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년이나 되는
시간을 어떻게 몇 장 안에 담아낼 수 있을까? 봉팔이 정리를 해놓아서
편하게 간다만, 그 안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집트는 그 오랜 시간, 안정된 사회였던 편이라 큰 줄기만 짚고 가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련다.
[봉팔 세계사] 2. 고대 이집트(1) 이집트는 우선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지리적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봐야 겠지. 나일강의 중요성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강력한 자가 나섰고, 강가 마을들을 모아 일찍이 국가체제로
나아갔다는 것. 나일강이 길이는 긴데 폭이 좁아서 유역이 고립되어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강 주변 부족들이 통합국가를 이루기가 쉬웠고. 시나이 반도와 사하라 사막이 있어서 이민족
침입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으니 메소포타미아 지역과는 달리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
기원전 3500년경부터 나일강변을 따라 형성된 촌락들이 원초적인 국가형태를 띄기 시작했는데 그 소국가들이 서서히 통합되면서 멤피스를 경계로 북쪽에 위치한 下이집트 연합과 남쪽 테베를 중심으로 한 上이집트 연합으로 성립하여 대립했다.
기원전 3000년경 下이집트 연합의 메네스왕이 上이집트 연합을 통합하면서 이집트 왕국이 성립하게 된다. 메네스 왕은 수도를 멤피스로 정했고 메네스의 아들이 멤피스에 궁전(페르-아per-a: 위대한 거처)을 세우면서부터 이집트의 왕들은 파라오로 불리게 된다. ⓒ 박봉팔
메네스왕이 묶어
세운 상하 이집트 연합은 여러 자치 지역으로 이뤄졌었는데, 이 ‘원초적인 국가’ 형태에 나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놈nom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 상 이집트부터 하
이집트까지 총 42개의 ‘놈’이
있었고, 이집트 왕국의 행정단위로 유지됐는데, ‘주’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을까. 
▲ 상 이집트의 놈nome 구분 고대이집트에서 도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만들어졌어. 1) 멤피스나 테베 같은 자연발생적 도시 2) 마음 먹고 자리잡은 마을이나 도시. ‘정착지’(settlement)라고 하는데, 어떤 목적으로 정주지를 건설했으니 신도시라고 할 수도 있고, 되는 대로 생겨난 게 아니니 계획도시라 할 수도 있겠지.
나일강 델타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 자리잡은, 이집트 왕국의 첫번째
수도 멤피스가 어떤 도시였는지
고스란히 남아있지는 않아. 중간에 수도가 테베에서
멤피스로 왔다갔다 했지만, 중왕조 시대
뒤로는 테베가 떠오르면서 멤피스는 저물어 가는 옛 도시가 된 거지. 반면 왕국 초기부터 멤피스에 대응할 만한
큰 도시였던 테베는 신왕조 시대에 기어이 왕국의 중심도시가 되어,
지금은 룩소르 유적으로 뒤덮여있고. 나중에 알렉산드리아가 수도가 되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멤피스가 옛 명성을 살짝 되찾지만,
예전만은 못해서, 돌들 주워가서 다른 건물 짓는 데 쓰고 그러면서 유적이
속절없이 흩어지고 파괴된 것 같아.
강력한 자, 파라오의 으뜸가는 실무는 ‘물 다스리기’. 강이나 바다에 의지하거나 맞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치수’만큼 중요한 게 없지. 국토면적의
18%가 ‘물’이고, 1/4이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에서도 이 ‘치수’기관이
가장 오래된 공공기관이거든. 13세기니까 정부도, 행정권력이라는 것도
제대로 없을 때인데, 귀족들이 하던 통치 체제와 별도로 기관을 운영했어. 물 관리라는 게 물만 관리하는 게 아니잖아. 온갖 기반시설과 국토관리, 재정관리까지 하는 일이라, 네덜란드는 이 기관(waterschap)의 우두머리를, 지방의회선거처럼 국민투표로 뽑아. 사실
네덜란드 같은 상황에서 ‘치수’란, 정치권력을 뛰어넘는 일인 거지. 둑 하나 무너지면, 부자
가난한 자 상관없이 다 물에 잠기는 거니까.
아, 이건 잠깐 다른 얘긴데. 곧 네덜란드 왕위를 이어받을 왕세자 빌럼-알렉산더가 해군 출신이거든. 해군사관학교도 다녔고. 그리고 역사학 학위를 받더니, 지금 하는 일은 물 관리. 국제적으로도 이 분야로 전문가인가봐. 이제 왕이 나라를 다스리지는 않지만, ‘해군’과 ‘수자원 관리’라는 그의 경력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역사에 각인된 ‘물에 대한 애증’을 말해주는 거지. 대대로 귀족들이 해오던
일이었고.
