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팔이 쓴 ‘그리스 신화’에 영감(?)을 받아, 영웅신화에 대해 조금 적어본다.: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복잡한 이름과 가계도때문에 다가갈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던 신화를 재미있다 여기게 된 계기는, 역시 작고하신 이윤기님 덕이다. 그의 글을 가까이 두고 즐겨 읽으면서 신화에도 절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줄곧 ‘영웅’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왜 인간사회에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지, 영웅이 짠 나타나 문제를 다 해결하는지, 거부감까지 있었다. 그런데 신화를 읽으면 어떤 슬픈 예감, 서늘한 데자뷰에 맞닥드릴 때가 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이해할 듯했던 즈음이었다. 이런 대목들에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적 영웅 이야기는 대체로 ‘영웅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패턴을 따른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어린 시절에 고난을 당하고......어느 날 문득 자기 존재의 본질을 만나게 되고......구도의 길을 떠나게 되고......간난신고 끝에 뜻을 이루고......자기 인생의 정점에서 슬픈 순교자가 되거나, 오만한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영웅 중에는 장차 순교자가 되는 긍정적인 영웅이 있고, 장차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정점에서 파멸하는 부정적인 영웅이 있다.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는, ‘어제의 영웅이 오늘 자신을 십자가에 달지 못하면 내일은 폭군이 된다’는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영웅은 참 힘들겠다. 한 영웅이 자기 인생의 정점에 오르면, 영웅 자신 아니면 그가 속해 있는 모듬살이 민중은 하나의 고질병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명은 그리스 말로 ‘휘브리스’, 번역하면 ‘오만’이다. 캠벨은 영웅만 이 병을 앓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중도 이 병을 앓는 것 같다. 민중이 이 병에 걸리면 영웅은 순교자가 되고, 영웅이 이 병에 걸리면 민중은 온갖 무리수가 다 동원되는 폭군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 같다.
올 한 해, 정치에 관심이 적은 나도 한 정치인에게 휘둘렸다. 그가 하는 바보짓 때문에 골을 내었고, 그 바보짓이 지어낸 변증법적 결론에 웃었다. 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나는 표를 살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가 벼랑 끝에 몰리지 않았어도, 거주지 경기도 과천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주소지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서 투표하기는 했을 것이지만 ‘노일병 구하기 작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영웅의 고질병에 걸리면 나는 저항하겠지만, 그가 아낌없이 몸을 내어놓으면 나는 내 몸으로써 그의 몸을 보호할 것이다. ‘영웅’은 제 손으로는 절대로 제 몸을 지키지 못한다.”
-이윤기, <시간의 눈금>, 75쪽.
영웅은 제 손으로는 절대로 제 몸을 지키지 못한다!
영웅이 아낌없이 몸을 내어놓을 때 그를 보호해야 한다!
진작 좀 알려주시지, 아니 그가 바로 영웅임을 크게 좀 외쳐주시지, 하고 생각했다. 영웅이야기를 읽곤 했지만, 그저 그런 이야기라 여기고 새기지 않았다는 회한이 생겼고, 다시 신화를 들춰보았다. 다시 우리에게 영웅이 온다면 이제는 그를 지켜줘야 할 것 아닌가.
‘아비 찾기’와 영웅 싸이클
이윤기님은 조셉 캠벨의 입을 빌어 ‘꿈은 개인의 신화요, 신화는 모듬살이의 꿈’이라는 말을 즐겨한다. 모듬살이의 꿈이라는 그 신화중에는 다음과 같은 ‘아비 찾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 적국에서 아비 없는 자식으로 자라나 장차 아버지 주몽을 찾아가는 유리 태자’,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갈대숲에 던져지는 바람에 애꾸눈이 된 궁예’,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소원이었던 홍길동’ (이윤기 우리 신화 에세이 , <꽃아 꽃아 문열어라>) 등이다. 여기서 영웅이 찾아나서는 ‘아비’는 생물학적 아버지일 수도 있고 영웅이 속한 모듬살이의 근본 일 수도 있다.
“영웅의 삶은, 삶의 한 귀퉁이를 상실한 채로 태어난 사람, 자기 동아리에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서는 어딘가 동떨어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이하 같은 책)
“아비 없이 자란다는 것, 혹은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란다는 것은 삶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는 뜻이다.”
“중심부와 주변부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삶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인간,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중요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중심부와의 화해를 꾀하면서 양립의 가능성에 자신을 의탁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여느 사람의 삶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드라마도 발생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주변부를 소통의 중심부로 바꾸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시련이 따른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인간들이다. 그래서 영웅은 ‘떠나고’, ‘시련을 당하고’, 그러고는 동아리에게 득될 것을 획득하여 모듬살이로 ‘돌아온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 축에 드는 큰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큰사람에게는 한 사람에게 한 번만 오는 결단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근본을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아버지는 누구인가?’
이렇게 물으며 아비 찾아 나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련을 겪고 돌아와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
“큰사람은 이 사회적, 심리적 미숙 상태를 박차고 삶의 현장으로 나가 자신의 확신과 책임의 바탕 위에서 삶을 영위할 것을 결연히 결심한다. 그러자면 재생의 체험이 있어야 할 터이다.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깎이는 고통의 체험이 있어야 할 터이다. 이 고통으로 이루어진 재생의 관문이 바로 영웅의 시련이요, 이 시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영웅 신화에 등장하는 난관과 괴물인 것이다.”
“맏이는 신화에 잘 가담하지 않는다. 맏이는 아버지의 세계를 이어받을 뿐 새로운 세계를 짓지는 않는다. 영웅 신화는, 중심에서 이탈한 자가 자신의 주변성을, 소통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같은 책 71쪽)
영웅의 자각
이윤기님이 자주 인용하는 조셉 캠벨의 책을 보면, 영웅과 구도자는 어떻게 다른지, 영웅과 지도자는 어떻게 다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캠벨의 말로는 “영웅은 여느 인간의 영적인 삶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존재하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는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귀환”(조셉 캠벨, <신화의 힘> ,230쪽)하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모험에 뛰어들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가 상실한 것, 혹은 생명의 불사약 같은 것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이런 영웅은 두 종류다. 이 여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영웅과 그렇지 않은 영웅인데, 전자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진해서 그 일을 하러 떠난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후자가 하는 여행은 ‘던져지는 여행’이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변모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냥꾼인 영웅이 사슴을 쫓아가다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숲에서 모험을 겪는 일 등이다.
우리 모듬살이는 어떤 영웅을 꿈꾸고 있을까?
영웅과 그 추종자들
캠벨의 책에는 영웅이 성취한 일이 그 추종자들의 안목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나온다.
숲 속에서 금을 가지고 나왔는데 나와서 보니 잿덩어리였다던가,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해변에 닿은 오디세우스가 “혼자 되고 말았구나, 결국은 혼자 되고 말았구나.”하고 중얼거리는 이야기다. 먹어선 안되는 태양신의 황소를 잡아먹어버린 부하들 때문에 배가 파선되었으니,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준비도 되지 않았고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영웅이 어렵게 어렵게 숲에서 금을 가지고 나와도
그 추종자들의 안목이 없으면 그건 잿덩어리일 뿐.
이어서 영웅의 죽음과 부활의 테마가 있는데...
여기까지.
[이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2012-03-27 16:01:17 문예·과학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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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