 문체라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수록된 다른 여섯 편의 글도 못지않게 재밌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3-27 15:15:47 문예·과학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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