아무튼 메네스 왕도
왕국을 통일하고 젤 먼저 한 일이 나일강에 둑을 쌓은 것이라 전해지고,
왕의 치수 관개 능력이 곧 정치력이었을 거야. 중앙집권국가였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에 비하면 도시 규모는 작은 편이었어. 정치권력도 그때그때 필요하면 다른 도시에 자리잡았기 때문에(‘정착지’ 라는 도시 개념.) 사실 수도도 여기저기 많이 왔다갔다 했거든. 메소포타미아처럼 성채 쌓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도시가 발전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도시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바람에, 햇빛에 사라져 버린, 진흙이라는 건축재료때문인지도. 그러나 도시와 문명은 같이 가는 법. 이 즈음이 파피루스도 만들고 신성문자는 이미 행정문자가 되어있던 때고.
멤피스의 주변에는
‘네크로폴리스’라고 하는 도시들이 여럿 있었어. 멤피스의 인구를 감당할 만한 묘역단지를 도시 바깥에 신도시처럼
만들어 간 거지. 이것도 도시냐고?
이집트에서 신도시란, 죽은 자들의 도시였어.
※ 네크로폴리스 (necropolis)는 그리스말
nekropolis에서
온 건데, 말 그대로 하면 ‘죽은 자들의 도시’. 고대 도시 주변에 형성된 대단위 묘지를 가리키는 말. 이 네크로폴리스는 이집트에만 있었던 건
아니고, 그리스와 로마 문화 영향권 도시들에는 보통 도시 성벽 밖에 형성되어 있었음. 우리나라의 경우, 경주도 어떻게 보면 네크로폴리스라고 할 수 있겠지.
[사카라 ] 
기원전 2650년경 만든 도시인데, 이 도시의 거주민은 죽은 자들이야.
수도 멤피스의 ‘네크로폴리스’. 석실 분묘로
된 사자(死者)의 도시. 이 도시에서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집 가운데 짚고 가야 할 것이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마치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처럼 계단식으로 된 돌무덤이야. 진흙벽돌이 아니라 돌로 지었다는
점이 다를 뿐, 모양은 비슷하지. 이 피라미드는 세계 최초의 석조기념물이자 최초의 피라미드.
▲ 계단식 피라미드
이 피라미드를 만든
임호텝(2635-2595 B.C.)은 제3왕조의 조세르 왕 밑에서 일한 사람인데, 이름이 알려진 세계 최초의 건축가이자 공학기술자라고 하지. 임호텝은
행정가, 사제, 대장 목수, 대장
조각가, 시인, 철학가 등 멀티테이너였음. 의학, 천문학에 대한 책도 썼다고 함.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
이후로 왕들은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으로 들어가게 돼. 건축사상 처음으로 ‘기둥’을 사용했고, 건축재료를 진흙에서 돌로 확 바꾼 사람. 이집트에서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는다는 게 이해되고도 남지.
▲ 임호텝이 사카라에
설치한 기둥.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품게 되었던 여러 가지 자연현상과 죽음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는 사람이 이집트 성직자(사제)였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현실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쳤고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아내이자 누이인 이시스Isis가 관장하는 세계, 즉 사후에 영혼이 머무른다는 저승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일찍부터 삶이란 단지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짧은 순간이라 여겼다. 그리고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시체가 자연적으로 미라가 되는 현상을 보고 이집트인들은 내세에 대한 강한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신이라고 단정했는데 불멸의 존재인 왕은 다른 인간에게 내세의 영생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파라오에게 도전하는 것은 내세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무모한 행동으로 여겼다. ⓒ 박봉팔
이집트인의 세계관대로라면, 어차피 이 세상은 그저 잠시 왔다가는 것. 그러니 이 짧은 순간에 머무를 공간을 공들여 지을 필요가 없었어. 현세 주거는 일시적이고,
사후 주거가 영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세 주거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진흙 벽돌로 집을 지었어.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와 달리 도시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거지. 반면, 사후 주택은 돌로 공들여 지었으니 지금까지 남아있고.
전쟁과 죽음이 흔했던 메소포타미아가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현세 중심이었다면, 이집트는 땅도 비옥하겠다, 정치체제도 안정되었겠다, 건축마저도
내세에 열심이었던 거지.
메소포타미아 성채
도시는 신전이 정치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중심성을
지니고 도시 핵의 역할을 했잖아. 이집트에서는 한쪽은 신의 공간, 다른
쪽은 이 짧은 순간 머물렀다 가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도시는 양면대칭 비슷하게 나눠지게 돼.
공간계획이라면, 거대한 신전과 기념적 가로구조. 모든 게 왕을 위한 구조물이지. 피라미드의 저 위대한 건축술에 대면, 보통사람들 주거수준은 형편없었어.
도시주거 유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그나마 그 흔적을 조금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기원전 2500년경 건설된 엘 라훈이라는 도시.
[엘 라훈El Lahun(또는
카훈Kahun)]
세누스레트 1세의 손자 세누스레트 2세(기원전 1842년~ 기원전 1836년)는 멀리 동아프리카의 푼트(이디오피아)지역과 교역하기 위해 홍해에 항구를 건설하기도 했다. 세누스레트 2세는 중왕국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왕인데 이때의 평화를 바탕으로 이집트는 페니키아, 크레타 등과도 활발한 무역을 했다. ⓒ 박봉팔
라훈은 중왕국 시대 세누스레트 2세의
피라미드를 지었던 노동자들의 집단거주지였어. 피라미드 하나 건설하는
데에 노동자 10만 명, 석공 2천명쯤 필요했다고 하거든. 이 사람들의 현장 숙소,
임시 주거지인 셈인데, 라훈의 피라미드는 20년쯤 걸렸다고 하니까,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집단촌을
지은 거지. 피라미드를 완성하면 버리고 가는 임시도시. 결국 다른 형태의
‘죽은 자를 위한 도시’인 셈이네.
평지여서 지형 제약이
없으니까 오직 관리· 통제하기 쉬운 대로 건설했어. 완전한 장방형 형태. 반듯한 격자형 패턴. 인구를
많이 수용하려면 바둑판이 제일 좋았겠지.
구역은 크게 동서로
나뉘는데, 동쪽 구역은 큰 집들,
감독관이나 상류계층이 살았을 테고. 서쪽 구역은 일반
노동자 주택이 촘촘하게 배열되었고, 그 사이에
신전이 있고, 공터도 있고. 각 구역 사이에는
벽돌 담이 있었어. 그러니 노동자 주거지역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 라훈의 공간
구성
[ 쿨데삭(cul-de-sac)
]
쿨데삭이란 말 혹시
들어봤나? 프랑스 말로 ‘자루(또는 가방)의 아래(바닥)’이라는 뜻. 계획용어로는 ‘막다른 길’(dead-end street)과는 살짝 다르게 쓰는데, 여기서는 그냥 같이 가자.
▲
쿨데삭의 예
끝이 막혔으니, 이 길로는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 차만 들어오잖아.
그래서 주거지에 통과교통을 줄이고, 어린이 안전에도 도움되고, 그 골목에 프라이버시, 하나의 공동체 개념도 만들어지고, 소음도 줄 것이고...이런 의도로 현대 도시계획에서 많이 쓰는 도로계획 방법이야.
아랍과 무어인들의
옛 도심(메디나)에 많아. 
▲
튀니지의 메디나에서
보이는 쿨데삭. 반(semi)사적 공간이 특징.
이 쿨데삭의 시초가 바로 이 라훈 피라미드 현장의 노동자 주거지야.
왼쪽(서쪽) 노동자 주거지의 골목들 함 봐봐. 막다른 골목이지? 도망 방지 목적이었다고 하는 구만.
영국에서 1900년대 들어서 신도시계획을 많이 했는데, 쿨데삭이 대거 사용됐지. 이때 영국 계획가들은 ‘이상도시’,
‘전원도시’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거든. 전원도시(Garden city)야 말로 현대도시계획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쿨데삭 도로가 뭔가 전원적이고 쾌적한 주거환경에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신도시계획에 적극 적용한 거야.
한국에도 이런 도로망
계획을 좀 썼는데, 한국사람의 사고방식은 좀
‘고대 로마적’인 데가 있어서, 길이란 뻥뻥 뚤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어. 길에 대한 사고방식이 ‘머무름’보다는 ‘통과’, 보행자 보다는 자동차 위주인 거지. 도로란, 접근성과
통과성, 둘 다 중요한데, 한국사람들은 통과성을 더 중요하게 치니까.
쿨데삭은 통과성이 아니라 접근성 위주의 도로여서 말이지.
쿨데삭은 영국에서 미국과 캐나다로 건너가서, 교외 신주거지에 보면, 큼직큼직한
쿨데삭들 많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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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제 표결이 신의한수였…